묵은 잎을 떨궈야 새잎이 싹튼다

한겨레 2024. 2. 1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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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1]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지 않고 ‘마음속에 새잎 돋아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에게는 ‘새잎 나왔니?’라고 새해 인사를 한다. 저 멀리 바다로 산으로 가서 새해 소원을 비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무들은 봄날에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며 새잎을 틔운다. 스스로 새잎을 틔우니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이런 것이 복 아닌가? 복이란 제 할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이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복이 찾아가지 않는다. 스스로 돕지 않고 하늘에 기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2]

새잎을 틔우려면 묵은 잎을 떨궈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는다. 어제의 잎을 붙들고 있어 봐야 오늘 걸어가는 길에 방해만 될 뿐이다. 나는 붉게 물든 단풍보다 아기 웃음 같은 귀여운 새잎을 좋아한다. 단풍잎도 예쁘지만 맑고 고운 새잎은 찌든 마음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단풍으로, 새잎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데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다 여길 뿐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사람은 제 마음에 돋아난 새잎을 보지 못한다. 수많은 잎사귀 하나하나가 다 꿈의 조각인데 그걸 보지 못하고 오로지 꽃 피울 생각만 한다. 혹사당한 꿈은 봉우리에 올라도 즐겁지 않다. 손톱을 깎듯, 머리카락 자르듯 꿈도 가지치기 정도는 해 줘야…

[3]

욕심이 가득하면 꽃이 잡초로 보이고 사랑이 가득하면 잡초도 꽃으로 보인다. 누구나 새잎 시절이 있거늘 어떤 이는 꽃으로 살고 어떤 이는 잡초로 산다. 꾸미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뭔가 감추기 위한 것이라면 잡초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뭔지는 몰라도 가꾸는 것과 꾸미는 건 다른 것이다. 마음 가꾸기를 해야 새잎이 돋는 거지 마음 꾸미기만 하면 어찌 새잎이 돋겠는가? 아무리 영원한 사랑이라도 가꾸지 아니하면 시드는 것이다.

[4]

용서는 새잎을 돋아나게 하는 훌륭한 거름이다. 사랑도 그러하고 ‘괜찮다, 괜찮다’라는 말도 그러하다. 새해맞이 하면서 마음속에 새잎을 틔울 수 있겠지만 아침 명상, 걷는 것만큼이나 하겠는가. 남을 사랑하는 일도 어렵지만 용서하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모름지기 땅이라는 건 가꿔야 하는 것이다. 가꾸지 않고 결과만 기다린다면 씨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가꾸지 아니하고 꾸미기만 하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없다. 꿈에 속아서 일생을 망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어떡하든 봉우리에 오르겠다는 사람들! 장비에 의존해서 오르는 걸 당연하다 여길 수 있겠지만 마음을 믿고 오르는 것이 먼저다. 봉우리에 오른다고 꿈을 이룬 것도 아니다. 봉우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꿈은 이룰 수 있다. 봉우리에 오른다 한들 새잎이 없으면 꿈은 시든다. 날마다 새잎을 가꿔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5]

가는 곳마다 길이 막히고 솟아날 구멍마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나도 여러 번 눈앞이 캄캄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별을 보고는 눈물을 쏟았다. 나는 버틸 실력도 없었고 어둠을 헤쳐나갈 능력도 없었다. 세상에 기댈 사람 없고 나 혼자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 빛이 날아와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눈앞이 캄캄하다는 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배선이 끊어져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사람은 빛에 익숙해서 잠시라도 어둠을 만나면 당황한다. 나도 그랬다. 그때 마음속에 새잎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건 그야말로 ‘하늘이 보우하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도왔다. 눈앞에 보이는 빛만 빛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나를 어루만져 주는 새잎도 빛이다.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었다. 산에서는 해가 금방 진다는 걸 알면서도 길을 믿었다가 어둠을 맞이했다. 옷이 찢어지고 손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숲을 헤쳐나갔다. 북극성은 북극성일 뿐, 두려움은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를 발견하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동틀 무렵 저 멀리 새잎처럼 돋아나는 해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고였다. 나는 언제쯤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은 왜 이리 황폐할까? 언제쯤 내 마음에 새잎이 돋아날까? 목놓아 울지는 않았지만 목놓아 소리쳐 보았다.

픽사베이

[6]

옛날에 어느 아버지가 말썽꾸러기 아들에게 아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을 사주면서 말했다. 한때 아버지는 배우였다고. 그 말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갔다. 아들은 주정뱅이 아버지를 미워했을 뿐, 아버지가 뭘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출연한 영화를 찾아보았다. 그 영화를 보고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그 영화에서 아버지는 지나가는 엑스트라로 3초 나왔을 뿐이었다. 그 3초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씨앗을 던졌던 모양이다. 어느 날 아들의 가슴에 새잎이 돋아났다. 뒷날 아들은 훌륭한 배우가 되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사 준 옷을 헌 옷이 되도록 끝까지 입었다. 꿈은 날마다 새 옷이어야 한다.

[7]

아이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책감이 나를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한때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처럼 내 아이들도 나를 미워했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거두면 내 아이들도 나에 대한 미움을 거두려나? 아니다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슬픔과 불행은 새잎이 해결한다. 늦었지만 폐허가 된 마음을 일구어 꽃밭을 만들어 봐야겠다. 아들이 군대 가기 전에 문신을 새겼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지우고 싶다고 말했다. 팔목에도 있고 빗장뼈 밑에도 있어 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입고 다닌다. 내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두어라.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일구어 꽃밭을 만들어 보렴.

[8]

하고 싶었던 일이 꺾일 때마다 상처가 생겨났다. 그 자리에 새잎이 돋아나 가려주었으면 좋겠는데 상처는 흉터가 되어 그날의 일을 생각나게 해준다. 달리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이면 약을 바르면 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는다. 누가 내 흉터를 보고 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흉터를 보고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너무 슬펐다. 상 주는 교육일랑 하지 말고 상처를 주지 않는, 마음속에 새잎을 틔울 수 있게 하는 그런 교육을 해 줬으면 좋겠다.

[9]

언젠가 아들이 베란다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데 잘못하여 전등갓에 묻었다. 지우기도 어렵고 해서 내버려 두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흉해 보이더니 나중에는 그것이 무늬가 되어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런데 나는 왜 내 흉터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이제는 그 흉터를 용서할 때도 되었는데 말이다. 옹이를 보라! 나무는 제 몸에 박혀 있는 가지의 그루터기를 흉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

마음을 정리하려고 산에 갔다. 어디에선가 물소리가 들린다. 봄소식을 알리는 거로군! 살얼음 밑으로 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맑고 눈부신 물, 물도 아이일 때가 있었구나! 어른이 된 물은 아이 때 물을 생각해야 한다. 다 자란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면 다 자란 물은 강물이라고 해야겠네. 어른과 강물의 공통점은 탁하다는 것이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깨우니 탁한 마음에 새잎이 돋는다. 아이처럼 맑은 물, 머물지 말고 흘러라. 물이 물을 버리니 이렇게 맑구나!

픽사베이

[11]

모르는 사람한테서 편지가 왔다. 편지를 읽어보니 무언가 희망을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또박또박 정성 들여 쓴 편지는 예쁜 편지지 다섯 장 분량이었다. 자신을 한 아이의 엄마라 하였고 한때는 클럽에서 노래했던 가수였다고 말했다. 편지 중간쯤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자기는 암 환자인데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병원에서 주는 약을 늘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노래를 들었는데 잠이 잘 와서 그 가수가 누군가 봤더니 바로 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 글을 보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가수로서 칭찬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 내가 드디어 가수가 되었구나!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음반이 나오면 따로 오디션을 보는 방송국이 있었다. 나는 세 번 연속으로 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불행을 맛보았다. 가창력 부족이라는 통보를 받은 회사에서는 음반 발매를 중단하게 되었고 나는 그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의 노래를 들은 어느 불면증 환자에게 가수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편지에 힘입어 나는 불면증 환자들을 위해서 노래를 계속하기로 하였다. 카세트테이프 앞면을 듣기도 전에 잠이 왔다고 하니 나는 불면증 환자가 찾아낸 훌륭한 가수였다. 그런가 하면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똑같은 카세트테이프를 어느 동무한테 줬는데 어느 날 그 동무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너 앞으로 노래하지 마라. 내가 네 노래를 듣고 고속도로 달리다가 사고 날 뻔했잖아.” 그렇다면 정말 나는 가수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어여쁜 사람이 아이 손을 잡고 내 작업실을 찾아왔다. 나는 반갑게 맞이했다. 자기가 편지를 보낸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기 아들을 가리키며 ‘나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머리는 가발이며 이제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의 가슴에서 새잎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의 새잎을 위해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소원대로 훌륭한 가수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내 실력이 모자라 한 해가 지나서야 노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그 사람한테 연락했는데 주소도 모르는 하늘나라로 이사 가고 없는 것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노래를 만들었다면 이사 가기 전에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을 텐데….

얼었던 시냇물이

풀려서 흘러가듯

시린 가슴에 묵은 슬픔도

흘러가면 좋겠네

어두운 꿈길에서

별을 찾는 나그네여

그대 외로운 발걸음마다

꽃이 피면 좋겠네

내가 봄이 되어 봄바람으로

그대 겨울로 스며 들어가

춥고 서러운 그대 가슴에

새잎 되고 싶다

미움이 사랑 되고

슬픔이 기쁨 되는

해거름 하늘에 꽃구름처럼

꿈이여 다시 한번

-’새잎’(1989)

글 한돌/음악가·작곡가·가수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배움터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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