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 사실래요? 산업 좀먹는 은밀한 속삭임 [視리즈]
암표의 어두운 경제학 1편
업계 불문 기승 부리는 암표
허술한 법망 틈타 암표상 조직화
1억원대 팝스타 공연 암표까지…
공연계 자구책 펼치고 있지만
실명제 · NFT 등 한계도 뚜렷
# 암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에 열린 한 팝스타의 공연에선 8개 좌석을 1억8000만원에 되판다는 게시글까지 온라인에 등장했다. 공연뿐만이 아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롤드컵 결승전에서도 암표상이 활개를 쳤다. 암표상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오는 3월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상을 처벌할 수 있는 '공연법 개정안'이 시행된다는 거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공연이 아닌 문화행사나 스포츠 경기는 규제하지 않는 데다,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이란 솜방망이 처벌 규정만으론 조직화한 암표상을 근절하는 게 쉽지 않을지 모른다.
# 누구도 원치 않고,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암표상…. 이들을 끊어낼 수는 없는 걸까. 해묵은 암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들여다봤다.
"공연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의 '공연 예매 및 암표 거래에 대한 이용자 의견 조사(2023년)' 결과, 암표 사기 피해를 당한 이용자 중 36.4%가 "모든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고 답했다. '해당 기획사의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 '해당 가수의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는 응답자도 각각 20.8%, 12.8%에 달했다.
암표 사기 피해를 입은 이용자만이 아니다. 비싼 가격에 암표를 구매했던 이용자들 역시 '해당 가수의 공연을 보는 횟수가 줄어든다(25.0%)'고 답했다. 암표가 공연산업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조사 결과다. 제값이 아닌 웃돈을 줘야 원하는 공연을 볼 수 있는 소비자로선 암표가 기승을 부릴수록 공연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런 암표가 업계를 불문하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난해 6월 열린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내한 공연은 예매를 시작한 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10만여석이 모두 팔렸는데, 하늘의 별 따기 만큼 구하기 어렵던 입장권은 '완판 직후'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쏟아져 나왔다.
공교롭게도 정가 20만원대 입장권이 100만원 안팎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심지어 8연석을 1억8000만원에 판매한다는 게시글까지 올라왔다. 지난 1월엔 가수 장범준이 암표가 문제를 일으키자 계획했던 소극장 공연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암표상들이 정가 5만5000원이던 콘서트 입장권을 3~4배 가격으로 거래했기 때문이었다.
스포츠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1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다. 프로야구단 'LG트윈스'가 21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야구팬의 관심이 높아졌다. 문제는 높아진 팬들의 열기를 악용한 암표가 기승을 부렸다는 점이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일부 야구팬은 정가 10만원짜리 입장권을 30만~40만원에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암표상들은 'e스포츠'까지 파고들었다. 지난해 11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입장권은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 등에서 300만원대에 팔리기도 했다. 정가(24만5000원)의 10배를 웃도는 가격이다.
■ 한계➊ 자구책 = 물론 공연·경기를 기획하는 주최 측은 암표 근절을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른바 실명제 도입을 통해서다. 오는 3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MLB(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를 주최하는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는 암표를 원천 차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LA다저스와 SD파드리스가 경기를 펼치는 데다, 월드스타 오타니 쇼헤이(LA다저스)와 김하성(SD파드리스)이 맞붙는 만큼 예매 시작 전부터 암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쿠팡플레이는 쿠팡 유료 멤버십(쿠팡 와우) 회원에 한해 입장권을 최대 2매씩만 예매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입장 시 예매자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동반 1인도 함께 입장하도록 했다. 퇴장 시 재입장도 불가하다.
티켓에 NFT(대체불가능토큰)을 도입한 곳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가수 장범준는 현대카드와 협업해 NFT를 활용한 공연 예매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NFT 입장권은 복제나 위변조가 불가하고 예매한 본인만 입장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암표 근절을 행사 주최 측에만 맡겨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례로 쿠팡플레이처럼 경기나 공연 시작 전 입장권과 신분증을 일일이 대조하는 건 물리적으로 쉽지 않아서다.
공연업계 관계자는 "소규모 공연이라면 가능하겠지만 1만~2만명, 많게는 10만명까지 모이는 대규모 공연에선 일일이 신분증을 대조해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대다수의 관객이 공연 시작 30분~1시간 사이에 대거 입장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NFT 입장권 역시 '디지털 약자'가 소외될 수 있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암표를 규제하는 현행 '경범죄처벌법'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 이제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은 視리즈 '암표의 어두운 경제학 2편'에서 살펴보자.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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