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저승사자’ 승소율 높다지만… 핵심 사건 패소에 체면 구긴 공정위
패소할 경우 국민 세금 낭비로 이어져
SPC·SK실트론·쿠팡 사건 줄줄이 패소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시정조치에 기업이 반발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공정위가 승소하는 비율이 매년 늘고 있다. 공정위가 기업을 상대로 완승을 거둔 비율은 2017년 67%에서 2022년 85%까지 상승했다. 다만 최근 법원 판단이 나온 사건들은 줄줄이 공정위가 패소하는 모습이다. 이들 사건은 과징금 규모가 커 주목도가 높았던 사건이다. 공정위가 조사의 정밀도를 높이고 심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공정위가 전부승소한 비율은 2017년 67.6%에서 2022년 85.7%로 높아졌다. 2023년에 제기된 소송 39건에 대한 고등법원 판단은 아직 한 건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승소율은 집계가 되지 않았지만, 행정처분을 받아 소송을 제기한 비율은 28.3%(2022년)에서 16.5%(2023년)로 낮아졌다. 공정위 처분에 대해 기업 등 처분 대상자가 수용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의미이다.
공정위 승소율이 중요한 이유는 국민 세금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공정위 처분에 불복할 경우 법정 싸움으로 이어진다. 공정위 심결(행정기관의 결정)은 1심으로 보고, 불복 소송은 서울고법-대법원 2심제로 진행된다. 법원에서 공정위가 패소할 경우 기업에 과징금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 과징금을 돌려줄 때는 과징금을 납부한 시점부터 반환 시점까지의 기간에 대한 이자를 환급 가산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공정위가 내는 환급가산금은 세금으로 충당한다. 공정위가 승소해야 세금 누수를 막을 수 있는 뜻이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공정위가 2017~2023년 행정소송 패소 등으로 공정위가 기업에 토해낸 환급액은 551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444억원이 환급 가산금으로 지불한 세금이다.
이처럼 공정위의 승소율은 매년 높아지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법원 판결이 나오고 있는 2020~2021년 사건에선 공정위의 패색이 짙다.
지난달 31일 서울고등법원은 SPC 계열사 5곳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명령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밀가루 거래 관련 시정명령 건을 제외하고는 공정위가 처분을 모두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공정위는 2020년 7월 SPC가 2011년부터 7년간 부당 지원을 통해 삼립에 414억원 상당의 이익을 제공했다고 보고 계열사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647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법원 판결이 확정되면 공정위는 과징금으로 수수한 647억원에, 환급가산금을 얹어 SPC 그룹에 돌려줘야 한다.
SPC 판결 일주일 전인 지난달 24일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K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재판부가 최 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는 최 회장이 2017년 반도체 웨이퍼 생산 회사인 SK실트론(당시 LG실트론)의 지분을 인수한 것에 대해 지주회사인 SK의 사업 기회를 가로챈 것이라고 보고 최 회장과 SK에 대해 각각 8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공정위는 지난 1일 쿠팡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33억원) 취소 소송과 다음날인 2일 세계 7위 컨테이너 선사인 대만의 에버그린이 제기한 해상운임 담합 혐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34억원) 제재 취소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10여 일 동안 패소한 4건의 과징금 규모만 722억원에 달한다. 전직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혐의를 입증하려 무리하게 꿰맞추기식 조사를 하면 법원에서 판단이 뒤집힐 수 있다”며 “증거를 기반으로 정밀하게 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달아 주요 재판에서 패소한 공정위는 상고를 준비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쿠팡 사건의 경우 기존 대법원 판단과 다르게 나와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며 “쿠팡과 SPC, 해운 담합 등에 대한 대법원 상고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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