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공익성 회복 ① [더 나은 세계, SDGs]

김수연 2024. 2. 1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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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픽사베이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이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30일 국무회의에서 유례없이 강한 어조로 은행을 질타했다. 고금리를 앞세워 이자 수익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대통령의 이 발언 후 지난해 12월 국내 20곳 주요 은행들은 금융당국과 ‘2조원+α’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진화에 나섰다. 소상공인·자영업자에 1조5251억원을 지원하고, 대출금 2억원을 한도로 금리 연 4% 초과 이자 납부분에 대해 1년간 90%까지 최대 300만원의 캐시백을 신속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도 은행권에 대한 비판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지난 3년간 소비자들에게 적극 권유하고 판매해온 고위험·고난도 금융상품인 ‘홍콩H지수(HSCEI)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이 기록적인 손실을 보이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탓이다. 최근 들어 ELS 투자자 대부분 원금 회수가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2일까지 H지수 ELS의 만기 손실률이 몇몇 상품에선 60%에 이르고 있다.

지난주 18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에서 홍콩 ELS 만기 도래 원금은 이달 들어 지난 15일까지 1조1746억원인데, 5384억원만 상환돼 손실액은 6362억원에 달했다. 평균 손실률이 무려 54.2%에 이른다. 이 중 65세 이상 투자자에게 판매된 금액만 5조5000억원이었다.

이뿐 아니라 이들 은행이 문제의 상품 판매 시 설명의무를 충실히 다하지 않았을 가능성까지 불거져 불완전판매로 판정될 공산도 높아 보인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19조는 투자성 상품과 관련해 내용과 위험, 위험등급을 알리도록 하고 있고, 시행령 13조3항을 보면 ▲기초자산의 변동성 ▲신용등급 ▲금융상품 구조의 복잡성 ▲최대 원금 손실 가능금액 등을 자세히 알려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해당 상품을 판매한 5개 은행과 6개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점검을 벌였고, 지난 16일부터는 2차 현장검사에 들어갔다.

지난 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4년 업무계획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2017년 전후 최초 가입 시 2015~16년 홍콩H지수 폭락에 대한 리스크 고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수 반등에 따른 일부 이익을 본 뒤 롤오버(만기 연장) 형태로 가입을 권유받고, 재가입할 당시 리스크에 대한 고지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금소법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며 은행권 등의 위법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 금감원은 1차 현장검사에서 일부 불완전판매 사례를 확인했다.

이 원장은 또 “(불완전판매에 대해) 유형별로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추가 검사를 해 (불완전판매 사례를) 발굴하는 과정을 이달 마지막 주까지 끝내면, 이에 따른 책임 분담 기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금융권의 자발적인 자율배상 방안을 언급했다.

불법 여부를 떠나 금융권이 먼저 자체 배상안을 마련하는 것이 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공익적 책임이라는 의미다. 은행권은 민간 영역이긴 하지만, 사실상 ‘사회 금융안전망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매우 중요한 공익성도 가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 곧 금융소비자가 되고, 금융소비자의 자금을 기반으로 은행이 영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자칫 금융당국의 책임 소재로까지 불똥이 튈 수 있기에, 정부와 당국의 해결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H지수ELS피해자모임과 시민단체인 금융정의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등은 지난 15일 감사원에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은행권 등에 대한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피해를 본 소비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이번 사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수많은 피해자가 피눈물을 흘릴 때 은행은 이번 판매로 고수익을 올린 사실이 알려져 여론이 더욱 악화됐다. 실제로 피해자들이 6000억원 넘는 손실을 보는 동안 은행권은 판매 수수료로 무려 6815억7000만원의 이익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불 때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국내 주요 금융그룹은 수많은 관련 캠페인에 발 빠르게 참여하거나 주도한 바 있다. 이제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할 때다. 은행의 공익성 회복이 금융권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ESG이기 때문이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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