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지는 법] <6> 시사적인 사건으로 질문을 던져라
슬프고 괴롭고 불행한 비극은 가끔 소설이나 영화 밖으로 뛰쳐나와 현실이 된다. 고대 그리스의 희곡이나 셰익스피어의 소설에나 있을 것 같던 비극이 나를 포함한 내가 아는 사람에게 갑자기 닥치는 것이다. 평범한 갑남을녀(甲男乙女)의 비극은 대개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들리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비극은 갑남의 술자리와 을녀의 우물가에서 궁금증으로 점점 부풀게 마련이다.
1962년 마릴린 먼로가 갑자기 숨진 채 발견됐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우상을 영원히 기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실크스크린으로 사진을 좌우에 25장씩 각각 컬러와 흑백으로 배치한 '마릴린 두 폭'(Marilyn Diptych)이다. 화려한 명성과 덧없는 인생을 대비시키려는 걸까? 지나치게 노란 색이 머리 윤곽선 밖으로 삐져나오고, 지나치게 빨간 색도 입술 밖으로 번져나왔다. 왜 그렇게 그렸을까?
워홀은 유명인사의 비극을 파고 들었다. 1963년 흉탄을 맞은 존 케네디 대통령을 끌어안고 울부짖는 젊은 재클린 케네디 여사의 절규가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이 즈음 '세기의 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쓰러져 의사에게서 가망없다는 '사망선고'까지 받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30대 또래 여성들의 비극을 워홀은 실크스크린에 담아 질문을 던졌다. 행복해 보이는 유명인사는 정말 행복할까?
비극의 현장은 처연하기 마련이다. 1962년 워홀은 대형 비행기 사고로 129명이 죽은 신문기사를 보고나서 '죽음과 재난'(Death and Disaster)의 참혹하거나 섬뜩한 현장 사진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비극을 마주하지도 외면하지도 못하는 대중에게 소름끼치는 사고현장을 실크스크린으로 복제해서 도발한 것이다.
파티에 가려고 신나게 달리던 5명이 죽은 교통사고 '5 Deaths On Orange'는 처참한 굉음 뒤에 왜 여전히 흥겨운 카스테레오가 흘러나오는 듯한 걸까? 참치 통조림을 먹고 식중독으로 죽은 두 여성 'Tunafish Disaster'는 희생자가 웃는 평범한 표정이 왜 더욱 안타까울가? 사형을 집행하는 현장에 덩그러니 놓인 전기의자 'Little Electric Chair'는 왜 끔찍하고 공포스러울까?
마침내 비극은 본인에게 닥쳤다. 1968년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작가가 자신의 대본을 무시한 데 앙심을 품고 워홀에게 총을 쏘았다. 두 발은 빗나가고 세번 째 총알이 가슴을 관통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몸을 지탱하기 위해 의료용 코르셋을 평생 걸쳐야 했다. 수술자국도 흉측했다. 사지를 덕지덕지 이어붙인 프랑켄슈타인처럼 보였다. 그 흉터마저 아름답게 보였을까? 워홀은 자신의 흉터를 과시하듯 드러내며 사진을 찍었다. 워홀은 도대체 얼마만큼 유명해졌을까?
유명해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워홀의 명성을 탐낸 범인 발레리 솔라나스가 말했다. "워홀을 쏴죽이면 내가 유명해지고 대본도 유명해질테니, 그때 가면 대본을 공연하겠지". 하지만 워홀은 죽지 않았고, 범인은 금세 잊혀졌으며, 그 대본도 공연되지 않았다. 극단적인 페미니즘으로 범인은 페미니스트들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평생 정신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다.
질문의 힘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정답 없이 열려있는, 강력한 질문의 힘이다. 워홀은 일찌감치 "나를 알고 싶다면 작품의 표면만 보라. 뒷면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사람마다 제각기 나름대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오피니언리더(Opinion Leader)는 시사적인 사건에 그럴듯한 오피니언을 제시하려 들지만, 워홀은 오피니언 없이 질문만 계속 던졌다.
◇이정규 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은 IBM, 보안회사, 테크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재단, 감리법인에서 중간관리자, 임원,대표이사, 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지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벤처창업을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프로세스/프로젝트/IT컨설팅을 강의하고 있다. 또 프로보노 홈피에 지적 자산을 널어 놓는다.
◇허두영 라이방 대표는 전자신문, 서울경제, 소프트뱅크미디어, CNET, 동아사이언스 등등에서 기자와 PD로 일하며 테크가 '떼돈'으로 바뀌는 놀라운 프로세스들을 30년 넘게 지켜봤다. 첨단테크와 스타트업 관련 온갖 심사에 '깍두기'로 끼어든 경험을 무기로 뭐든 아는 체 하는 게 단점이다. 테크를 콘텐츠로 꾸며 미디어로 퍼뜨리는 비즈니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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