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A 하나카드 우승 주역 초클루, 그는 길거리에서 빵 팔고 구두 닦던 소년이었다

김동우 MK빌리어드 기자(glenn0703@mkbn.co.kr) 2024. 2. 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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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PBA 팀리그 하나카드 초클루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중퇴…선수하며 택시 버스 몰아
2004년 선수포기 하려했으나 유럽3쿠션 우승
팀리그 포스트시즌서 맹활약 MVP 선정
팀원 많고 세트제 PBA팀리그, 유럽과 달라
하나카드의 PBA 팀리그 우승 주역 초클루는 팀리그 1~3차전에는 적응인 안돼 팀에 도움이 안됐다면서 4차전 이후부터 포스트 시즌까지 제 역할을 해서 기쁘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는 초클루.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를 그만뒀고, 이후 길거리에서 빵도 팔고 구두도 닦고, 버스와 택시도 몰았습니다. 그래도 큐를 놓은 적은 없습니다.”

무라트 나지 초클루(49, 하나카드하나페이)는 튀르키예 3쿠션이 낳은 최고의 재능 중 하나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무대에서 꾸준한 활약상을 이어오며 세계랭킹 5위까지 올랐던 강호다.

초클루는 프로에 와서도 어김없이 강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아직까지 개인투어에서는 큰 성과가 없으나, 팀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포스트시즌 MVP로 선정됐고, 하나카드 우승 주역으로도 떠올랐다.

하지만 초클루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풍파를 겪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스스로 학교를 뛰쳐나왔고, 이후 구두닦이, 카페 종업원, 원단 판매원 등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했다.

그러던 2004년 초클루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생활고 때문에 당구선수 은퇴를 고민하던 시점에 ‘유럽3쿠션선수권’서 우승했다. 이후 ‘세계팀3쿠션선수권’ 우승을 시작으로 ‘3쿠션월드컵’에서 2회나 정상에 오르며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올 시즌 PBA에 도전, 당구인생 2막을 연 초클루를 만나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초클루는 인터뷰 도중 과거 절친 사이였던 고 김경률 선수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초클루와의 인터뷰는 ‘고양킨텍스PBA스타디움’ 프레스룸에서 진행했다. 8차전 전에 인터뷰했고, 이후 보완했다.

팀리그와 달리 개인투어에서 부진한 것에 대해 초클루는 세트제와 공인구, 테이블 등 모든게 달라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9차전에서는 8강에 이상에 들어 왕중왕전에 출전하고 싶다고 했다.
△하나카드가 극적으로 팀리그서 우승했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올 시즌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승까지 상상해 본 적 없다. 그러나 우리(하나카드하나페이)팀은 항상 서로를 믿었고, 무엇보다 서로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매 경기 최선을 다해 결국 우승을 이룰 수 있었다.

△입단 첫 시즌부터 하나카드 우승 주역이 됐고, MVP가 됐는데.

=기분은 정말 좋지만 개인적으로 첫 3라운드까지는 (팀리그에) 적응이 안 돼 고전했다. 하지만 4라운드부터 점차 적응이 됐고 5라운드와 포스트시즌에서도 선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팀에 도움이 되는 활약을 할 수 있어 기뻤다.

△팀리그에서 초반 부진했다가 나중에 최고 활약을 펼치기 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팀리그 시작 때만 해도 아무것도 적응이 안됐다. 예전에 치르던 대회와는 모든게 다르게 느껴졌다. 더욱이 압박감까지 너무 심해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팀을 돕고 싶었지만 경기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첫 3라운드까지 많이 헤맸고, 4라운드 때도 그다지 좋은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 점차 적응이 됐고,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적응이 된 상태다.

△특히 사카이 아야코와 4세트에서 호흡이 굉장히 좋았다.

=아야코와 나는 파트너십이 정말 좋다. 함께 연습을 자주하다 보니 아야코 강점과 약점이 뭔지를 파악했다. 그래서 함께 연습할 때면 아야코에게 필요한 부분에 대해 많은 도움을 주려고 한다. 또 혼합복식으로 함께 나설 때면, 내 턴일 때도 아야코에게 다음 공을 최대한 쉽게 주려고 노력한다. 서로 이런 믿음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서로를 확실히 믿는다면 좋은 결과는 따라오게 돼있다.

눈여겨보는 韓유망주 정예성 “샷 완벽하고 파워풀”
고 김경률 회상에 울먹 “특별했던 사이 아직 그리워”
PBA투어 9차전 목표 8강 이상→왕중왕전 합류
△UMB 소속일 때도 유럽 팀리그를 뛴 적이 있는데, 당시와 지금 PBA팀리그의 다른 점이 있다면.

=UMB 시절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 5~6개 국가 리그를 누볐다. 그때와 PBA팀리그는 완전히 다른 무대다. PBA팀리그에는 각 팀마다 선수도 더 많고 경기도 짧다. 반면 유럽 팀리그는 각팀 구성원이 4명이고, 40~50점제다. 규칙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이런 점때문에 PBA팀리그에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PBA팀리그는 경기가 11~15점제로 굉장히 짧아 이변도 많다. 실력 차이가 꽤 있는 선수와 맞붙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뱅크샷 2점제는 경기에서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행히 개인적으로는 이제 2점제에도 확실히 적응한 것 같다.

초클루는 23/24시즌 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며 MVP로 선정됐다. 특히 초반에 부진했을 때 팀원들이 믿고 응원해줘서 팀 우승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PBA)
△처음 하나카드팀에 들어올 때 팀원들 사이에서 어색함이 컸을 텐데, 적응하는 과정이 어땠는지.

=팀에 적응하는 건 정말 쉬웠다. 처음 하나카드에 입단했을 때 팀원 모두 나를 정말 친절하게 대해줬고, 항상 도움을 주려했다. 내 경기력과 상관없이 말이다. 내가 경기력이 좋지 못할 때면 팀원들이 와서 “나지, 우린 너가 잘 해낼 거라 믿으니 걱정하지 말라. 우린 기다려줄 수 있다. 이제 1~3라운드 치렀으니 여전히 기회는 많다. 점점 나아질 거다” 이런 말들을 해주며 내가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팀원들의 이러한 노력에 감사하다.

△하나카드 팀원이 됐을 때 알거나 친한 선수가 있었나.

=입단 때만 해도 Q.응우옌 빼고는 모두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Q.응우옌도 UMB 시절 3쿠션월드컵에 출전하며 알고 지내던 선수이기는 하나, 특별히 친한 선수는 아니었다. 더구나 현재도 베트남에 살고 있기에 대회 때 말고는 마주칠 일이 많지 않다. 오히려 팀 입단 초반에 내가 팀에 적응하도록 큰 도움을 준 건 김가영 선수였다. 나와 김가영 선수 모두 일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가영 선수 말고도 모든 팀원들이 발 벗고 나서 내가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덕분에 이제 모든 팀원들과 많이 친해졌다.

△과거로 돌아가서 당구를 언제부터 치게 됐나.

=17세때인 1992년이다. 친구들 따라 당구장에 갔다. 그때부터 당구에 큰 관심을 가졌고, 어느덧 현재까지 34년 동안 당구를 치고 있다.

△선수생활 초반엔 형편이 좋지 않아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선수생활 초반에도 그랬지만, 애초에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1986년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학교를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 만류에도 일찍 사회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유지해야 하다 보니 닥치는 대로 여러 일을 했다. 찻집에서도 일했고, 구두도 닦았고, 원단도 팔았고,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빵도 팔았다. 이후 군에서 제대한 뒤 90년대 중후반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지역 토너먼트에서 성적을 내기 시작하며 전국대회에도 도전했다. 전국대회에서 자주 입상했고, 1999년 드디어 전국대회에 처음으로 우승했다. 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않았다. 택시와 버스를 몰며 선수생활했다.

△당구선수를 그만두려했다고.

=2004년에 큰 위기가 왔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더이상 선수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웠다. 당시엔 내가 계속 당구를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런 고민할 때 ‘유러피언챔피언십’(유럽3쿠션선수권)에서 덜컥 우승했다. 그래서 얼떨결에(?)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로 했는데, 우승 직후 네덜란드리그의 한 팀으로부터 입단 제의도 받았고, 국가대표팀 일원으로도 활동하게 됐다. 이때부터가 내가 당구선수로서 제대로 돈을 벌며 선수생활을 시작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PBA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 이유가 상당히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국의 몇몇 후원사 관계자들이 PBA에서 뛰기를 권유했고, 이 제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PBA 경기는 이전부터 종종 챙겨봐 왔고, 흥미로운 부분도 꽤 많았다고 느꼈다. 물론 상금 규모도 확실히 크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그래, PBA로 안 갈 이유가 뭐가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PBA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PBA에 온 이상 이곳에 오래 머물 것 같다. 일단 지금까지는 내 결정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한국 생활도 잘 즐기고 있다. 이제 결과만 잘 내면 완벽할 것 같다.

초클루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으로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당구선수도 그만두려했으나 유럽선수권서 우승하며 마음을 다잡고 당구선수에 더 매진,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초클루는 부락 하스하스를 튀르키예 유망주로 꼽고, 한국의 정예성도 스트로크가 완벽하고 파워풀하다고 칭찬했다.
△팀리그에선 맹활약한 반면, 개인투어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다음 투어(9차전)를 치러봐야겠지만, 현재까지는 꽤 고전하고 있다. 프로 데뷔 이후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내왔다. 세트제와 그에 따른 경기시간 변화, 공인구, 테이블 등 모든 게 달라 적응에 여려움을 겪었다. 물론 이 모두 내가 맞추고 극복해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이전에 프로로 넘어온 선수들이 이구동성 하는 말들이 있다. PBA에 오기 전까지는 적응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실제로 와서보면 상상 이상의 차이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PBA에서 뛰기 시작한 이후 친분이 있는 많은 한국 선수들과 경기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럴 때면 대부분 “일단 올 시즌은 적응하는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해준다. 개인적으로 처음엔 적응에 1년이란 시간을 투자하는게 너무 길다고 느껴졌으나, 지금 보니 벌써 6~7개월이 지났다. 물론 지금은 처음보다는 훨씬 많이 적응이 됐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다음 투어가 남아있는데 정말 진지하게 임할 것이다.

△최근 열린 8차전에선 128강서 탈락했다. (초클루 인터뷰는 8차전 직전 이뤄졌고, 8차전 이후 추가적인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첫판부터 떨어져 기분이 너무 안 좋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그게 당구다. 승패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 선수들의 숙명이다. 나는 프로 선수이고,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에도 이미 익숙하다. 그렇기에 이럴 때일수록 더욱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저 최선을 다해 다음 대회에서 좋은 결과로 만회할 것이다.

△튀르키예에는 유망한 선수들이 많은데, 그중 가장 한 명을 꼽자면.

=부락 하스하스다. 어린 친구지만 이미 세계 무대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다. (부락은 지난 2022년 세계주니어3쿠션 정상에 오른데 이어 지난해에는 ‘유러피언챔피언십 U-25’에서 우승했다) 그만큼 재능이 출중한 선수다. 부락은 8~9살 때 당시 내가 운영하던 구장도 다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잘 안다.

△한국선수 중에도 눈여겨보는 선수가 있나.

=지난해 서울3쿠션월드컵 때 정예성 선수를 인상 깊게 봤다. 재능이 돋보였고,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스트로크와 샷이 완벽하면서도 파워풀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정도 스트로크와 샷이라면 테이블 위에서 뭐든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어리기까지 하다. 앞으로 2~5년 사이에 정말 좋은 선수로 성장할 재능임이 틀림없다.

△30년 가까이 선수생활해온 만큼, 친한 선수가 많을텐데.

=물론이다. 두루두루 친해 모두를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역시 튀르키예 선수들과 많이 친하다. 그중에서도 타이푼 타스데미르와는 절친한 사이다. 한국 선수들과도 친분이 많은데, 특히 조재호 최성원 선수와 친분이 깊다. 과거엔 고 김경률 선수와도 친한 사이였다.

고 김경률 이충복과 포즈를 취한 초클루. 그는 고 김경률과 절친한 사이였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며 아직도 그립다고 했다. (사진=초클루)
△고 김경률 선수와 함께했던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하나를 꼽기는 어렵다. 과거 김경률 선수와는 특별한 시간을 많이 보냈고, 아직도 그가 많이 그립다. 우리는 둘 다 영어를 잘 못했는데도 좋은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우리는 서로 친했을 뿐 아니라, 각자 고국 친구들에게도 서로의 얘기를 많이 하곤 했다. 지금 한국에 나를 좋아해 주는 팬들이 참 많다고 느끼는데, 이게 다 김경률 선수가 한국에 날 잘 소개해 준 덕분인 것 같다. 어쨌든 그를 생각하면 정말 유감이다. 그가 정말 그립다.

△PBA 합류 이후 한국생활은 어떤가.

=한국에 온 지 벌써 7개월 가량 됐는데, 잘 지내고 있다. 아내와 함께 지내니 더욱 그렇다. 나는 물론, 아내도 한국을 좋아한다. 특히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쌀 요리, 야채가 많이 들어간 국 등 건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튀르키예와 비교하면, 거기서는 같은 쌀 요리를 해도 기름이 많이 들어가고, 대체로 짜다, 한국 음식은 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다. UMB 시절에도 한국은 10번 이상 왔는데 그때도 한국이 정말 좋았다. 현재는 한국에 친구도 많고, 좋은 집도 있다. 모든게 만족스럽다.

△선수로서 본인의 강점을 꼽자면.

=멘탈적인 부분과 스트로크가 좋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당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멘탈이라 생각한다. 스트로크도 중요하지만, 멘탈이 우선 순위다. 샷은 모든 선수들이 할 수 있지만 중요한 순간이 되면 두려움을 느끼고, 심지어 떠는 선수도 있다. 그러면 제대로 샷이 안 나간다. 다음으로는 포지션플레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초클루는 당구 외에 오토바이 라이딩을 많이 즐긴다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아내와 함께 오토바이를 탄다. (사진=초클루)
△당구 외에 다른 취미는 없나.

=라이딩이다. 나는 물론, 아내도 오토바이 타는 걸 좋아한다. 튀르키예에선 시간 날 때면 아내와 함께 오토바이를 끌고 집에서 먼 곳까지 돌아다니곤 한다. 한국에서 이런 취미를 즐기기는 어렵겠지만, 튀르키예로 돌아가면 빨리 오토바이부터 타고 싶다.

△사용하는 용품은.

=JBS큐와 카무이 미디엄팁을 사용한다.

△이제 정규투어는 하나밖(9차전)에 남지 않았다. 각오는.

=이제 기회가 정말 한번 밖에 남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왕중왕전’ 무대에 꼭 서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9차전에 최소 8강 안에는 들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이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동우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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