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지 마, 까불지 마?… “아니, 떠들어! 딴 생각해!”[주철환의 음악동네]
학위수여식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총장부터 보직교수들까지 엄숙한 복장으로 착석한 강단에서 학사모에 가운을 걸친 중년 여성(1979년생)이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를 세 번 반복하고 마지막으로 ‘그냥 그냥 나는 나는 웃긴다’로 마무리(올킬)한 게 사건의 개요다. 웃음으로 무장한 그녀는 체포되지 않았고 박수까지 받으며 총총히 자리를 떴다.
용의자(?)는 26년 전(1998년) 이 대학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한 후 8년 만에 졸업한 현역 가수로 밝혀졌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희대의 현장을 목격한 후배들은 6분 30초 분량의 연설과 2분 30초가량의 노래(‘치티치티 뱅뱅’)를 도려내지 못할 성싶다. 수없이 많은 강연과 공연을 체험한 예능PD 출신 전직 교수에게도 일격을 가한 신선한(신성한 아님) 졸업식 풍경이었다.
오늘만큼은 효리를 회오리로 불러야겠다. 그만큼 강렬했고 통쾌했다. 분위기를 휘젓고 휘감고 휘몰아쳤다. 행사기획단에서 졸업생 축사로 이효리를 부르려면 명분이 필요했을 거다. 단지 유명하다고, 그냥 인기 있다고 불렀다면 ‘10분’(Ten Minutes) 넘지 않는 시간 이후에 닥쳐올 대내외 공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다.
사회자는 도전의 아이콘과 선한 영향력으로 효리를 소개했다. 영향은 그림자(影)와 메아리(響)가 합쳐진 말이다. 그림자가 생기려면 실체가 있어야 하고 메아리가 생기려면 높은 데 올라가서 소리를 질러야 한다. 세상에는 소리가 많지만 그게 선한지 악한지 가려내는 게 쉽지 않다. 사람들은 예리한 분석보다 유리한 해석에 이끌린다. 유리함의 끝이 벼랑이란 건 추락한 후에서야 알게 된다. 효리는 그런 무리의 먹잇감이 되지 말라고 경계한다.
메아리(메시지)의 요지는 남이 떠드는 말에 혹하지 말고 마음이 향하는 길로 움직이라는 것이다. 날것의 언어(독고다이)가 불편했을 교수님도 몇 분 계셨으리라. 짧은 연설문에 떠든다는 말도 여러 번 나왔다. “앞에서 떠들 자격이 있나 싶지만 제가 여러분보다 조금 더 살아온 것을 자랑삼아 떠들어 보겠다.” “좀 유명하다고 와서 떠드는 데 들을 이유가 없다.” “그만 떠들고 신나게 노래나 한 곡 하고 가겠다.”
그 시절 교실로 들어가 보자. 미세먼지처럼 떠도는 말. ‘떠들지 마’ ‘까불지 마’ ‘딴생각하지 마’. 그런데 지금 효리는 떠들고 까불고 딴생각하라고 권한다. 예전에 대학 신입생들에게 ‘노예 12년’(12 Years a Slave)이라는 영화를 추천한 적이 있다. 10년 전(2014년)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오로지 시험의 노예, 경쟁의 노예로 살았던 12년을 청산하고 이제부턴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대학 생활을 계획하고 추진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지금 대학을 떠나면서 오히려 4년을 연장한 ‘노예 16년’을 한탄하는 청춘들이 없다고 누가 감히 떠들 수 있겠는가.
16년을 노예로 살다가 마지막 10분에 정신을 차린다는 건 무리다. 그러나 마지막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과 맞닿아 있다. 효리는 처음 대학에 입학할 무렵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유명이 무명에게 할 일은 자랑이 아니라 사랑이다.
“어젯밤 이 연설문을 다시 읽어보니 지금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어져 나온 말이 뒤통수를 쳤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귀담아듣지 말아라. 이미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줄 알았는데 느린 화면으로 자세히 보니 효리가 후배들의 어깨를 툭 친 걸 알게 됐다. 한편의 스탠드업 코미디 비슷하게도 보이지만 실은 가난한 이발소 집 막내딸이 ‘이효리의 레드카펫’(KBS2TV)을 밟기까지 45년간 준비한 영리한 퍼포먼스라는 게 영상으로 10분을 지켜본 나의 감동 후기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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