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자율주행, 기술력 있지만 소비자 신뢰는 아직
현재 자율주행 기술은 레벨 2에서 레벨 3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레벨 2에서 레벨 3로 도약은 운전자가 합법적으로 운전대에서 눈을 뗄 수 있는 본격적인 자율주행이 실현된다는 점에서 큰 변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센서, 카메라, V2X(Vehicle-to-Everything·차량사물통신) 같은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자동차업체가 예고한 것처럼 올해 레벨 3 상용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질지 알아보자.
차량이 운전 제어하는 레벨 3
레벨 3 차량은 비상 제동, 적응형 순항 제어, 자동 주차 시스템 같은 기능을 갖춘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ADAS)이 작동한다. ADAS를 제대로 지원하려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카메라, 레이더, 라이다(LiDAR: 레이저 펄스가 물체에 반사돼 돌아오는 것을 통해 물체까지 거리를 측정하고 물체 형상까지 이미지화하는 기술), 초음파 센서 등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복잡한 센서를 사용해 차량의 주변 상황을 정확히 감지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로 조정과 속도 조절을 하고 자율적으로 운전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라이다는 레이저 펄스를 쏴서 3차원 영상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는 센서로, 해상도가 높고 주변광에 민감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전천후 조건에서 고해상도 매핑을 하고 차량의 중앙처리장치에 지속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라이다는 레이더에 비해 3~5배 비싸다는 게 단점이다. 반면 레이더는 콤팩트하고 비용이 저렴하다. 다양한 기상 조건과 어둠 속에서도 잘 작동해 사각지대 감지, 후방 추돌 경고, 교차 교통 경고 등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라이다의 시야각은 주변 환경에 따라 최대 360도인 반면, 레이더의 시야각은 90도에 불과하다.
현대차, 레벨 3 상용화 무기한 연기
V2X는 차량이 다른 차량이나 보행자, 인프라, 네트워크 등 주변 환경의 다양한 요소와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게 하는 통신기술이다. V2X를 사용하면 자동차가 도로 위 장애물과 다른 차량을 감지할뿐더러, 그들과 직접 통신할 수도 있다. 자율주행차의 적용 범위를 늘리고 사각지대를 감지함으로써 교통 효율성을 개선하고 안전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현재 주요 자동차업체는 대부분 자율주행 레벨 2를 위한 기술을 마스터했다. 지난해 초부터 레벨 2 운전자 지원 시스템으로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을 비롯해 아우디의 트래픽 잼 어시스트, GM의 슈퍼 크루즈, BMW의 익스텐디드 트래픽 잼 어시스턴트, 포드의 블루 크루즈, 현대자동차의 자율주행 패키지 등이 지원되고 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벤츠와 혼다는 레벨 3 시스템을 장착해 차량을 출시했다. 2022년 5월 벤츠는 레벨 3 단계인 드라이브 파일럿 자율주행 시스템이 독일 공공도로에서 합법적으로 작동하도록 당국 승인을 받았다. 이후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3'에서 벤츠는 미국 네바다주로부터 레벨 3 인증을 받았다. 드라이브 파일럿은 S 클래스 및 EQS 모델의 옵션으로 판매되는 시스템이다. 차량이 레벨 3에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나 위치 조건을 상실하면 10초 이내에 제어권이 운전자에게 넘어온다. 운전자가 10초 내에 응답하지 않으면 자동차는 자동으로 비상등을 켜고 도로 옆에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감속한 다음, 응급 구조에 대비해 도어가 잠금 해제되도록 작동한다.
BMW는 올해 레벨 3 수준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에서 i7을 포함한 최신 7 시리즈 차량에 퍼스널 파일럿 레벨 3로 명명된 레벨 3 수준의 자율주행 지원 시스템을 탑재할 계획이다. 이처럼 주요 완성차 업체가 레벨 3 출시 진행 상황과 계획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2027년 자율주행 레벨 4 글로벌 첫 상용화를 목표로 계획을 앞당기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도 지난해 말까지 제네시스 G90에 레벨 3 자율주행 시스템을 추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출시가 무기한 연기됐다. 기아도 레벨 3 기술을 적용한 EV9 GT 모델을 출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잠정적으로 미뤄졌다. 현대차가 개발 중인 레벨 3 수준의 HDP(Highway Driving Pilot)는 고속도로에서 일정 속도 이하로 앞차와의 안전거리와 차로를 유지하면서 주행하는 부분 자율주행 기술이다. 현대차는 혼다와 벤츠가 출시한 자율주행 레벨 3에서 고속도로 주행이 가능한 시속 60㎞를 넘어 시속 80㎞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레벨 3 주행 시 사고는 업체 책임
지난해 자동차업계에서 레벨 3 차량 출시 관련 보도자료가 쏟아진 데 이어, 올해는 레벨 3 차량 출시가 좀 더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레벨 2에서 레벨 3로 넘어가려면 기술 격차뿐 아니라 법적 격차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레벨 2에서는 운전자 지원 시스템이 모두 켜져 있어도 운전자가 도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레벨 3에서는 운전자가 도로에서 눈을 뗄 수 있다. 자동차업체는 차량의 레벨 3 시스템이 켜져 있는 동안 발생하는 모든 잠재적 사고에 책임을 져야 한다. 차량 내부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자사 시스템 때문에 발생한 사고에 책임을 질 수 없다면 해당 차량은 레벨 2 등급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레벨 3 단계가 기술적으로 준비돼 있더라도 많은 업체가 아직 공식적으로 레벨 3 도입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테슬라는 레벨 3를 언급하지 않고 레벨 2 운전자 지원 시스템을 판매하고자 '완전자율주행'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일부 기업은 레벨 3 대신 '레벨 2+'를 내세워 기술 역량이 레벨 2를 능가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법적 문제와 별도로 자율주행 시스템의 결함에 대한 대중의 민감한 반응도 레벨 3 도입이 늦춰지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몇 년 동안 해외에서 자율주행 차량의 충돌 사고가 여러 건 발생했다. 자율주행차 기술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 데이터 분석업체 JD 파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3 이동성 신뢰 지수(MCI) 연구'에 따르면 완전 자동화된 자율주행 차량에 대한 미국 내 소비자 신뢰는 2년 연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MIT AVT(Advanced Vehicle Technology) 컨소시엄 창립자 브라이언 라이머는 "자율주행 기술은 여전히 빠르게 개선되는 진화 및 테스트 단계에 있다"며 "자동화 경험은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크게 높이지만 신뢰는 빠르게 약화될 수 있으므로, 장기적인 자동화 모빌리티로 향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이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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