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쓰던 물감 버렸다… 파격적 그림이 나왔다

유승목 기자 2024. 2. 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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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재료를 바꾼다는 건 갑자기 모르는 외국어를 쓰며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과 같아요." 반복은 습관이 되고 삶이 된다.

화가가 늘 쓰던 물감을 버리고 익숙하지 않은 물감을 집어 든다는 건 그림에 베팅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과 같다.

화가 장재민(39·사진)은 첫 개인전을 연 지 10년 만인 지난해 유화물감 대신 수성 물감인 아크릴릭 구아슈를 붓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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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장재민 22점 전시
유화물감 대신 수성물감 써
상상속 모호한 풍경 담아내

“화가가 재료를 바꾼다는 건 갑자기 모르는 외국어를 쓰며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과 같아요.” 반복은 습관이 되고 삶이 된다. 화가가 늘 쓰던 물감을 버리고 익숙하지 않은 물감을 집어 든다는 건 그림에 베팅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과 같다. 화가 장재민(39·사진)은 첫 개인전을 연 지 10년 만인 지난해 유화물감 대신 수성 물감인 아크릴릭 구아슈를 붓에 묻혔다. 왜 한마디도 못하는 외국어를 쓰기로 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쉼 없이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관성처럼 그릴 때가 있어요. 고통이 따르겠지만, 모험을 해봐야겠단 생각을 한 거죠.” 잘 닦아 놓은 경로를 이탈해 새로운 길을 열어보겠단 뜻이다.

파괴적 혁신으로 만든 22점의 결과물들은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라인 앤 스모크’(Line and Smoke)란 이름을 달아 걸었다. 4년 전 같은 곳에서 열었던 개인전 ‘부엉이 숲’에서 선보였던 작품들관 전혀 다르다. 유화물감으로 두껍게 쌓아 올려 부피와 무게감을 강조했던 그림은 허공에 부유하듯 가볍고 담백해졌다. 투명하게 중첩되고 제멋대로 뻗은 선들과 잿빛 연기가 드리운 듯한 분위기 속에서 장재민이 그린 풍경과 사물들은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실제로 경험한 장소를 찍은 사진을 참고해 그렸던 전과 달리, 상상으로 떠올려 시공간이 뒤엉키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호한 풍경을 그려보려 한 장재민의 의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섬’(An Islet)이다. 전면엔 화초가 꽂힌 화병이 있고 후면엔 바다와 섬이 그려진 풍경화 액자가 걸린 이중구조지만, 파도가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화초를 적시고 화초는 액자 속 섬과 어우러진다. 서로를 간섭하는 풍경화와 풍경화 밖 정물을 보며 가상과 실재가 불분명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진명 미술평론가는 “정물화와 풍경화가 공존한다거나, 중심은 비워지고 주변부가 채워진다거나, 화면이 낱낱이 분리돼 사라지는 느낌을 주는 장재민의 회화 세계는 파격의 연속”이라고 했다. 전시는 3월 2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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