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살인자ㅇ난감' 최우식 "이탕 능력은 저주…연기 욕심났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은 읽기 난해한 제목만큼이나 심오한 질문들로 가득한 작품이다. 우발적 살인 후 악인 감별 능력을 느낀 이탕(최우식)과 그를 쫓는 형사 난감(손석구), 비틀린 신념을 가진 송촌(이희준)을 중심으로 죄와 벌을 둘러싼 여러 화두를 던진다. 범죄자들에 대한 사적 단죄는 온당한지 또 다른 악에 불과한지, 그렇다면 정의란 어떻게 구현되는 것인지 연신 날카로운 물음표로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1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최우식은 "그래도 살인은 안 된다. 내가 이탕처럼 악인을 발견한다면 경찰에 신고하고 빨리 잡아가게 할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만약 제가 이탕을 다크히어로로 보고 '내가 하는 일은 타당하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면 완전 다른 느낌의 이탕이 나왔을 거예요. 그럼 너무 재미없고 쉬웠겠죠. 그래서 저는 이탕이 처음부터 많이 안 변했다고 생각했어요. 노빈에게 무섭다고 토로할 때도, 사람들을 해치고 난감 앞에 섰을 때도 편의점에서 일하던 이탕이었죠. 그게 아니면 그런 결말은 어려웠을 거예요. 특히 원작에 만화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탕을 현실화했을 때 바닥에 붙어 있는 인물로 보여주려면 감정선이 제일 중요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감정 표현에 가장 신경썼어요. 사실 원작은 되게 심플해요. 옛날에 엄청 재밌게 봤는데요, 사각형 네 컷 만화로 나뉘어서 대사도 많지 않아요. 그 안에서 인물들이 서로 엮이고 꼬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이 굉장히 재밌어요. 그래서 흥미로웠죠."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이탕은 자신이 해친 사람이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에게 악인을 감별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만, 확신을 갖지 못한다. 또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살인을 정당화해도 되는지 딜레마에 빠진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송촌과 무조건 좀 달라야 했고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 난감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많이 욕심났던 캐릭터였어요. 그동안은 대부분 어떤 사건을 겪고 조금씩 성장해가는 인물을 보여드렸는데 그런 모습에 좀 더 극단의 감정까지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잘해보고 싶었죠."
최우식은 평범한 대학생부터 살인을 저지르는 단죄자까지 간극이 큰 캐릭터의 매 순간을 밀도 있는 연기로 풀어냈다. 소심해 보였던 이탕은 극한 상황과 마주하며 홀로 갈등한다. 이는 '살인자ㅇ난감'만의 특징적인 매력이기도 하다. 악을 처단하는 이탕의 영웅적 면모 대신 본인의 능력을 완벽하게 믿지 못하는 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흔한 다크히어로물과 결을 달리 했다.
"이탕의 능력은 저주 같아요. 수산시장에서 일할 때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냥 벼랑 끝에 몰린 친구가 나머지 인생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뿐이라고 여겼죠. 그런 감정 표현을 위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감독님과 소통을 많이 했어요. 제 연기가 오버스러울까봐, 믿음을 못 줄까봐 걱정했던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송촌은 스스로를 자기합리화해서 밀고 나가는데, 이탕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경험이 쌓이면서 얼굴은 변할 수도 있지만 감정의 소용돌이나 머리에서 부딪히는 감정들은 똑같았을 거예요."
원작 속 이탕은 점차 극한 상황에 놓이면서 중후반부 이후 외모부터 크게 달라진다. 최우식 역시 체격을 키우는 '벌크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증량 대신 이탕의 이미지와 심리 변화에 집중했다.
"원작에서는 이탕이 몇 달 새 몸도 커지고 거의 살인 병기가 돼요. 저도 몸을 만들어보려 했는데 얼굴부터 많이 찌는 스타일이라 고민이 많았어요. 얼굴에 살이 오르니까 힘들어하는 이탕의 모습과 좀 안 맞더라고요. 사람이 변하는 게 힘들어요.(웃음) 그래서 증량을 멈추고 내적인 표현에 더 집중했어요. '그런 짓을 하고 다니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까', '이렇게 많은 사건을 겪은 얼굴은 어떨까' 계속 상상하면서 연기했어요."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날 선 긴장감을 유지한 이탕, 난감, 송촌의 삼각 구도는 '살인자ㅇ난감'의 튼튼한 기둥이었다. 최우식은 함께 호흡을 맞춘 손석구, 이희준을 향한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처음에 '이 형들이랑 같이 연기하면 얼마나 재밌고 피 튀길까' 했는데 막상 많이 마주치진 못 했어요. 부산 마트에서 한 번, 공사장에서 한 번 정도였죠. 형들의 연기를 현장에서 가편집본으로 볼 때마다 '나도 잘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이 컸어요. 그래도 너무 좋았어요. 서로 재밌게 농담하는 분위기라 재밌었고, 두 분을 보면서 배운 게 진짜 많아요. 생각해보니 지금껏 (이)희준이 형처럼 벽에 사진을 붙여가면서 캐릭터를 연구하고 관찰해본 적은 없더라고요. 스스로 어리석다고 반성하기도 했어요. 형들처럼 연기를 즐기면서 공부하고 싶어요."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이탕은 최우식의 인간미와 만나 더욱 폭발력 있는 캐릭터로 구현될 수 있었다. 상처 많은 고등학생부터 무자비한 빌런, 불안한 청춘까지 그 특유의 친근한 얼굴은 '거인', '사냥의 시간', '옥자', '마녀', '부산행', '기생충' 등 그간 지나온 작품의 흥행을 견인한 힘이기도 했다. 최우식은 "이미지란 게 연기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어서 스스로 숙제라고 느낀다"고 털어놨다.
"'기생충'은 그 앙상블에 제가 낀 것이죠. '거인'도 만약 지금 제가 다시 찍는다면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솔직히 모든 작품은 엄청난 박자가 잘 맞아서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그날 배우와 스태프들의 컨디션, 감독님의 호흡이 모여야 그런 작품들이 나올 수 있죠. 다행히 저는 그런 작품이 몇 개 있어서 다른 곳에서 좀 넘어지더라도 '아 그래도 예전에 잘했잖아, 이날 컨디션이 좀 안 좋았나 보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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