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데자뷔?···김정은 ‘트집’ 잡는 NLL은 ‘해상 분계선’인가, ‘해상 국경선’인가[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이현호 기자 2024. 2.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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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군사분계선 같은 해상선 필요 설정
NLL, 南함정·항공기 초계활동 북방한계
이양호 “정전협정하고 아무 관계 없다”
1970년 방송선 피랍 후부터 NLL 갈등
美 비밀외교전문 “NLL은 국제법 위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14일 해군에 장비하게 되는 신형 지상대해상 미사일 ‘바다수리-6’형 검수 사격 시험을 지도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서울경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방한계선(NLL)을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월 15일 “김정은 동지께서 한국괴뢰들이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인 ‘북방한계선’을 고수하려 각종 전투함선을 우리 수역에 침범시키며 주권을 침해하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해상주권을 수사적 표현이나 성명이 아니라 실제적 무력행사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서해상 남북경계를 ‘국경선’으로 칭하면서 침범 시 무력도발로 간주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해 서해 5도 인근 국지도발에 대한 명분 쌓기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남북 해상경계를 ‘해상국경’으로 언급한 건 처음이다. 북한이 남북을 민족 관계가 아닌 교전국으로 규정한 데 따른 것으로 후속 조치로, NLL을 무력화하는 해상국경선을 법적으로 못 박으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北함정 NLL 침범시 남북 무력충돌 우려”

사실 북한은 NLL 무력화 시도를 꾸준히 이어왔다. 북한은 1977년 ‘해상군사경계수역’, 1999년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2007년 ‘서해 경비계선’ 등 NLL을 대체할 새로운 경계들을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말하는 서해상 국경선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국경선’이라고 언급한 상황이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이 서해 NLL을 인정하지 않고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에 이른바 '국경선'을 그어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변치 않는 우리 군의 해상경계선”이라고 일축하고 NLL 수호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한 헌법 개정을 앞두고 해상국경선 개념을 명확히 하는 군사적 메시지를 제시한 것”이라며 “새 헌법에 NLL을 무력화하고 국경선을 선제적으로 선점하는 의도로 향후 북한 경비정이 NLL 침범을 시도한다면 남북 간 무력충돌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남북 간 주장이 엇갈리 NLL의 법적 근거는 무엇일까.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은 1953년 8월 30일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미 육군 대장 마크 클라크 장군이 설정한 경계선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서해 및 동해 접경 지점의 한계선이다. 정전협정 체결 과정에서 육지에는 휴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씩의 구간에 설정된 DMZ(비무장지대)가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으로, 해양에도 이와 같은 선이 필요해 설정한 것이다.

위도 37도 35분과 38도 03분 사이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의 영토인 서해 5도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의 북단과 북한 측 관할인 옹진반도 사이다.

남북 양측 간에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을 방지한다는 정전협정의 실질적인 이행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사실상의 해상경계선이자 군사분계선이다. 이를 기준으로 남한의 함정 및 항공기가 초계활동을 할 수 있는 북방한계로 삼고 있다.

NLL 설정 당시 군사적 정세가 어떠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엔(UN)군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모무 장악한 상태로, 압록강과 두만강 하구까지도 UN군이 점령한 상황이었다. 정전협정 합의를 위해 휴전선의 육상에서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적 저항만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이다.

정전협정 위해 유엔군 사령관 일방적 선언

사실 북한 근해의 섬 상당수가 유엔군 및 소속 부대에 장악하고 있어 이를 기준으로 영토와 영해를 설정할 경우 북한 입장에서는 서해안에 전역에 걸쳐 유엔군이 주둔하고 자칫 잘못하면 바다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였다. 북한이 정전을 위한 최종 합의까지 극렬히 저항한 이유다.

문제는 유엔군 입장에서도 당시 상태로 모든 섬을 관할해 북한의 서해안, 동해안을 포위할 경우 관리의 어려움이 있고, 북한의 반발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크다는 우려하고 있었다.

이에 전쟁 전 남한의 영토였던 서해 5개 도서(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뜻한다.)만을 유엔군 사령관의 관할에 두는 것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쌍방은 해상분계선에 대해만 합의하지 못한 채(유엔군 측 주장은 3해리, 공산군 측 주장은 12해리)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이 같은 정전협정은 사실 유엔군 사령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데 목적을 둔 정전협정이 안정적으로 이행되기 위해 유엔군 입장에서는 해상분계선이 필요했다. 당시는 북한과 중국 해군은 전무한 상황으로 유엔군 사령관은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유엔군 및 남한 해군, 해병대가 이 이상은 북진하지 않겠다는 목적을 지닌 북방한계선을 선포했다.

고속정편대 승조원이 긴급출항이 하달되자 신속히 출동해 NLL 기동경비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방일보

그러나 이 북방한계선이 정전협정 이후에도 서해 상에서 남북 간 무력 충돌이 지속되는 빌미가 됐다. 북한은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공표한 선으로 ‘자신들은 북방한계선에 동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한다. 이는 1996년 7월 1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이양호 공군 예비역 대장의 발언에서 확인됐다.

이양호 전 국방장관은 북한이 NLL 남쪽으로 넘어와 남한 어선과 해군 함정에 대한 적대 행위와 관련해 “서해에서 북괴함정이 내려온 것은 왜 보도를 안 했느냐 그러시는데 서해함정이 내려온 것은 정전협정 위반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해에는 저희가 NLL선이라고 ‘노스 리미트 라인’(North Limit Line), 북방한계선을 우리가 그어놓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선들이 조업을 하다가 잘못해가지고 북측에 가까우면 잡혀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가 설정해 놓은 선이지 북측에서는 그것을 인정을 안 하지만 잠정적으로 그 선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네들도 넘어오지는 않는 겁니다. 이것은 정전협정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北, 1973년도까지 NLL 이의 제기 않해”

학계와 군사전문가들 일부도 이에 대해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을 지키기 위해 유엔군이 설정한 선으로서 북한에서는 그것을 무시한다고 하여도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유엔군 “우리가 만든 선이니까 우리도 무시하겠다”하면 군사충돌의 위험이 현실화 될 수 있고, 북한도 무시하겠다고 외치고 침범하는 경우가 무력 충돌의 책임을 떠넘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북한도 말폭탄을 던지며 위협할 뿐 무력 충돌을 회피하는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북한은 NLL이 1953년 설정 당시 북한에 유리한 선이었기 때문에 1973년도까지는 NLL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인정해왔다.

그러다 1970년대 초에 어선이 북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인도해주던 남한의 방송선이 북한으로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 북한 함정이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며 남한 함정과 마주치는 등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때부터 북한은 분쟁을 벌일 때 마다 어김없이 ‘북방 한계선 인정 못하겠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15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NLL의 법적 근거 논란은 미국 측도 잘 알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포함한 미국 관리들은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국과 한국에 의해 설정된 서해안의 북방한계선(NLL)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1975년 미국 비밀외교전문을 통해 “일방적으로 설정된 NLL은 확실히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키신저 장관은 구체적으로 “NLL은 일방적으로 설정됐고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공해의 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설정하는 한 이는 확실히 국제법에 배치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전문들은 기밀에서 해제되면서 국내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헌법도 살펴보면, 북방한계선을 국제법상의 영해를 정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유인 즉,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 전체로, 이 영토 조항에 따라서 서해로는 압록강 하구까지, 동해로는 두만강 하구까지 모두 대한민국의 영해가 된다.

따라서 국제법상 최소한의 영해 운운하는 북한의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인정할 수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또 북한 역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서해 해역에 국제법상의 ‘영해’ 개념을 가져와서 근거로 삼는 주장은 현재 북한 헌법과도 논리적으로 모순이 된다는 지적이다.

헨리 키신저 “일방적 설정 국제법에 배치”

이처럼 해상 경계에 대한 이견으로 남북갈등이 지속되자 이를 완화하고자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방한계선 인근 수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2018년 9월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든다는 내용에 서명해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남북갈등이 일정부분 해소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반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 등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하면 이는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며 무력 행사에 나서겠다고 위협했다.

남북의 군사적 대립을 떠나 현실을 직시하면 NLL은 서해 5도와 주민을 보호하는 울타리다. NLL이 무력화되면 조업과 선박 항해에 제한을 받아 서해 5도가 고립·봉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NLL은 국가안보 수호의 ‘방파제’다. 서해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불과 35㎞다. 서해의 해양통제권을 상실하면 인천과 서울, 수도권이 포위·고립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지난 2월 16일 지상작전사령부를 방문해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방부

특히 NLL은 대한민국 경제활동의 ‘생명선’으로 불린다. NLL은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서해는 수산물과 해저자원이 풍부한 보고(寶庫)이자 세계로 진출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장대로 해상경계선이 재설정될 경우 우리는 약 8000㎢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상실할 수 있다. 비행기와 선박의 우회 항행은 연간 127억 원의 손실이 유발되고, 북한 위협 증가에 따른 간접적 피해까지 더하면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NLL을 영해를 구분하는 국경선이 아니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군사전문들은 강조한다. 헌법상 북한 땅이 대한민국 영토임에도, 국제적으로 남북한이 개별 국가로 취급되는 상황이다. 또 한국전쟁 당시 획득한 강원도 접경지역의 경우 한국은 행정권만 가질 뿐, 실상은 유엔군 관할하에 있다는 애매한 정전협정도 무시할 수 없다.

NLL 수호에 대한 군 당국의 의지는 분명하다. 신 장관은 지난 2월 16일 지상작전사령부를 방문해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작전 현황을 보고받은 뒤 “적(북한)이 군사분계선(MDL)과 NLL 이남에 대해 도발하면 즉·강·끝 (즉각, 강력히, 끝까지) 원칙으로 단호하게 응징하고 도발 세력과 지원 세력 모두를 완전히 초토화하라”고 지시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이현호 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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