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맨' 김희애 "제 이름값이요? 글쎄요, 비싸게 만들어야겠죠"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제가 만일 내일 바로 불행하다면 연기 안 할 거예요. 저는 숨을 쉴 수 있으면 행복해요. 긍정적이거나 멘털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자꾸 정신적인 근육을 키워야 하고요. 그래서 의식 같은 루틴을 치러요. 저는 행복하지 않으면 연기 안 하려고 해요."
김희애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7일 영화 '데드맨'(감독 하준원) 개봉을 앞두고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데드맨'은 이름값으로 돈을 버는 일명 바지사장계의 에이스가 1천억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후, 이름 하나로 얽힌 사람들과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해 추적하는 이야기. 김희애는 극 중 이름을 알리는데 정평이 난 정치 컨설턴트 심여사 역을 맡았다.
이날 김희애는 "정치는 정말 'ㅈ'자도 모른다"며 "'퀸메이커'와 달리 이번 심여사는 정치를 손아귀에 쥐락펴락하는 파워풀한 인물이고 완전히 다른 단계에 있는 사람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공개될 '돌풍'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도 정치가 소재다. 세 작품 다 결이 완전히 다르고 다른 색이라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김희애와 함께 호흡을 맞춘 조진웅은 '디테일한 에너지가 너무 좋아 들이대지도 못하겠다'며 극찬했다. 그러나 김희애는 오히려 조진웅에게 그런 점을 느꼈다며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감독님이 몇 년간 공부해 쓴 허구의 세계, 시나리오 안 심여사 캐릭터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그런 김희애에게 조진웅과의 호흡에 대해 물었다.
"선배가 되면 조심스러워요.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고. 저는 후배들을 품고, 챙기고 그런 푸근한 스타일도 못되고 연기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정은 질척거릴 정도로 많은데 표현할 시간은 없고 상대가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제 일만 마무리하고 오려고 해요. 그런데 조진웅 씨는 남에게 피해를 안 주면서도 푸근하고 유머러스하게 말씀 잘해주시고, 선을 안 넘으세요. 각자 일할 때 사담은 없고 일만 했어요. 오히려 그런 스타일 같아 방해하지 않으려 해서 몰랐어요. 그분이 저를 그렇게 느끼셨는지."
과거 인터뷰에서 김희애는 감정에 몰입한 연기를 했을 때 전율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김희애가 생각하는 전율을 느끼는 연기는 토해내고, 감정이 끝까지 가는 대사나 상황일 때다. 그러나 심여사는 이성적이고 삶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기에 조금 다른 색깔의 연기가 필요했다. 김희애가 생각하는 심여사는 '부부의 세계' 지선우와 달리 굉장히 이성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면서 "'데드맨'에서 전율을 느낀 부분이 있다면 오프닝에서 처음 이만재를 만났을 때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굉장히 강했다. 지옥의 관에 들어갔던 사람을 구출해서 만나자마자 따귀를 때리고 평상시에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지 않나"라며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 '데드맨'에서는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보는 카타르시스라고 할까"라고 설명했다.
"연기가 정답이 없잖아요. 일부터 수천만 가지의 감정표현이 있는데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거든요. 예상할 수 있는 범주 내에 끌어내냐에 따라 신선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A 옵션을 선택했다면 B, C 이런 옵션이 많을 텐데 앞으로 연기할 때 많은 옵션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지금 현재 그 작품을 보면서 '다음번엔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라는 그런 생각을 했었죠."
김희애가 연기한 심여사를 본 이들은 평소 성품과 연기의 격차가 크다며 입을 모았다. 김희애 또한 심여사 같은 냉철한, 냉혹한 모습이 내재된 부분이 전혀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대사 톤이나 분위기가 현실적이지 않고 내추럴하지 않은 류의 캐릭터를 꾸준히 맡고 있다. 때문에 김희애는 요즘 생활대사 같이 밝고 명랑한, 현실세계의 내추럴한 '밥 먹었니' 같은 대사를 하고프다.
그렇지만 '데드맨'의 정치 컨설턴트 심여사와 전작 '퀸메이커'의 황도희, 공개를 앞두고 있는 '돌풍'의 국무총리에 맞서는 경제부총리까지. 김희애는 질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커리어우먼 혹은 전문직 여성 캐릭터의 대명사가 됐다. 김희애라는 배우의 대체불가한 이미지도 한몫을 했을 테다. 김희애 스스로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지, 실제 모습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를 어떨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묻자 김희애는 "좋은 쪽인지, 안 좋은 쪽인지 모르겠지만 비틀어서 다른 지점의 나를 보여주시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의 걸림돌이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며 "배우로서 '밥 먹었니' 이런 생활 대사나 인간적인 면을 보여드리고 싶고 반면 심여사를 또 다른 옵션으로 연기하고 싶은 배우로서의 욕망도 있다"고 답했다.
이어 "강렬한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내가 그 반대 캐릭터를 할 때 더 시너지가 높아질 수도 있는 거다. 정답은 없다. '김희애가 이런 역할을 이렇게 할 거다'라는 기대로 배역을 제안해 주셨는데 그걸 또 비트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며 덧붙였다.
심여사를 위해 김희애는 볼륨감 넘치는 단발 헤어스타일에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 컬러렌즈까지 착용하는 등 비주얼 적으로 다양한 매력을 뽐냈다. 특별히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찰나, 분장팀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 김희애의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김희애는 덕분에 얼굴만 들이대고 있었다는 겸손한 비하인드를 전했다.
"좋았어요. 저는 더 했으면 좋겠어요. 완전히 제가 안 보였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가 각막이 되게 얇아요. 라섹 수술을 했는데 그것도 안되는걸 겨우 한 눈이거든요. 렌즈도 많이 뺐다 꼈다 해야 하고 연기를 하다 보니 말라서 애를 많이 먹긴 했어요. 그런데 어차피 인간의 몸은 소모되는데 배우로서 좀 쓰지 뭐 싶었어요. 좋은,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이처럼 김희애는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연기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모든 배우가 다 그러지 않을까. 나는 어릴 때 철이 없어서 이렇게 오래 하게 될지 몰랐고 일도 재미가 없었다"며 "그런데 어떻게 운명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고 그만두지 않게 돼서 다행이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연기에 대한 태도가 좋아졌고 갈망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1984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데뷔해 어느덧 올해 데뷔 39주년을 맞은 김희애. 오래 시간 연기했기에 원동력이 고갈될 수도,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김희애는 스스로 과거보다 더 좋아진 태도, 더 뜨거워진 열정을 자부했다. 지옥 같은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한국이 아닌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하고 싶은 소망과 갈증도 고백했다.
"20대 때 더 매너리즘에 빠져있었어요. 일이라는 게 생활이 물론 중요하지만 더불어 자기의 존재의 이유랄까요. 사람이 화초를 가꿔서 행복한 사람이 있고 각자의 그게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연기밖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그걸 안 하면 저는 뭐가 되겠어요. 아는 거라곤 그거밖에 없으니까 너무 감사하고. 최대한 오래 하고 싶어요."
'데드맨'은 이름과 이름값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바지 사장에 대한 이야기지만 배우에게도 이름과 이름값이란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김희애에게도 자신의 이름과 이름값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을 터. 때문에 김희애에게 스스로의 이름에 값을 매긴다면 얼마일지를 물었다.
"저는 한 번도 이 작품을 만나기 전에는 이름의 중요성을 인지를 못했어요. 이만재가 500만 원에 이름을 팔고 관 속까지 들어갔는데 실제 그런 일이 있다더라고요. 정말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고 '데드맨'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제 이름에 값을 매긴다면? 글쎄요. 값을 이제 높게 만들어야겠죠. 비싸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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