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바나나 멸종 막을 유전자품종, 호주서 세계 최초 허가
곰팡이병으로 1950년대 이어 다시 바나나 퇴출 위기
GMO 반감 극복할 유전자 교정 방식 품종도 연구
호주 정부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변형(GM) 바나나를 식용으로 허가했다. 바나나를 위협하는 전염병에 대항하는 조치이다. 최근 아시아에서 처음 발생한 곰팡이병이 남미, 호주까지 퍼지면서 식탁에서 바나나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바나나는 유전자가 모두 같아 전염병에 취약했다. 과연 과학이 바나나를 멸종의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곰팡이 저항 유전자 가진 바나나 허가
호주·뉴질랜드 식품기준청(FSANZ)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유전자 변형 캐번디시 바나나 품종인 QCAV-4가 기존 바나나와 같은 영양 성분을 가졌고 식용으로 안전하다고 승인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식품부 장관이 60일 내 이 결정에 대해 재고를 요청하지 않으면 최종 승인된다. 앞서 호주 보건부는 지난 12일 호주 퀸즐랜드공대에 QCAV-4의 상업적 재배에 대한 허가권을 발급했다.
QCAV-4 바나나는 세계 최초로 상업적 생산이 승인된 유전자 변형 바나나이자, 호주에서 재배가 승인된 최초의 호주산 유전자 변형 과일이다. 퀸즐랜드 공대는 QCAV-4가 전 세계 200억 달러 규모의 바나나 산업을 위협하는 ‘파나마병 열대 품종4(TR4)’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TR4는 학명(學名)이 ‘푸사리움 옥시스포룸(Fusarium oxysporum)’인 곰팡이의 일종이다. 바나나에 치명적인 파나나병을 일으킨다. 1950년대 다른 계통인 TR1 푸사리움 곰팡이가 파나마에서 처음 창궐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당시 파나마병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던 바나나인 그로 미셸 품종이 사실상 퇴출당했다. TR4 곰팡이는 그로 미셸의 후계자인 캐번디시 품종 바나나를 공격한다.
퀸즐랜드 공대 생물환경과학부의 제임스 데일 (James Dale) 석좌교수는 25년 연구 끝에 QCAV-4를 개발했다. 그는 지난 2017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야생 바나나에서 찾은 유전자를 캐번디시 바나나에 주입해 3년 동안 TR4 곰팡이를 이겨냈다고 발표했다.
마거릿 세일(Margaret Sheil) 퀸즐랜드 공대 부총장은 이날 “우리 연구진이 TR4 저항성 유전자를 찾기 위해 호주연구위원회로부터 연구비를 받은 지 20년이 지났다”며 “이번 승인은 기초 연구가 상업화 과정을 거쳐 가시적인 성과로 발전하는 멋진 사례”라고 말했다.
QCAV-4 바나나는 호주 북부에서 7년 이상 야외 재배 실험을 거쳐 파나마병 TR4에 대한 저항성이 높은 것으로 입증됐다. 데일 교수는 “이번 결정은 세계 여러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TR4로부터 캐번디시 바나나의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두 번째 닥친 바나나 멸종 위기
바나나는 1950년대에 이어 최근 다시 멸종 위기로 내몰렸다. 그로 미셸을 계승한 캐번디시 품종 역시 1989년 대만에 창궐한 파나마병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바나나가 말라 죽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1980년대 대만에서 재배하는 바나나의 70%가 TR4 곰팡이에 감염돼 말라 죽었다.
TR4는 그동안 동남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2013년 중동의 요르단까지 퍼졌다. 2015년에는 호주와 아프리카 모잠비크, 바나나 최대 생산국인 인도에서도 발견됐다. 2019년에는 남미 콜롬비아까지 퍼져 캐번디시가 식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중남미 지역은 전 세계 바나나 수출물량의 80%를 생산한다.
TR4 곰팡이가 뿌리로 감염되면 물과 영양분이 오가는 관을 막아 바나나 잎이 누렇게 시들어 죽는다. 푸사리움 곰팡이는 어떤 농약도 듣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방법밖에 없다. 콜롬비아 정부는 TR4 감염 의심 사례가 발견되자마자 농장 주변 11㎢ 지역에서 차량과 사람의 출입을 차단했다. 곰팡이는 감염된 바나나는 물론이고 곰팡이 포자(胞子)가 들어 있는 물과 흙으로도 감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국가도 TR4가 발견된 후 전염을 막지 못했다. 베트남 식물자원센터가 2022년 2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TR4는 25년 안에 베트남 바나나 산지 71%를 없앨 정도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저항 유전자 찾아 야생 바나나 탐색
사실 바나나 멸종 위기는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바나나가 수출품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껍질이 단단해 장거리 수송에 적합한 그로 미셸 품종이 개발된 19세기 이후다. 그로 미셸이나 그 후계자인 캐번디시 모두 씨가 없어 뿌리줄기를 잘라 번식시킨다. 즉 모든 바나나가 유전적으로 한 개체인 셈이다. 한 바나나가 병에 걸리면 전체가 다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그로 미셸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다행히 비슷한 캐번디시 품종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캐번디시를 대체할 품종이 없어 바나나 산업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대안이 제시된 것이다. 데일 교수는 동남아시아에서 자라는 야생 바나나(Musa acuminata)에서 저항성 유전자 RGA2를 찾아 캐번디시 품종에 도입했다. 캐번디시 바나나에는 RGA2 유전자가 있지만 휴면 상태로 있다.
데일 교수 연구진은 유전자변형농산물(GMO)에 대한 소비자의 반감을 고려해 최근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곰팡이 내성을 부여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효소 단백질이다. 외부 유전자를 주입하지 않고 자체 유전자로 교정한다는 점에서 GMO와 다르다.
참고 자료
Australia Department of Health and Aged Care(2024), https://www.ogtr.gov.au/gmo-dealings/dealings-involving-intentional-release/dir-199
Food Standards Australia New Zealand(2024), https://www.foodstandards.gov.au/food-standards-code/applications/A1274-Food-derived-from-disease-resistant-banana-line-QCAV-4
MycoKeys(2022), DOI: https://doi.org/10.3897/mycokeys.87.72941
Nature Communications(2017), DOI: https://doi.org/10.1038/s41467-017-016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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