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의대 증원과 백년지대계
최근 정부가 2035년까지 의사 1만 명을 증원하기 위해, 2025학년도부터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5058명으로 5년간 2000명씩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2000명은 서울대 이과계열 선발인원 전체와 비슷한 매우 큰 규모다. 증원 대상은 주로 비수도권 의대이며 지역인재전형 60% 이상을 계획하고 있다. 무려 27년 만의 증원이고, 당장 내년부터 2000명씩이라는 숫자가 파격적이라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주로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이러한 방식의 증원이 적절한가가 논의의 핵심으로 다뤄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의대 증원은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다. 바로 대학 입시와 국가 전체의 인재 수급 문제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의대는 대입에서 블랙홀로 불린다. 자연계 최상위권 학생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예전부터 의대는 인기 학과이긴 했지만, IMF 이후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직업적 안정성이 중요해지면서 그 인기가 계속 높아졌고, 최근 예를 들면 2023학년도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의대에 합격하려면 보통 내신 등급 1.2 이내가 요구될 정도로 그 인기는 정점을 찍어 왔다. 국가 전체로 볼 때 특정 학과 인재 쏠림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이공계의 걱정이 매년 입시 후 쏟아지곤 했다.
과연 의대 증원이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앞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얼마 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의대 입시 열풍을 가라앉히는 근본적인 처방은 정원 확대다. 지금까지 의사 수 부족으로 고소득이 보장돼, 의사를 선택하는 직업 쏠림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합리적으로 의대 열풍이 가라앉는 게 맞다. 앞으론 학부모, 학생도 진로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 단체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긴 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인력수급 문제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가 성숙할수록 어느 분야든 들인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크게 차이가 나면 쏠림이 생기고,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상당수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어떨까? 벌써 모 업체의 입시설명회가 발 디딜 틈이 없다든지, 이미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증원 소식에 들썩이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 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된 이공계의 걱정이 커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의대 블랙홀의 크기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증원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이 있다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큰 혼란이 생긴다면,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혼란스러운 몇 년이 치명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입에는 큰 변수가 생겨 혼란기가 찾아오고, 차차 시간이 지나 안정기가 시작되는 주기가 반복된다. 큰 변수로 예상치 못한 혼란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대입 4년 예고제를 시행하고 있고, 고2 학생들 대상으로는 미리 정보를 주기 위해 대입 시행 계획을 발표한다. 우리나라의 대입은 최근 문이과 통합 수능, 약대 선발, 정시 40%, 수능 킬러 문항 배제, 의대 증원까지 대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가 너무 자주 찾아오는 경향을 보인다. 혼란기와 안정기가 주기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혼란기에 이어 또 다른 혼란기가 온 느낌을 최근 받는다.
"교육 백년지대계." 상투적이긴 하지만 교육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 너무 자주 바뀔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일단 파격적인 계획이 먼저 발표되기는 했지만 현재 의대 증원은 국민의 압도적 찬성 여론으로 지원 받고 있는 만큼 의대 증원 문제는 해결되길 바란다. 시행하는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의료보험체계 등 종합적 대책을 마련하여 혼란 없이 시행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한기온 제일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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