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좋은 도시는 맛집 같아…서울, 기능적이지만 맛 없는 도시” 도시인문학자의 쓴소리
“도시행정이 도시 경쟁력 좌우”
한 나라 여행으로 두 나라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스페인이다. 까스띠야(Castilla) 왕국의 중심지였던 수도 마드리드와 까딸루냐(Cataluña) 왕국의 중심인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도시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언어마저 차이가 나 서로 다른 나라의 도시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스페인은 15세기 이슬람과 외세의 공략에 맞서기 위해 두 가톨릭 왕국이 왕실 혼인이란 관습을 통해 하나의 국가로 통합했지만 이후 ‘힘의 운동장’이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까스띠야쪽으로 기울면서 소외된 까딸루냐가 분리독립까지 요구하는 지금의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됐다. 그래서일까, 두 도시를 대표하는 축구팀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맞붙는 경기(엘끌라시꼬)는 한일전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어느 곳이 스페인의 본모습이며, 어딜 가야 진짜 스페인을 보고 왔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신간 ‘도시의 맛’을 쓴 도시인문학자이자 도시여행 칼럼니스트인 정희섭 작가는 이런 질문에 “단언컨대 어느 쪽도 아니다“라며 “다양성은 국가가 아니라 도시로 설명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는 영토의 크기를 정하고 국가 권력이 미치는 가장 바깥쪽 가장자리에 국경선을 긋지만, 도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가장자리가 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어떤 다양성을 품고 어떤 맛을 내고 있을까? 도시인문학자의 눈으로 본 서울과 세계 도시는 어떤 모습일지, 21세기 우리는 어떤 도시에서 살고 있는지 그에게 물었다.
-도시여행에서 무엇을 얻나?
“모든 여행은 갈구에서 시작한다. 갑갑한 일상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거나 지친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아 나서는 것도, 웅장한 건축물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려는 여행, 시끌벅적한 야시장과 도시 뒷골목을 찾아 나선 행차도 모두 호기심과 갈구하는 마음이 있어서다.
낯선 해외 도시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게 인생 친구라는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도 여행에서 얻은 큰 즐거움과 낙이다. 우연한 기회에 주고받은 인사 한마디로 저명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인연이 되기도 하고, 중국의 부호와 이탈리아의 음악가와 만나게 된 것도 여행에서 얻은 것들이다. 그러다 보면 다음 도시에서 또 누구를 만나게 될지 궁금해지고 동경하게 된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도시가 늘어나게 됐고, 100곳 이상이 되면서는 200곳, 300곳이란 목표와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1년에 아무리 적어도 60일, 많게는 120일은 외국 도시에서 보낸다.”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세계 여러 도시와 비교해 봐도 경쟁력 있는 도시라 말할 수 있다. 서울만큼 뭐든 할 수 있으면서도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가 없다. 자랑스럽고 볼 것 많은 도시다. 아쉬운 것은 이런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능적인 측면에선 훌륭하지만, 도시의 맛은 없다고 해야 할까.
서울은 여행거리와 관광거리가 많은 도시다. 다만 이런 것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세계 배낭여행객들의 성지라 불리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와 서울의 이태원을 비교해 봐도 그렇다. 이태원은 카오산로드보다 훨씬 길고 넓지만 이태원만이 가진 지역 콘텐츠를 뽐내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을 둘러싼 산자락도 우리 눈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외국인들에겐 엄청난 볼거리다. 이런 부분들이 좀 더 멋지게 가꿔졌으면 좋겠다. 도시행정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는 자생력이 있나?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맛이 있는 곳들이다. 대구, 목포, 여수 등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가 많다. 다만 어디나 비슷하다는 게 좀 아쉽다. 여기 있는 게 저기 있고, 저기 있는 것도 여기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도시만의 것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거리가 멀더라도 그곳에만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게 지방 도시가 갖는 매력일 테다.
문제는 많은 지방 도시가 소멸 위기에 놓여 걱정이다. 지방 대학도 통폐합이 되고 있고, 외국인 학생들이 아니면 운영이 안 될 정도다. 초등학교 폐교가 잇따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인구는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지역 축제 때만 반짝 찾는 곳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삶의 인프라가 서울과 수도권에 지나치게 쏠린 탓도 있다. 살면서 즐거움을 누릴 수 없고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면 누가 지방에 살려고 하겠나. 지방이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소멸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도시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인문학적 측면과는 별개로 효율 측면에서 보면 도시 행정가들의 역할이 도시 경쟁력을 만든다고 본다. 제대로 계획된 도시에선 시민 삶도 편리하고 풍족해진다. 예컨대 보행로의 동선과 공원 배치가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걸을 수 있는 도시가 되고 비만 걱정이 주는 건강한 도시가 될 수 있다.”
-좋은 도시와 나쁜 도시는 어떻게 나뉘나?
“맛집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한번 간 후 재방문 의사가 있으면 보통 맛집 대열에 든다. 주위 평이 어떻든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식당은 ‘나쁜’ 식당이 되는 것처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라면 좋은 도시가 아닐까 싶다.
식당을 평가하는 데도 기본인 음식맛 외에 점포의 위생 상태, 음악과 조명 같은 분위기, 직원의 친절함, 고객을 향한 업주의 배려 등이 고려되는 것처럼, 도시를 느끼고 평가하게 하는 것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마주치는 지역 주민들에게 말 걸기가 어렵거나 불친절이 기본인 곳, 암울한 분위기가 드는 곳, 이동이 불편하고 단절된 곳들이 내 기준에선 나쁜 도시인 셈이다. 결국 도시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경험한 370여 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는?
“단언컨대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꼽는다. 성경 속에서나 봤던 성지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느낌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과 감동이었다. 전쟁과 테러의 위험 속에서 유대인들이 사는 방식을 느꼈을 때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몇 번은 더 갔으면 하는 도시다.
두 번째로는 독일 남서부의 소도시 바덴바덴을 들고 싶다. 한국인들에겐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세울(Seúl)’을 발표한 곳으로 유명한 바덴바덴은 유럽을 대표하는 온천 도시라 유황 냄새와 함께 기억되는 곳이다. 이곳은 갈 때마다 편안함을 느낀다. 휴양이 되는 도시다. 그래서일까 힐링센터도 곳곳에 많다.
방콕도 세계 어느 도시보다 강한 인상을 가진 도시다. ‘다양함이라는 악기를 천사가 연주하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모든 게 ‘괜찮아요(마이뻰라이, Maipenrai)’면 통하는 곳이다. 다양한 인종과 서로 다른 종교가 공존하는, ‘다름’이 ‘화음’을 만드는 놀라운 도시다.”
-꼭 경험해 봐야 할 도시를 추천한다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권한다. 과거 4대 부국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이미 1920년대에 지하철 뚫은 저력이 있는 도시다. 어디를 가나 춤(탱고)과 음악이 있고 여유가 있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관계를 느낄 수 있는 도시다.
급변하는 도시의 빡빡한 삶에 지쳤다면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가보길 추천한다.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는 곳이다. 같은 하루 24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거다. 느림의 미학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아이슬랜드 레이캬피크도 꼭 한번 경험해 볼 만한 도시다. 그곳에선 대자연을 느낄 수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찍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자연이 빚은 빙하와 고래가 감동을 준다. 용암이 분출한 화산재 위에 낀 이끼가 장관을 이룬다. 인간의 건축물로는 접할 수 없는 대자연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사악한 물가가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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