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감축 의지, DSR 보면 알 수 있다
1월17일 금융 당국이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2024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공개하며,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DSR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주택을 한 채 보유한 사람이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은 경우, 이 대출의 이자 상환분을 DSR에 포함시킨다. 본인은 전세로 살고 있으면서 갭투자로 다른 집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앞으로는 DSR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축소 기조를 선명히 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의 파급력은 상당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이날 “저금리 시대를 지나며 우리나라가 온통 빚으로 쌓여 있는 상태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금융위의 이번 방침은 ‘점진적으로 DSR의 구멍을 막는다’고 정리할 수 있다. 가계부채 관리의 핵심 장치로 여겨졌던 DSR은 그동안 예외로 분류되는 대출이 많아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전세와 DSR’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비판해온 이들은 임대인이 받는 ‘전세보증금’과 임차인이 빌리는 ‘전세대출’을 모두 DSR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부동산 경기 부양을 요구하는 이들은 부동산 매입 시 적용되는 DSR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해왔다. DSR 제도가 가진 막강한 위력 때문에, 양쪽 모두 DSR 관련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 부채 감축 ‘최종병기’ DSR
DSR은 낯설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고, 계산도 번거롭다. 개인이 빌린 ‘모든 빚의 총량’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DSR 규제는 ‘버는 만큼 빌릴 수 있게 하는 규제’다. 연 50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DSR 규제가 40%라면, 이 사람은 원리금으로 갚는 돈이 1년에 2000만원을 넘겨선 안 된다. 이때 ‘갚는 돈’은 주택담보대출 원리금뿐 아니라 신용대출, 카드론 등 ‘개인이 짊어지고 있는 모든 빚’의 원리금을 포함한다.
DSR이 한국 금융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8년이다. 이전까지 가계 금융, 특히 부동산 금융에서는 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기준선으로 작동했다. LTV는 ‘담보 가치’에 초점을 맞춘 비율이고, DTI는 ‘소득’을 기준으로 삼는다. ‘소득 대비 갚는 빚’을 따진다는 점에서 DTI는 DSR과 유사하다. 다만 DTI는 ‘기타 대출(신용대출 등)의 이자’만 계산하는 반면, DSR은 ‘기타 대출의 원리금’까지 따진다. 이 차이는 꽤 크다. DSR이 DTI의 확장판인 셈이다.
초창기 DSR은 금융기관을 관리하기 위한 일종의 지침으로 활용되었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 ‘전체 차주(빌린 사람) 평균 DSR’을 제시하고, 금융기관이 알아서 DSR이 높은 차주(소득 대비 돈을 많이 빌린 사람)의 비율을 조정케 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한 은행이 10명에게 대출을 해주었는데, 10명 가운데 한 명의 DSR이 100%를 넘기더라도, 나머지 9명 차주의 DSR이 낮으면 상관없는 구조였다. 10명의 ‘평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21년 4월,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발표되면서 차주(개인) 단위 DSR 규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받기 시작했다. ‘영끌’로 대표되는 무리한 대출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탓이다. 뒤이어 2021년 10월에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이라는 고강도 정책을 발표하면서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DSR 규제 적용 시점을 앞당기기로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인의 소득에 따른 대출 규제가 확대됐다. 다만 ‘빈 구멍’은 여전히 컸다. 전세대출, 전세보증금, 중도금대출, 예적금 담보대출, 서민금융상품 등은 차주 단위 DSR 계산 시 제외되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구멍이 전세와 중도금이다. 이들 대출이 제외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 전세대출은 서민 주거를 위한 수단이라는 이유로, 전세보증금은 국민 정서상 대출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중도금은 분양받은 사람들이 입주 전까지 돈을 모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미뤄왔다. 하지만 가계대출에 지속적으로 ‘적신호’가 켜지면서 DSR 확대 필요성이 대두됐다.
■ 덴마크와 네덜란드 사례
2023년 7월17일 한국은행은 ‘장기 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은 한국의 가계부채가 역사적으로, 전 세계 차원에서 무척 독특하다고 설명한다. 두 가지 현상 분석이 눈에 띄었다. 첫째, 한국은 주요 국가와 달리 지난 20년 동안 제대로 가계부채를 줄여본 적이 없다. 둘째, 가계부채를 줄인 다른 나라들을 살펴보니, 빚을 갚는 데 상당한 시간과 고통이 수반되었다.
한국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 국가들이 DSR을 적극 활용했고, 이 덕분에 저금리 환경 속에서도 가계부채를 관리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반면 한국은 2018년에야 DSR이 시범 도입됐고, DSR을 적용받지 않는 대출(전세대출 등)도 많아 규제 강도가 약했다고 지적한다. 2010년대 OECD 주요 국가들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완만한 속도로 줄여왔다. 반면 한국은 반대로 이 시기에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덜 겪은 한국이, 역설적으로 가계부채 감축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나라’는 한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들 국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가계부채 감축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과거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긴’ 나라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비율을 축소한 나라도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덴마크와 네덜란드다. 덴마크는 2009년 137%를 넘겼다가 2022년에는 80%대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도 2010년 120%를 넘겼던 가계부채 비율이 2022년에는 90%대로 낮아졌다.
덴마크·네덜란드 사례는 보험연구원이 2021년 11월에 발표한 ‘주요국 가계부채 조정 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두 국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직접적인 피해 국가는 아니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를 겪으며 경기 부진, 실업률 상승, 주택 가격 하락을 겪었고, 여기에 정부의 건전성 규제 정책이 강화되면서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 덴마크는 17년, 네덜란드는 18년 동안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상회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십수 년 넘게 끌어온 ‘가계부채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그나마 덴마크·네덜란드는 ‘온건한 방식’으로 가계부채를 줄인 축에 속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시스템이 무너진 미국과 영국, 재정위기로 국채금리가 상승하며 주택시장이 무너진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의 경우 상당한 충격을 수반하며 가계부채가 줄어들었다.
이때 국가별 ‘부채 다이어트’의 핵심 도구가 바로 DSR이었다. 한국에서도 DSR과 유사한 DTI를 2005년부터 운용했지만, 한국에서 DTI는 모든 차주에 일괄 적용된 게 아니라 규제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에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한국은행은 2013~2022년에 DTI 적용을 받은 신규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평균 23%에 그쳤다고 설명한다. DTI가 그동안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큰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전세, DSR의 중심에 서다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로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란 어려웠다. ‘전세’를 금융 당국이 겨냥한 이유다. 그런데 전세도 전세대출과 전세보증금이라는 두 가지 구멍이 존재한다. 금융 당국은 일단 ‘전세대출’만 제한적으로 규제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은행은 앞선 보고서에서 전세대출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6년 5%에서 2022년 9월 14%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대중화된 전세대출이 가계대출 급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평가다.
DSR 규제 확대는 금융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전세대출에 DSR 규제가 전면 적용되면, 다른 대출(신용대출 등)이 많은 사람, 소득이 낮은 사람은 전세대출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정치적 부담이 생긴다. 한번 늘어난 전세대출은 줄이기가 어렵다. 금융 당국이 전세대출의 DSR 적용 확대를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다. ‘무주택 갭투기’를 노린 이번 전세대출 DSR 규제 적용은 규제 대상이 제한적이고, 갭투기를 막는다는 명분 덕분에 반발도 상대적으로 적다.
일각에서는 전세대출에 DSR 규제를 적용하는 데 부정적이다. ‘전세대출은 2년짜리 대출이고, 어차피 돌려받는 돈이다. 이걸 빌리는 데 원리금을 따지는 게 말이 되느냐’라는 논리다. 실제로 전세대출은 대부분 원금을 만기(임대인에게 돈을 돌려받은 뒤)에 일시 상환한다. 빌리는 동안 이자만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전세사기처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원금 상환이 불가능해 임차인이 파산 위기에 처한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개별 임차인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같은 이중 안전장치를 일일이 마련해야 하고, 이는 사회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한다.
전세대출의 이자뿐 아니라 원금도 DSR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차주의 상환능력을 보다 꼼꼼하게 따지고, 무분별한 전세대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용대출 DSR 계산 방식’ 같은 계산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용대출은 1년마다 갱신하는 구조다. 만기가 짧기 때문에 DSR 계산 시 ‘5년 상환’을 가정한다. 예를 들어 3000만원짜리 신용대출을 연리 8%에 빌렸다면, 총 60개월 상환을 가정하고 DSR에 적용하는 식이다. 이러면 원리금 균등상환 기준으로 차주가 매달 원리금을 60만원씩 갚는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DSR은 ‘차주의 소득과 상환능력’을 보기 때문에, 매달 300만원을 버는 사람은 DSR 40% 규제하에서 매달 원리금을 갚는 데 120만원 이상 쓸 수 없다. 만약 이 차주가 앞선 조건으로 3000만원 신용대출을 받은 상황이라면 이미 ‘월 120만원 제약’ 속에서 60만원을 소진한 셈이 된다.
같은 방식으로 전세대출을 ‘만기 20년’으로 가정해 계산해보자. 2억원을 4% 이율로 대출받을 경우 실제로 매달 갚는 이자는 66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DSR 계산을 위해 ‘원리금 균등상환’으로 계산해보면 20년(240개월) 동안 매달 120만원을 갚는 셈이 된다. ‘이자만’ DSR에 포함할지, 아니면 ‘원리금 모두를’ DSR에 포함할지에 따라 가계가 빌릴 수 있는 돈의 최대치는 달라진다. DSR 계산 방식에 따른 규제 변화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임대인이 받는 전세보증금은?
임대인이 받는 전세보증금 역시 DSR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어왔다. 2023년 8월, 박진백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주택학회 세미나에서 “전세보증금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갚아야 할 채무라는 관점에서 DSR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한국 사회가 금리 인상 이후 전세보증금 미반환, 역전세, 깡통전세, 연체율 증가 등을 겪어왔는데 이 모든 사태가 ‘채무불이행’이라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결국 전세보증금을 관습적 제도로 다룰 게 아니라, ‘부채’라는 틀에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세보증금을 포함할 경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큰 폭으로 늘어난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지난해 3월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가계부채 추정치를 발표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2017년 770조9000억원이던 전체 전세보증금 추정액은 2022년 1058조3000억원으로 5년 만에 37.3% 늘어났다. 이 보증금을 합칠 경우 전체 가계부채는 약 3000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105.8%이지만, 전세보증금을 포함할 경우 그 비율은 156.8%까지 증가한다. OECD 최고 수준이다.
당장 임대인이 받는 전세보증금이 DSR에 포함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임차인이 빌리는 전세대출을 단계적으로 확대 반영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로 얽혀 있는 가계의 부채 악순환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올해 2월26일부터 ‘스트레스 DSR’ 시행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DSR은 가계부채 관리의 도구로 작동할 전망이다. 이 제도는 훗날 금리 변동을 감안해 실제 대출금리에 ‘스트레스 금리(가산 금리)’를 더해서 DSR을 도출해내는 방식이다. 한국 차주들은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2022~2023년처럼 급격히 금리가 오를 경우 대응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변동금리 조건에서도 충분한 상환능력을 갖추었는지 살펴보기 위한 제도가 ‘스트레스 DSR’이다.
최근 정부 부처의 연이은 주택경기 부양책과는 별개로,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를 줄이지 못하면 경제 전반에 위기가 닥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주택자 규제 완화, 세제 완화 등 부동산 시장 부양책을 연이어 내놓는 것과 다소 ‘엇박자 행보’처럼 보일 정도다. 이것은 일종의 딜레마다. 주택시장의 침체 충격은 최소화하면서 빚은 줄여야 하는 상반된 정책 과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DSR은 한국 사회가 뒤늦게 꺼내든 부채 감축 카드다. 금융 당국의 ‘부채 감축 의지’가 얼마나 진심인지는 추후 DSR 관련 규제가 유지 또는 강화되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알 수 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