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줄이려 주가 낮게 유지”… ‘상속세 발목’에 저평가 늪 빠진 韓기업 [심층기획-20년 제자리 ‘K디스카운트’]

이도형 2024. 2. 1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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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뜨거운 감자’ 상속세 개편
현장선 “투자축소도 영향 미쳐”
상속세 개편논의 서서히 부상
상장협 “대주주 최대 관심은 세금
재투자 축소 등 다양한 요인 발생”
CEO 96% “상속세 가장 큰 영향”
과거 감세 때도 고용 효과 등 없어
“핵심은 세금 아닌 지배구조 개선”
‘시가 평가’ 시스템 지적 목소리도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 거기다 할증세까지 있다… 재벌,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상장 기업들이 주가가 올라가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독일 같은 강소 기업이 별로 없다.”(1월17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서 발언)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통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시장 저평가) 해법의 하나로 거론한 ‘상속세 인하’로 1999년 이후 24년째 변화가 없는 관련 세제 개편 논의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재계는 그간 최대 실효세율이 60%에 달하는 상속세 탓에 기업인들의 경영의욕이 저하되고, 주가를 높여 주주 환원 강화를 유인하는 요인이 되지 못한다고 호소해왔다. 증여세 부담 역시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욕실 자재 기업 와토스코리아를 이끄는 송공석(73) 대표는 창립 50년이 넘어 70세를 넘긴 나이에도 대표직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데 “가업 승계를 하고 싶어도 증여세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0월 30∼40대 벤처·스타트업 창업자(CEO) 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관련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5%는 ‘상속세 폐지’ 또는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25%로 인하해야 한다’고 답했다. 더불어 47.1%가 ‘상속세 부담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매우 심화되고 있다’고 답했고, ‘일정 부분 심화시키고 있다’는 답도 49.3%나 됐다.

이처럼 주가 상승에 따른 상속세 부담이 크다 보니 그 풍선 효과로 기업이 주주 환원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주식시장에서는 팽배하다.

‘주식농부’, ‘개미투자자의 신화’로 부리는 박영옥(64) 스마트인컴 대표는 최근 발간한 책 ‘주주 권리가 없는 나라’에서 “시장경제 아래에서 주가 하락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이유 하나가 있으니 바로 상속과 증여 문제”라며 “혹자는 주가가 오르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배주주가 나이 들어서’라는 이유를 댄다”고 지적했다.
높은 상속·증여세 부담은 상속 사후에도 내내 기업 주가의 발목을 잡는다.

지난달 11일 삼성그룹 사주 일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삼성전자 지분의 약 5%에 해당하는 2982만9183주(약 2조1900억원)를 주식시장 개장 전 블록딜 형태로 매각했다. 이들 사주 일가가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한 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타계 후 발생한 12조원대 상속세 납부와 무관치 않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400원(0.54%) 떨어진 7만3200원에 마감됐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말 반도체 업황 회복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하며 ‘8만전자’에 바짝 다가섰었는데, 올해 들어 금리 인하 기대감이 과도했다는 인식과 실적 쇼크 등이 겹치면서 내리막 중이었다. 여기에 사주 일가의 블록딜 처분까지 겹치면서 하락세가 깊어졌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 앞을 지나는 모습. 연합뉴스
◆“상속세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

재계는 물론이고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높은 상속세율이 주가 상승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지난해 11월 국회 한 세미나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을 높은 상속세라고 주장했다. 상장협은 “대주주의 최대 관심은 세금(상속세)이고, 소액주주들의 관심은 ‘주가’”라면서 “대주주는 50∼60%에 달하는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 회사 분할, 일감 몰아주기, 별도 회사 설립, 재투자 축소, 연구·개발(R&D) 투자 축소, 소극적 기업활동(IR)과 같은 자본시장 디스카운트 요인 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장협 관계자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감당하기 불가능한 상속세제를 두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한탄했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2020년 현재 10년 이상 경영한 1억유로(약 1440억원) 가치의 기업을 운영하는 우리나라 경영인이 자녀 1명에 상속할 때 실제 부담해야 하는 상속세액은 4053만(약 582억원·실효세율 40.5%)유로였다. 분석 대상 54개국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경총은 “실제 부담 상속세액이 실효세율 30%를 초과하는 국가는 한국 외에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2곳에 불과했다”며 “우리 대기업엔 가업상속공제가 적용되지 않아 실효세율이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지만, 중소기업이 아닌 기업은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20%)까지 더하면 60%로 높아진다. 이와 달리 OECD 36개국 중 13개국은 상속세제가 없고, 이를 운용하는 23개국 중 17개국은 직계비속에게 물려줄 때 세율 인하 등을 통해 원활한 기업승계를 지원하고 있다는 게 경총 측의 전언이다.

작년 10월 경총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96.4%가 현행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대목도 이 같은 현실과 무관치 않다. 더구나 직계비속 기업승계 시 상속세 부담이 있는 OECD 18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 평균값도 26.5%(2020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상속세 시가 평가가 문제?

부담이 큰 상속·증여세제를 두고 시가로 평가하는 현 시스템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시가 기준으로 산정되니 주가를 낮추기 위해 손익거래와 자본거래로 회사가 어려운 것처럼 포장하거나 자녀 명의 비상장 회사를 설립해 알짜 사업과 일감을 몰아주는 일탈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 이하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에 한해 상속·증여세 기준을 순자산가치로 해야 주가를 내릴 유인이 사라진다는 목소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다만 ‘상속세가 낮아지면 기업인들이 주가를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실제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한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는 “과거에 감세를 하면 ‘낙수효과’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할 것이라면서 세금을 깎아주었는데 실제로 투자와 고용이 증가했느냐”며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유’과 ‘경영’의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한국 기업 특성상 기업의 ‘선의’에 기대 상속세 인하로 주가를 부양시키겠다는 정책적 목표를 이룰 수 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다수 기업이 입주한 서울 도심의 모습. 뉴시스
신승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은 지난달 25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민생위기 진단과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좌담회’에서 “대주주나 지배주주가 이른바 ‘동학 개미’의 뒤통수를 치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 증시를 떠나는 것이고, 핵심은 세금이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교훈삼아 상속세 인하를 추진한다 하더라도 소액주주 권리 강화와 대주주를 제어하는 규율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소액주주를 위해 상법을 개정하는 방안이나 자사주 제도 개선 등이 거론되는데, 이 중 자사주 제도 개선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금융당국은 올해 상장법인의 인적 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제한하기로 했다.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는 데 자사주가 활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또 자사주 보유 비중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자사주 취득·보유·처분 전 과정에 대한 상세한 공시의무를 부과하고, 자사주 처분 시 목적 등에 대한 공시의무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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