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줄이려 주가 낮게 유지”… ‘상속세 발목’에 저평가 늪 빠진 韓기업 [심층기획-20년 제자리 ‘K디스카운트’]
현장선 “투자축소도 영향 미쳐”
상속세 개편논의 서서히 부상
상장협 “대주주 최대 관심은 세금
재투자 축소 등 다양한 요인 발생”
CEO 96% “상속세 가장 큰 영향”
과거 감세 때도 고용 효과 등 없어
“핵심은 세금 아닌 지배구조 개선”
‘시가 평가’ 시스템 지적 목소리도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 거기다 할증세까지 있다… 재벌,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상장 기업들이 주가가 올라가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독일 같은 강소 기업이 별로 없다.”(1월17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서 발언)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0월 30∼40대 벤처·스타트업 창업자(CEO) 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관련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5%는 ‘상속세 폐지’ 또는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25%로 인하해야 한다’고 답했다. 더불어 47.1%가 ‘상속세 부담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매우 심화되고 있다’고 답했고, ‘일정 부분 심화시키고 있다’는 답도 49.3%나 됐다.
이처럼 주가 상승에 따른 상속세 부담이 크다 보니 그 풍선 효과로 기업이 주주 환원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주식시장에서는 팽배하다.
지난달 11일 삼성그룹 사주 일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삼성전자 지분의 약 5%에 해당하는 2982만9183주(약 2조1900억원)를 주식시장 개장 전 블록딜 형태로 매각했다. 이들 사주 일가가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한 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타계 후 발생한 12조원대 상속세 납부와 무관치 않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400원(0.54%) 떨어진 7만3200원에 마감됐다.
재계는 물론이고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높은 상속세율이 주가 상승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지난해 11월 국회 한 세미나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을 높은 상속세라고 주장했다. 상장협은 “대주주의 최대 관심은 세금(상속세)이고, 소액주주들의 관심은 ‘주가’”라면서 “대주주는 50∼60%에 달하는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 회사 분할, 일감 몰아주기, 별도 회사 설립, 재투자 축소, 연구·개발(R&D) 투자 축소, 소극적 기업활동(IR)과 같은 자본시장 디스카운트 요인 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장협 관계자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감당하기 불가능한 상속세제를 두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한탄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지만, 중소기업이 아닌 기업은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20%)까지 더하면 60%로 높아진다. 이와 달리 OECD 36개국 중 13개국은 상속세제가 없고, 이를 운용하는 23개국 중 17개국은 직계비속에게 물려줄 때 세율 인하 등을 통해 원활한 기업승계를 지원하고 있다는 게 경총 측의 전언이다.
부담이 큰 상속·증여세제를 두고 시가로 평가하는 현 시스템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시가 기준으로 산정되니 주가를 낮추기 위해 손익거래와 자본거래로 회사가 어려운 것처럼 포장하거나 자녀 명의 비상장 회사를 설립해 알짜 사업과 일감을 몰아주는 일탈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 이하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에 한해 상속·증여세 기준을 순자산가치로 해야 주가를 내릴 유인이 사라진다는 목소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다만 ‘상속세가 낮아지면 기업인들이 주가를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실제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한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는 “과거에 감세를 하면 ‘낙수효과’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할 것이라면서 세금을 깎아주었는데 실제로 투자와 고용이 증가했느냐”며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를 교훈삼아 상속세 인하를 추진한다 하더라도 소액주주 권리 강화와 대주주를 제어하는 규율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소액주주를 위해 상법을 개정하는 방안이나 자사주 제도 개선 등이 거론되는데, 이 중 자사주 제도 개선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금융당국은 올해 상장법인의 인적 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제한하기로 했다.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는 데 자사주가 활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또 자사주 보유 비중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자사주 취득·보유·처분 전 과정에 대한 상세한 공시의무를 부과하고, 자사주 처분 시 목적 등에 대한 공시의무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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