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치폭력 문제와 경제사회구조의 변화[이지평의 경제돋보기]

2024. 2.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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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빈곤층 늘며 민주주의 뒷받침하던 중산층 붕괴
고임금·고부가가치 일자리 늘릴 체계적 정책 도입 필요해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



일본 경제의 회복 기조와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부진을 보이고 있다. 자민당 파벌에서 정치자금을 부적절하게 관리한 문제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반감도 큰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에서는 근래 아베 전 총리 암살, 기시다 현 총리 테러 미수 등 정치폭력 사건이 발생해 전 사회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이와 같은 정치폭력은 과거 일본 군국주의가 대두하던 당시와 유사하게 사회적인 불만이 고조되는 현상을 배경으로 한 측면이 있다. 물론 당시와 달리 최근 사건은 정치 운동을 수반하지 않으며 개인적 불만이 표출된 측면이 강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일본의 전반적인 치안 상태는 미국 등과 달리 양호한데도 개인적 불만으로 국가원수를 위협하는 행동이 나온 것 자체는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동안 민주주의를 뒷받침했던 중산층이 감소하고 생활 환경이 취약해진 계층의 불만이 늘게 된 것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엔저와 수입 물가 상승 속에서 일본의 생활물가도 급등하면서 실질임금이 계속 감소하고 있어 서민층의 불만이 더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이후 일본식 경영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종신고용제가 약해지고 비정규직이 확대됐다. 기업의 투자나 교육, 복리후생도 위축돼 임금도 정체되는 등 ‘일본형 기업 복지 시스템’이 약해졌다. 일하는 빈곤층을 가리키는 ‘근로빈곤층’이라는 조어가 주목받기도 했다. 이들은 기존의 ‘기초생활수급자’ 등 복지 지원을 받는 전통적인 빈곤층과 달리 상대적으로 복지 혜택이 미약해 정치에 대한 불만을 품기 쉬운 측면이 있다. 게다가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오프라인의 사회적 유대도 약해 심신이 더 악화되는 문제도 있다.

이런 근로빈곤층은 이민자 등 더 취약한 계층을 배척하는 극우파처럼 보수적 성향을 강화하는 경향도 있다. 그리고 다수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소셜네트워크로 소통하면서 정치적 불만이나 주장이 과격해진다. 이 같은 현상은 일본뿐 아니라 구미 국가 등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중산층 몰락에 대해 일본 정부도 ‘중산층을 다시 늘리겠다’면서 관련 정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억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및 일자리 나누기, 자녀 양육 가계 지원, 취업 교육 강화 등 민생 및 노동 정책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기업이 높은 수익성을 기반으로 고임금,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지 못하면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업이 미래 성장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첨단기술, 서비스 등에 바탕을 둔 고부가가치 사업을 창출하고 이에 적합한 교육을 받은 인재도 양성돼야 매년 높은 임금인상률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부가가치 사업 창출이 부족한 기업의 질서 있는 퇴출과 신생 기업의 성장 공간을 확충하는 시스템이 함께 고도화돼야 근로 복지정책도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일본에선 대졸자나 박사학위 소지자도 근로빈곤층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 결과 박사 과정 입학자 수는 2003년도를 정점으로 2022년까지 21%나 감소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조할 수 있는 과학기술력이 계속 쇠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중산층의 몰락 및 근로빈곤층 문제, 소외감 증폭, 정치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 ‘기본소득’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 대응이 아니며 재정적 부담이 크다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복지 사각지대를 포함한 정부의 ‘기본서비스’ 확충 정책을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고임금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 수익의 공정한 배분 시스템을 통해 서민층, 고령자도 근로소득 외에 자산소득을 늘릴 수 있는 ‘자산입국화’ 전략도 중요하다. 복지, 교육, 고용, 산업 이노베이션, 자산입국화 등의 각 정책이 체계적인 연계성을 가지고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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