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밑에 꺼진 수익률…배신당한 ‘해외 건물주 꿈’

박채영 기자 2024. 2.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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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판매 해외 부동산 펀드
미 도심업무지구 오피스 가격
2년 전 고점 대비 40% 하락 등
최근 잇단 손실에 ‘만기 연장’
치솟은 공실률에 고금리 겹쳐
시장 회복 부정적 전망 우세

박모씨(57)는 2017년부터 ‘미래에셋맵스 미국부동산투자신탁 9-2호’(이하 맵스9-2)에 1억4342만원을 투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016년에 내놓은 맵스9-2는 국내에서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처음 판매된 해외 부동산 펀드였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위치한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는 펀드로 출시 당시 목표액 3000억원을 일주일 만에 다 채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맵스9-2는 투자한 오피스 빌딩을 매입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했다. 맵스9-2는 개인투자자에게 모집한 자금 3000억원 등 총 9786억원을 투입해 해당 빌딩을 사들였는데, 매각가는 5억8000만달러(약 7879억원)에 불과했다. 박씨를 비롯한 개인투자자들은 “운용사가 빌딩을 헐값에 팔아 손실을 보게 됐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부동산 호황기에 몸집을 불린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가 줄줄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오피스 공실률이 급속히 늘고, 고금리가 장기화함에 따라 시장이 위축된 것이다. 당분간 시장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해외 부동산 펀드 설정액 규모는 77조2768억원이다. 해외 부동산 펀드 설정액은 2014년 말 7조3251억원에서 9년 만에 10배 넘게 덩치를 키웠다. 해외 부동산 펀드의 주요 투자자들은 연기금, 공제회, 보험사,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지만, 개인에게 판매된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의 규모도 상당한 수준으로 늘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판매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에 대한 개인투자자는 2만7187명, 이들의 투자 규모는 1조478억원으로 집계됐다.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던 해외 부동산 펀드가 최근 줄줄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자 자산운용사들은 펀드 만기를 연장하면서 대응하고 있다.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는 지난해 10월 수익자총회를 열고 펀드 만기를 2년 연장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빌딩에 투자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의 연간 수익률은 -81%를 기록 중이다.

다음달 만기가 도래하는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투자신탁 1호’는 이달 말 수익자총회를 열고 만기를 5년 연장하는 안건을 논의하기로 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미국 나사(NASA) 본사 빌딩에 투자한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투자신탁 1호’의 연간 수익률은 -41.96%를 기록 중이다.

해외 부동산 펀드가 타격을 입은 것은 오피스 공실률 증가와 고금리 때문이다. 국내 개인 및 기관 투자자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는 대부분 오피스와 호텔 등 상업용 부동산에 쏠려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늘면서 오피스 공실률이 높아지자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국제금융센터 자료를 보면 미국 도심업무지구의 오피스 가격은 2022년 고점과 비교해 현재 40%가량 하락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재택근무가 늘고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면서 “부동산은 보통 1년에 한 번씩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손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금리도 해외 부동산 펀드의 수익률 급락 원인이다. 맵스9-2의 경우 미국의 손해보험사 스테이트팜(State Farm)과 2037년까지 장기 임차 계약이 맺어져 있어 비교적 안정적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는 펀드였지만, 금리가 오르고 건물의 담보 가치가 하락하면서 매각을 결정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맵스9-2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이 하락 중인 상황에서 대출을 연장하거나 신규 대출을 받을 경우 건물의 담보 가치 하락에 따른 대출액 일부 상환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과거와 같은 저금리 대출이 불가능한 시장 환경에서 이자비용의 급격한 증가로 과거 수준의 배당 재원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분간 해외 부동산 시장이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투자자 손실이 커질 우려도 있다. 매킨지는 “오피스 빌딩에 대한 수요가 수십년 동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며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오피스 빌딩의 가치가 2030년까지 적어도 26%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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