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부양·책임경영'···한전사장, 자사주 매입한다
한전, PBR 0.38배 상당히 저평가 분석
尹정부 출범 이후 公기업 CEO 중 첫사례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18일 주주가치 제고와 책임경영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사비를 털어 최대 3000만 원의 자기주식(자사주)를 사들이겠다고 예고했다. 26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를 앞두고 국내 최대 공기업의 수장이 적극 호응에 나선 것이다.
이날 전력 업계에 따르면 김 사장은 최근 주변에 “취임 5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법규상 직무관련성 심사 절차에 따라 자사주를 매입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 이후 7개 상장 공기업 CEO 가운데 자사주 매입을 시사한 것은 이번이 첫사례다. 한전 주가는 이번 정부 들어 6.63% 하락했다.
통상 CEO를 포함한 기업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시장에서 주가가 저평가 돼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는 데다 경영진들의 책임경영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다만 재산 공개 대상인 고위공직자가 업무와 관련된 주식을 3000만 원 이상 보유할 수 없게 하는 주식 백지신탁제도 탓에 공기업 사장의 자사주 매입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김 사장 역시 취임 직후 자사주 매입을 추진하다가 잠시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사장이 자사주 매입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한전의 재무상황이 확연히 나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조만간 공개할 ‘2024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에 △배당 수준의 적정성 △소액주주 보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모범규준 준수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성과도 평가 항목으로 추가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행 방안 중 하나로 상장사들에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를 권고한 바 있다.
“한전, 국민주 위상 되찾아야”···김동철 사장의 뚝심
-23일 실적발표···바닥 찍고 반등할듯
-CEO 등 경영진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부양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사재로 자기주식(자사주)을 사들이겠다고 예고한 것은 향후 실적 호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주가부양책이기 때문이다. 1989년 상장돼 한동안 ‘국민주’로 불리던 한전주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게 김 사장의 소신이다. 김 사장은 취임 첫날 “1990년대 한전은 시가총액 압도적 1위의 국내 최대 공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사상 초유의 재무위기로 기업 존폐를 위협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 사장은 지난해 9월 대규모 적자와 부채로 허덕이던 한전의 구원투수로 긴급 등판했다. 이후 김 사장은 한전의 펀더멘털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왔다. 김 사장은 추석연휴까지 반납한 채 24시간 본사에 머무르며 ‘희망퇴직 추진’을 포함한 특단의 자구안을 내놓았다. 동시에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산업용(을)에 한해 전기요금 인상을 관철시키는 등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 덕분에 한전은 지난해 상반기 8조 4500억 원의 영업적자에서 하반기 2조 원대의 영업흑자로 추세 전환을 이뤄낸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은 23일 결산 이사회를 열고 지난해 4분기 및 연간 재무제표를 잠정 발표한다. 증권가는 올해 한전이 6조 원대 영업흑자를 내면서 3년간 이어진 연간 영업적자의 늪에서 탈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한전 이사진은 그동안 지속된 적자에도 믿고 투자해준 주주들에 대한 환원정책도 함께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반등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45조 원의 영업적자와 204조 원의 부채가 쌓여있는 만큼 현금배당이나 법인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의 카드는 당분간 꺼내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앞서 한전은 2021년과 2022년 무배당을 결정한 바 있으며 2023년에도 무배당 기조는 유지될 공산이 크다. 아울러 한전은 2014년 8556억 원에 자사주 1893만 주를 전량 매각한 뒤 10년간 자사주를 재매입하지 않았다.
이에 소액이나마 상징적인 효과가 큰 CEO 등 임원의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부양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김 사장은 취임 직후 자사주 매입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인위적인 주가부양보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전기요금 인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 선행돼야한다는 판단에 결단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현재 한전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8배로 추정된다. 5개월간 한전의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한 김 사장은 이미 주식시장에서도 나름의 인정을 받고 있다. 김 사장이 취임한 이후 한전 주가는 16.8% 상승했다. 특히 이달 들어선 지난해 7월6일(2만 50원) 이후 반년여 만에 2만 원 고지를 회복했다. 여기에 CEO의 자사주 매입 선언은 추가 상승을 견인할 호재로 작용할수밖에 없다.
김 사장은 시장의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장기 우상향을 유도할 수 있게끔 일괄 대량 매집보다는 최대 1000만 원 어치의 한전주를 매달 또는 매분기 적립식 투자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걸림돌은 공기업 CEO의 자사주 취득까지 가로막는 깐깐한 공직자윤리법이다. 자사주를 포함한 직무관련 주식보유 상한이 3000만 원뿐이라 주식시장에 확실한 시그널을 보내기 어렵다는 평가다. 김 사장은 사견을 전제로 “공직자윤리법의 취지는 이해하나 정부에서 추진 중인 상장 공기업의 주주가치 제고와 책임경영을 위해 매입한도 상향 등에 대한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관보를 보면 김 사장은 위세아이텍 400주, 위지윅스튜디오 1000주 등 686만 2000원상당의 상장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용기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등 다른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자사주 매입에 동참할까.
지난해 가스공사는 ‘무늬만 영업흑자’를 거둔 것으로 파악된다. 미수금(못 받은 돈)을 포함하면 실질적인 영업적자 상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가스공사의 전체 미수금 규모는 15조 3562억 원에 달한다. 누적된 미수금 탓에 가스공사는 지난해 2월 결산 이사회에서 무배당 방침을 세웠다가 3월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의 거센 반발에 부닥친 아픈 기억이 있다. 윤 정부에선 가스공사 주가가 38.1%나 빠졌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최 사장의 자사주 매입을 포함한 주주환원책에 대해 “즉답이 어렵다”고만 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지난해 1420억 원의 영업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전년(4039억 원) 대비 적자 폭을 줄였으나 흑자 전환에는 실패한 것이다. 지역난방공사 관계자는 “정부의 주주가치 제고정책에 따라 향후 최대주주인 정부와 협의해 소액주주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안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관가에서는 이번 정부 임명된 공기업 CEO들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이행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밖에 한전KPS(김홍연)·한전기술(김성암)·GKL(그랜드코리아레저·김영산)·강원랜드(공석)는 모두 올해 새로운 수장을 맞이해야 한다. 때문에 CEO의 자사주 매입에 대한 논의는 차기 사장 선임 이후에나 수면위에 떠오르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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