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터널’ 하반기엔 벗어날까
2024. 2. 19. 05:31
연준 5~6월, 한은 7월 인하 전망…시장 기대보다 늦을 가능성도
시장에선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가 높다. 올 상반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하반기엔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점친다. 시기적으론 연준은 5~6월, 한은은 7월 인하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 달리 연준과 한은은 신중한 입장이다. 미국 내 견고한 성장세와 예상을 웃도는 물가 수준에서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이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피벗) 지연, 불확실성이 큰 물가와 내수 영향을 받아 한은의 금리 인하 시기도 시장의 예상보다 늦어지리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월 31일(현지시간) 미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직전인 1월 26일 발표된 지난해 12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2.9%를 기록하며, 2021년 3월(2.3%) 이후 2년 9개월 만에 2%대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근원 PCE는 무려 5.6%였다. PCE 가격지수는 미국 거주자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지불하는 가격을 측정하는 물가 지표다. 단기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는 주요 인플레이션 지표로, 연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더 중시한다.
시장은 연준이 이르면 3월 또는 5월부터 금리를 인하하고, 올해 최대 6~7차례 금리를 지속해서 내릴 것이란 전망까지 내놨다. 실제 1월 말 당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의 금리선물 예측치를 보면, 연준이 오는 5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무려 90%에 달했다.
연준은 그러나 신중했다. 1월 31일 기준금리 동결(연 5.25~5.50%) 발표 후 연내 적절한 시점에 인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제롬 파월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올해 적절한 시점에서 금리 인하를 시작하겠지만 아직 확신에 도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에 도달해야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 2월 4일 인터뷰에서도 “경제가 튼튼한 만큼 언제 기준금리를 인하할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신중히 해야 할 것은 시간을 좀 갖고 인플레이션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연준 목표인) 2%로 내려가고 있음을 데이터로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이 조기 인하에 선을 그은 데 이어 2월 13일 발표된 1월 CPI 지표가 예상외로 높게 나온 것도 시장의 기대를 암울하게 했다.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2.9%)를 웃돈다. 세부적으론 주거비가 0.6% 올라 물가 상승을 주도했고, 주택과 에너지를 제외한 서비스 가격도 2022년 4월 이후 가장 높았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 CPI도 전년 동월 대비 3.9% 올라 전문가 예상치(3.7%)를 웃돌았다.
이런 흐름 탓에 올 상반기 금리 인하 기대감은 한풀 꺾였다. 1월 소비자물가가 발표된 이날 블룸버그는 “연준이 곧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더욱 작아졌고, 자칫 금리 인상 재개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쪽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금융시장이 CPI 발표 이후 금리 인하 기대감을 5월에서 6월로 늦췄다”고 전했다. WSJ은 전문가들을 인용, “일반적으로 올해 인플레이션이 냉각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 과정이 험난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 금리선물 예측치에서 연준의 오는 5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33.9%로 대폭 떨어졌다.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를 꺾는 주요인은 미국 경제의 높은 성장세다. 기대 이상의 경기 호조는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 미 상무부가 지난 1월 말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속보치)은 3.3%다. 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0%)를 1.3%포인트나 웃돈다. 지난해 3분기 4.9%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3%대의 고성장이다. 2023년 연간 성장률은 2.5%다. 1%대 후반대로 추정되는 미국의 연간 잠재성장률을 감안하면, 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올해 상황도 비슷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월 30일 발표한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1.5%(지난해 10월)에서 2.1%로 큰 폭 상향됐다.
견조한 노동시장도 금리 인하에 제동을 건다. 올해 1월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35만3000건 증가했다. 지난해 1월(48만2000건) 이후 1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18만5000건과 비교해 증가 폭이 2배에 달했다.
연준은 특히 임금 상승이 견인하는 인플레이션을 경계해왔다. 송준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경제성장률은 1.8% 또는 1.9% 수준이 평균적이고, 고용은 10만명대 후반이 평년 수준이다. 예상외의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견고한 실물경제와 완전 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을 감안하면,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은 한층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홍해 위기와 같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불확실성 요인들이 여전해 연준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준이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피벗에 보수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1년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 경고가 커짐에도 불구하고 제때 대응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는 한번 내리면 다시 올리기 쉽지 않다. 조기 인하했을 때 우려되는 부작용도 있다”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파월 의장은 ‘일시적(transitory) 현상’이라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는데, 이번엔 과거의 오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한은의 금리 인하 결정은 더 신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의 기준금리는 3.50%로, 연준 금리와 상단 기준으로 2.0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2월 1일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 참석해 “미국의 성장세가 강하다 보니 연준이 금리를 금방 내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통화정책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금리를 내리는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연준의 금리 인하에 앞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역대 최대치인 금리 역전 폭이 더 커져 환율 상승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 금리 차이를 두고서도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큰 폭의 내외금리차 역전 현상 지속은 우리 경제주체들의 자본 조달 비용 상승과 해외투자 시 환 헤지 비용의 상승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국내 물가도 한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을 낮춘다. 국내 물가(전년 동월 대비)는 지난해 9월 3.7%, 10월 3.8%, 11월 3.3%, 12월 3.2%, 올 1월 2.8% 등으로 둔화세이지만, 먹거리 물가와 근원물가는 여전히 고점 수준이다. 1월 물가에서 농산물은 15.4%, 외식은 4.3% 상승했다. 먹거리 중에선 식료품 물가가 6.0%를 기록했다. 지난해 이상 기온에 따른 공급량 부족, 수요 증가, 유통 구조 문제 등 영향을 받은 과일 물가는 26.9% 올라 2011년 1월(31.2%)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다.
먹거리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국제유가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2월 2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로 유가 불확실성이 커진 점과 농산물 등 생활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이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당분간 둔화 흐름이 주춤해지면서 일시적으로 다소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1월 11일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위원들은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전망의 불확실성도 큰 만큼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2%)에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송준 연구위원은 “국내 물가가 안정적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은도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며 “전쟁과 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유가 불안, 또 국내적으로 아직까지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는 전기나 가스와 같은 공공요금 인상도 향후 물가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내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시기는 시장 예상보다 늦춰진 4분기에나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연준의 피벗 지연, 국제유가 불확실성 확대와 공공요금 인상 등과 같은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지고 있어 한은이 조기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송준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열린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의 점도표(기준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도표)를 보면 올해 3번 인하를 전망하고 있는데, 최근 (미국 내 고용과 소비 등) 경제지표들을 보면 두 번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첫 인하 시기도 (시장이 전망하는) 올 5월이나 6월이 아닌 9월쯤이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은도 4분기쯤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섣부른 통화정책 전환이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한은이 지난 1월 29일 발표한 ‘물가 안정기로의 전환 사례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는 “고물가 시기 마지막 구간의 부주의로 물가 안정기 진입에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성엽 한은 정책분석팀 차장은 “마지막 구간에서는 가격조정 모멘텀과 인플레이션 재발 위험이 상존한다”며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1년 정도 지나면 기저효과 탓에 물가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하고, 이를 물가 안정기로 진입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신중한 통화정책 전환과 인플레이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또 지난해 10월 IMF가 내놓은 ‘100번의 인플레이션 충격과 정형화된 사실 7가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소개하며, 1970년부터 지금까지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111건을 분석한 결과 64건(57.6%)만 5년 이내에 인플레이션을 잡았다고 전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가계부채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제금융협회(IIF) 통계를 보면, 한국의 지난해 3분기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5%로, IIF가 가계부채를 조사하는 34개국 중 가장 높았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지난 1월 31일 한국의 가계부채를 언급하며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과정에서도 (한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선 후 한은이 금리 인하 수순을 밟게 될 텐데,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은도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시장에선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가 높다. 올 상반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하반기엔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점친다. 시기적으론 연준은 5~6월, 한은은 7월 인하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 달리 연준과 한은은 신중한 입장이다. 미국 내 견고한 성장세와 예상을 웃도는 물가 수준에서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이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피벗) 지연, 불확실성이 큰 물가와 내수 영향을 받아 한은의 금리 인하 시기도 시장의 예상보다 늦어지리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하 시기 전망은
지난 1월 31일(현지시간) 미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직전인 1월 26일 발표된 지난해 12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2.9%를 기록하며, 2021년 3월(2.3%) 이후 2년 9개월 만에 2%대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근원 PCE는 무려 5.6%였다. PCE 가격지수는 미국 거주자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지불하는 가격을 측정하는 물가 지표다. 단기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는 주요 인플레이션 지표로, 연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더 중시한다.
시장은 연준이 이르면 3월 또는 5월부터 금리를 인하하고, 올해 최대 6~7차례 금리를 지속해서 내릴 것이란 전망까지 내놨다. 실제 1월 말 당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의 금리선물 예측치를 보면, 연준이 오는 5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무려 90%에 달했다.
연준은 그러나 신중했다. 1월 31일 기준금리 동결(연 5.25~5.50%) 발표 후 연내 적절한 시점에 인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제롬 파월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올해 적절한 시점에서 금리 인하를 시작하겠지만 아직 확신에 도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에 도달해야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 2월 4일 인터뷰에서도 “경제가 튼튼한 만큼 언제 기준금리를 인하할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신중히 해야 할 것은 시간을 좀 갖고 인플레이션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연준 목표인) 2%로 내려가고 있음을 데이터로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이 조기 인하에 선을 그은 데 이어 2월 13일 발표된 1월 CPI 지표가 예상외로 높게 나온 것도 시장의 기대를 암울하게 했다.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2.9%)를 웃돈다. 세부적으론 주거비가 0.6% 올라 물가 상승을 주도했고, 주택과 에너지를 제외한 서비스 가격도 2022년 4월 이후 가장 높았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 CPI도 전년 동월 대비 3.9% 올라 전문가 예상치(3.7%)를 웃돌았다.
이런 흐름 탓에 올 상반기 금리 인하 기대감은 한풀 꺾였다. 1월 소비자물가가 발표된 이날 블룸버그는 “연준이 곧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더욱 작아졌고, 자칫 금리 인상 재개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쪽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금융시장이 CPI 발표 이후 금리 인하 기대감을 5월에서 6월로 늦췄다”고 전했다. WSJ은 전문가들을 인용, “일반적으로 올해 인플레이션이 냉각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 과정이 험난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 금리선물 예측치에서 연준의 오는 5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33.9%로 대폭 떨어졌다.
연준의 금리 인하 제약 요인들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를 꺾는 주요인은 미국 경제의 높은 성장세다. 기대 이상의 경기 호조는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 미 상무부가 지난 1월 말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속보치)은 3.3%다. 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0%)를 1.3%포인트나 웃돈다. 지난해 3분기 4.9%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3%대의 고성장이다. 2023년 연간 성장률은 2.5%다. 1%대 후반대로 추정되는 미국의 연간 잠재성장률을 감안하면, 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올해 상황도 비슷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월 30일 발표한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1.5%(지난해 10월)에서 2.1%로 큰 폭 상향됐다.
견조한 노동시장도 금리 인하에 제동을 건다. 올해 1월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35만3000건 증가했다. 지난해 1월(48만2000건) 이후 1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18만5000건과 비교해 증가 폭이 2배에 달했다.
연준은 특히 임금 상승이 견인하는 인플레이션을 경계해왔다. 송준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경제성장률은 1.8% 또는 1.9% 수준이 평균적이고, 고용은 10만명대 후반이 평년 수준이다. 예상외의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견고한 실물경제와 완전 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을 감안하면,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은 한층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홍해 위기와 같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불확실성 요인들이 여전해 연준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준이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피벗에 보수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1년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 경고가 커짐에도 불구하고 제때 대응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는 한번 내리면 다시 올리기 쉽지 않다. 조기 인하했을 때 우려되는 부작용도 있다”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파월 의장은 ‘일시적(transitory) 현상’이라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는데, 이번엔 과거의 오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불확실한 물가 흐름과 신중한 한은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한은의 금리 인하 결정은 더 신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의 기준금리는 3.50%로, 연준 금리와 상단 기준으로 2.0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2월 1일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 참석해 “미국의 성장세가 강하다 보니 연준이 금리를 금방 내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통화정책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금리를 내리는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연준의 금리 인하에 앞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역대 최대치인 금리 역전 폭이 더 커져 환율 상승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 금리 차이를 두고서도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큰 폭의 내외금리차 역전 현상 지속은 우리 경제주체들의 자본 조달 비용 상승과 해외투자 시 환 헤지 비용의 상승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국내 물가도 한은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을 낮춘다. 국내 물가(전년 동월 대비)는 지난해 9월 3.7%, 10월 3.8%, 11월 3.3%, 12월 3.2%, 올 1월 2.8% 등으로 둔화세이지만, 먹거리 물가와 근원물가는 여전히 고점 수준이다. 1월 물가에서 농산물은 15.4%, 외식은 4.3% 상승했다. 먹거리 중에선 식료품 물가가 6.0%를 기록했다. 지난해 이상 기온에 따른 공급량 부족, 수요 증가, 유통 구조 문제 등 영향을 받은 과일 물가는 26.9% 올라 2011년 1월(31.2%)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다.
먹거리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국제유가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2월 2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로 유가 불확실성이 커진 점과 농산물 등 생활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이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당분간 둔화 흐름이 주춤해지면서 일시적으로 다소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1월 11일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위원들은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전망의 불확실성도 큰 만큼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2%)에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송준 연구위원은 “국내 물가가 안정적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은도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며 “전쟁과 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유가 불안, 또 국내적으로 아직까지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는 전기나 가스와 같은 공공요금 인상도 향후 물가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 4분기 금리 인하 전망”
전문가들은 연내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시기는 시장 예상보다 늦춰진 4분기에나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연준의 피벗 지연, 국제유가 불확실성 확대와 공공요금 인상 등과 같은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지고 있어 한은이 조기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송준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열린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의 점도표(기준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도표)를 보면 올해 3번 인하를 전망하고 있는데, 최근 (미국 내 고용과 소비 등) 경제지표들을 보면 두 번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첫 인하 시기도 (시장이 전망하는) 올 5월이나 6월이 아닌 9월쯤이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은도 4분기쯤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섣부른 통화정책 전환이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한은이 지난 1월 29일 발표한 ‘물가 안정기로의 전환 사례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는 “고물가 시기 마지막 구간의 부주의로 물가 안정기 진입에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성엽 한은 정책분석팀 차장은 “마지막 구간에서는 가격조정 모멘텀과 인플레이션 재발 위험이 상존한다”며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1년 정도 지나면 기저효과 탓에 물가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하고, 이를 물가 안정기로 진입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신중한 통화정책 전환과 인플레이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또 지난해 10월 IMF가 내놓은 ‘100번의 인플레이션 충격과 정형화된 사실 7가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소개하며, 1970년부터 지금까지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111건을 분석한 결과 64건(57.6%)만 5년 이내에 인플레이션을 잡았다고 전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가계부채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제금융협회(IIF) 통계를 보면, 한국의 지난해 3분기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5%로, IIF가 가계부채를 조사하는 34개국 중 가장 높았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지난 1월 31일 한국의 가계부채를 언급하며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과정에서도 (한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선 후 한은이 금리 인하 수순을 밟게 될 텐데,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은도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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