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개발원, '데이터 전초기지' 돼야…실손보험 간소화 준비 착수"

대담=이학렬 금융부장, 정리=황예림 기자 2024. 2. 1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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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 초대석]허창언 보험개발원장 "보험개발원, 팩토리 연구소 될 것…ISP 발주"
허창언 보험개발원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저출산·고령화로 보험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은 보험사의 신시장 개척을 돕는 지원자가 되겠다고 했다. 제3보험과 펫보험 등 경쟁력 있는 신상품도 보험개발원의 지원을 바탕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보험개발원은 손해보험사의 주력 상품인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을 낮추기 위한 연구도 이어가고 있다.

허 원장은 보험개발원이 기존의 역할을 넘어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험개발원에 모이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금융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 되겠다는 포부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전송대행기관으로 준비에도 들어갔다. 이미 정보화전략계획(ISP) 컨설팅을 발주해 실손보험 청구 전산 시스템 구축 작업에 착수했다.

허 원장에게 보험개발원의 현재와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다음은 허 원장과의 일문일답.

-보험개발원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보험개발원이 수행하는 주요 업무는 보험 관련 통계를 분석해 참조순보험요율을 산출하는 것이다. 보험개발원이 질병·사망·상해·자동차사고·화재 등 각종 사고의 참조순보험요율을 산출하면 보험사가 이를 참고해 상품을 개발한다. 보험개발원은 개발된 상품의 보험료가 적정하게 책정됐는지 확인하는 업무도 수행한다.

-보험 산업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시각이 있다. 보험 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일까.
▶저출산이 제일 강력한 위험 요소다. 아이를 낳지 않아 보험사의 가입 인구가 줄고 있다. 동시에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연금은 더 오래 탄다. 국내 보험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인데, 저출산·고령화로 전통적인 보험 상품이 외면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전통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걸 인지하고 새로운 사업과 시장을 발굴해야 할 시기다.

-보험사도 문제를 인식하고 노력하는 것 같다.
▶고령 고객을 대상으로 한 헬스케어, 간병 등의 분야를 개척하려고 특히 노력 중이다. 생명보험 시장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생보사는 성장 잠재력과 수익성이 높은 제3보험(생보사와 손보사가 모두 취급할 수 있는 보험)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보험개발원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새로운 상품 개발을 위해 필요한 참조순보험요율을 만들고 있다. 제3보험의 경우 생보사가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 손보사는 담보별로 디테일하게 위험도를 분류해 상품을 만드는데 생보사는 담보를 쪼개지 않고 하나의 계약에 묶어놓기 때문이다. 생보사가 출시한 제3보험은 담보별로 쪼개서 판매하는 손보사 상품보다 손해율이 높을 수밖에 없어 비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보사가 참조순보험요율을 만들어달라고 보험개발원에 요청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민 통계를 토대로 생보사가 참고할 수 있는 참조순보험율을 더 자세하게 만들었다. 보험개발원의 도움으로 생보사와 손보사간 제3보험 경쟁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펫보험도 손해율 산정이 쉽지 않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펫보험도 마찬가지다. 여러 손보사가 펫보험을 출시하고 싶어하는데 아직 통계가 모자라서 펫보험이 활성화된 일본 통계를 가져다 참조순보험요율을 냈다. 다가올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형 자동차보험의 요율 체계 개편도 검토하고 있다. 기존엔 운전자의 연령, 가입 경력 등이 중요했지만 앞으로는 운전 습관, 사고 이력, 주행 거리, 차량의 자율주행 등급 등의 중요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요소를 추가로 분석해 자동차보험의 요율 체계에 반영이 가능한지 보고 있다.

허창언 보험개발원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보험 업계의 발전을 위해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면.
▶보험개발원은 자동차기술연구소를 통해 경미한 차량 사고 관련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다. 자동차에 사람을 태우고 충돌 실험을 한 결과 자동차의 속도 변화가 시속 8㎞ 이하면 탑승자의 부상 위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과 스페인은 이런 공학적 분석 결과를 인정해 법에 반영하고 부상 위험이 없는 경우 대인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기준으로 인정한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에서 경상 환자의 비율이 90%를 넘어가는데도 공학적 접근을 고려하지 않는다.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지만 보험업계의 경쟁과열에 관한 우려도 있다.
▶재무적 측면에서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단기납 종신보험 등을 미리 경계하는 것 같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을 둘러싼 우려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장으로 있을 때부터 IFRS17 도입을 준비했는데, 그때는 이걸 도입하면 보험사가 다 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니 당시 걱정이 엄살이 돼버렸다. IFRS17은 예실차(예상 보험금·사업비와 실제 발생한 보험금·사업비의 차이)가 핵심인데, 지금은 예상을 너무 관대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예상을 관대하게 해서 성과급과 배당금 등으로 현금을 유출했는데 나중에 예상과 다른 상황이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국엔 평형 상태가 찾아오겠지만 보험사가 보수적으로 예측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전송대행기관으로 지정됐는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올해 10월25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차질 없이 준비해 보험개발원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다. 여러 면에서 자신 있다. 보험개발원과 보험사는 가장 강력한 보안 회선인 전용선이 있어 실손보험 청구 서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발생할 보안 위험에도 잘 대처할 수 있다. 현재는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ISP 컨설팅을 발주한 단계다. ISP 컨설팅만 3개월이 걸리는데 10월25일에 맞춰 간소화를 시작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보험개발원의 전 직원이 이 업무를 첫번째 임무로 삼을 정도로 철저히 준비 중이다.

-보험 업계에도 디지털 바람이 불고 있다. 보험개발원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보험개발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팩토리 연구소가 돼야 한다. 금융권이 디지털화에 서두르는데 보험사는 너무 느리다. 보험사의 디지털화를 이끌려면 먼저 보험개발원이 하나의 연구소가 돼서 디지털화의 단초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험개발원은 4차 산업혁명의 금은보화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보험개발원은 2020년 이미지를 인식하는 AI 모델을 이용해 자동차 수리비 자동 산출 시스템인 'AOS알파'를 개발하기도 했다. AOS알파는 보험 업계에서 신속한 보상 처리를 지원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플랫폼 역할도 가능할 것 같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보험 정보를 제공하는 빅데이터 플랫폼 '비긴'(BIGIN)을 구축했다. 금융소비자가 필요한 보험 정보를 보험개발원을 통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정보가 모아지고 활용되고 확산될 수 있게 지속적으로 플랫폼을 발전시키겠다.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남은 임기에 하고 싶은 일은.
▶지난 1년 동안은 4차 산업혁명의 전초기지가 되기 위한 밑작업을 했다. 우선 빅데이터 등을 통한 혁신 기술을 보험에 접목하기 위한 전담 부서인 '인슈어테크팀'을 신설했다. AI를 기반으로 데이터 기획·결합·상품화 기능을 추진하는 '데이터신성장실'도 신설해 AI와 빅데이터 전문 인력을 배치했다. 앞으로의 2년은 성과를 보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결합한 데이터를 가지고 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데이터 결합 등의 중요성을 외부에 알려 보험업계의 디지털화를 자극하는 일부터 하려고 한다.

대담=이학렬 금융부장 tootsie@mt.co.kr 정리=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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