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에 미안해지곤 하죠, AI 세일즈맨이 그들 역할 할 테니”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도매업체 영업사원들이 쉽게 쓸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품목이나 시기에 맞춰 고객사에 건넬 말이 자동 생성되니 관리가 편해졌다며 세일즈맨들이 고맙다고 하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 미안해지곤 합니다. 이제 곧 영업사원들이 매일같이 입력한 영업 문구와 데이터들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에이아이 세일즈맨’ 역할을 할 것이고, 도매업체들은 더 이상 영업사원들을 고용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요.”
지난 1월12일(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82 스타트업 서밋’에서 만난 스타트업 업셀의 리처드 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리 대표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을 만들었고, 사업은 순항 중이다. 도매업 고객사를 연이어 확보하고 있는 업셀은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인간 영업사원’들의 말, 태도, 영업 방식 등을 학습시킨 ‘인공지능 영업사원’을 곧 출시할 예정이다. 그의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연락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를 무대로 삼는 한국인 창업자들이 교류하는 이날 행사에는 1100명가량이 모였다. 오픈에이아이(OpenAI)·구글 등 빅테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과 안익진(몰로코)·김성훈(업스테이지) 등 창업 신화를 세운 기업 대표들, 김동수 엘지(LG)테크놀로지벤처스 대표 같은 투자업계 강호들까지 모였다. 수많은 이들이 생성형 인공지능에서 기회를 찾았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투블에이아이(tobl.ai)의 유호현 대표는 “옥소폴리틱스라는 정치 커뮤니티 운영에 생성형 인공지능을 쓰기 시작하자 22명의 직원 중 20명을 내보내도 업무가 가능해졌다”며 “이제 아예 생성형 인공지능만으로 업무가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파는 회사로 업종을 바꿨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기술기업 산실’의 대명사처럼 된 이 이름은 1970년대에 반도체에 쓰이는 규소(Silicon)와 샌타클래라 계곡(valley)을 합쳐 만들어졌다. 지리적으로는 세계 최대 코리아타운이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6시간 정도 차를 몰면 닿는 새너제이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를 아우른다. 최근에는 오픈에이아이가 탄생한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의 터전 시애틀까지 ‘생성형 인공지능의 산실’로 떠오르고 있다.
1월28일 시애틀 한 식당에 엠에스·메타·이케아·아틀라시안 등 글로벌 기업의 인공지능 분야 한국인 개발자들이 모였다. 전세계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분야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시애틀에는 엠에스·아마존·메타·구글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오피스가 밀집해 있고, 개발자들 사이의 교류와 이직이 활발하다. 시애틀의 한국인 개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지난해 인공지능 분야에서 체감한 변화와 다가올 미래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서 한의사로 일하다 캐나다로 가 토론토대학에서 컴퓨터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2년째 엠에스에서 일하고 있는 이현호 수석엔지니어는 엠에스 클라우드 사업 ‘애저’(Azure)가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시애틀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산실이기 이전에 세계 3대 클라우드 기업 아마존·엠에스·구글의 클라우드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수석은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을 돌리기 위해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했던 오픈에이아이가 빌 게이츠와 만나 애저 위에서 챗지피티(ChatGPT)를 돌리기로 했고, 이후 성장세가 둔화됐던 클라우드 사업이 엄청난 매출을 올리게 됐다”며 “게임 그래픽칩(GPU)을 팔던 엔비디아 주가가 치솟는 등 생성형 인공지능이 컴퓨터를 돌리는 데 들어가는 클라우드 분야의 새로운 모멘텀(변화·반전의 시작점)이 됐다”고 말했다.
메타에서 일하다 4개월 전 아틀라시안으로 이직해 기업용 챗봇을 개발하고 있는 스티븐 유는 “현재와 같이 빠른 속도로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이유는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 때문”이라며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넘어가면서 언어나 이미지 생성 작업에 ‘사람’의 관여가 빠지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호 수석도 “생성형 인공지능 쪽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돈이 몰리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속도 이상의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챗지피티 개발자 핸드북’의 저자이기도 한 주한나 엠에스 코파일럿 에이아이팀 데이터선임연구원은 “개인적으로는 왜 이런 답이 나오는지 모르는 ‘블랙박스’ 구조를 선호하지 않지만, 챗지피티가 터진 후에는 모두 거대언어모델에 투입됐다”며 “그동안 기업용 제품을 만들며 ‘생산성을 높인다’는 생각만 했는데, 권리를 뺏기는 일러스트레이터·배우 등의 고민을 들어보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업무에 적용하는 데는 결이 다른 고민도 존재했다. 페이스북의 윤리(integrity) 분야 머신러닝 연구를 맡고 있는 박세영 메타 연구원은 “어린이에게 성적인 영상이 노출된다거나 선거철에 편향적인 콘텐츠가 노출되는 등의 문제에서는 100개 중 단 한번만 잘못돼도 영향이 크므로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김미지 이케아 머신러닝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고객의 주문 취소를 분석하고 예방하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려 했지만, 데이터 토큰당 가격 등을 고려했을 때 비용이 너무 커서 포기했다”며 “많은 한국 기업들도 현재 자체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기도, 기존 모델을 가져다 쓰기도 비용상 어려운 경우가 많아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픈에이아이가 쏘아 올린 생성형 인공지능 경쟁에서 승자는 빅테크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박세영 연구원은 “구글·엠에스·메타 같은 기업이 앞장서서 오픈에이아이처럼 (가짜 답변 등) 리스크(위험)를 지고서 제품을 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오픈소스로 내놓은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도 리스크는 사용자가 지고 가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현호 수석은 “아마존·구글·엠에스 등이 생성형 인공지능을 플랫폼으로 만들어 통째로 내놓다 보니 앞으로 빅테크들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라며 “클라우드까지 한꺼번에 제공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람들이 더 많이 쓸수록 빅테크 회사들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올해 생성형 인공지능이 본격 확산되며 개인의 생산력이 폭발하고, ‘범용 인공지능’(AGI)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박세영 연구원은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도 얼마 전 ‘우리가 에이지아이를 만들 것’이라 했지만, 과연 그게 무엇이고, 언제가 될 것인가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주한나 선임연구원은 “우리 같은 개발자들과 권력자들이 생각하는 에이지아이가 서로 다른 듯하다”며 “자율주행 문제처럼 인간이 허용할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시애틀/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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