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홍콩 ELS 배상, 과거 이익은 손실서 공제

황지윤 기자 2024. 2. 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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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불완전 판매’ 배상안 윤곽
홍콩지수 ELS피해자모임과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회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사태 관련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02.15./뉴시스

금융 당국이 홍콩 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에 여러 번 재가입했다가 이번에 대규모 원금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손실을 배상하되, 이들이 과거에 벌었던 이익의 일부를 손실에서 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온라인과 증권사를 통해 가입한 일부 투자자는 배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 수조원 규모의 손실이 예상되는 홍콩 ELS 상품 ‘불완전 판매’에 대한 금융 당국 배상안의 윤곽이 잡힌 것이다.

18일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홍콩 H지수 ELS 투자로 과거에 벌어들인 이익은 손실에서 공제하고, 온라인과 증권사를 통해 가입한 상품은 배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홍콩 ELS 가입 고객의 경우 재가입자 비율이 90%에 달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여러 번 재가입한 투자자의 경우 상품 내용을 잘 아는 데다 과거 수차례 이익을 봤기 때문에 단순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가입 시 투자 위험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재가입자도 불완전 판매 피해자일 수 있다고 금융 당국은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 5% 수익을 주는 홍콩 ELS 상품에 1억원을 투자해 과거 3년간 연 500만원씩 총 1500만원의 이익을 봤던 투자자의 경우, 이번에 H지수 폭락으로 5000만원 손실을 봤다면 기존 이익인 1500만원 중 상당액을 손실에서 뺀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기존 이익 중 얼마를 손실에서 공제할지 구체적인 비율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 증권사 판매분을 배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원래 증권사들이 판매하는 상품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이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온라인 가입 비율이 높아 설명 의무 등 불완전판매 입증이 쉽지 않은 점도 금융당국의 고민이다.

또 불완전판매 입증이 어려운 통상 금융사 창구 직원의 권유로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불완전 판매가 이뤄지는 만큼 투자자가 온라인을 통해 상품에 가입한 경우 배상에서 빠지는 방안도 검토된다. 투자자가 상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인지하고 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투자자 개별 사례에 따라 배상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러 안을 놓고 검토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분들(재가입자)은 당연히 자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볼 것만은 아니다. 최초 가입 시 리스크(위험) 고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후 판매사에서 스리슬쩍 재가입을 권유했다면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일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투자 위험을 제대로 설명받지 못한 상태에서 관성적으로 ELS에 재가입한 투자자도 불완전 판매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재가입자 과거 이익은 손실에서 공제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홍콩 ELS에 여러 번 가입하면서 이익을 봐온 투자자들이 실질적 피해자가 맞느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창구 직원으로부터 위험 고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금융사로부터 불완전 판매 피해를 본 경우, 재가입자들도 배상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그동안 ELS를 통해 얻은 이익은 손실액에서 공제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증권사나 온라인을 통해 홍콩 ELS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의 경우 배상에서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11월 금융권의 홍콩 ELS 전체 판매 잔액은 19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80% 이상인 15조9000억원 규모가 은행에서 팔렸다. 증권사 판매액은 3조4000억원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큰 고위험 상품을 파는 것에 대한 책임론도 크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홍콩 ELS 사태는 초식 공룡(은행)이 고기(고위험 상품) 먹다가(팔다가) 탈이 난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 판매는 창구 직원의 권유 없이 투자자가 직접 가입한 경우가 많아 불완전 판매 소지가 적다는 게 금융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금융사 직원이 지점을 찾아온 고객에게 온라인 가입을 유도해서 설명 의무와 책임 등을 회피하려 한 경우는 배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불완전 판매 점수화해서 배상 비율 산출한다

금감원은 배상 기준안 마련을 위해 금융사들의 홍콩 ELS 불완전 판매 정황을 점수화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스코어링(scoring)’ 방식을 검토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각각의 위반에 해당하는 행위들을 중요도에 따라서 세밀하게 점수화해서 배상 비율을 산출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예컨대 고객의 연령이 65세 이상이거나 과거 ELS 가입 경험이 없을 경우 불완전 판매 점수(벌점)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배상 비율도 올라가는 방식이다. 또 판매 과정에서 직원이 “예금과 다름없는 원금 보장 상품”이라고 추천했어도 벌점이 올라간다.

금감원은 설 연휴가 끝난 뒤 진행하고 있는 11개 금융사에 대한 2차 검사 결과가 마무리되면 이달 안에 구체적인 피해 구제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금감원은 ‘배상안’보다는 ‘책임 분담안’이라는 표현을 쓰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법 위반에 따른 배상안으로 프레임을 잡을 경우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고객들의 피해 구제가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복현 원장은 “배상은 불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오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2월 말까지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책임 분담 기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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