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으로 아이들 떠난 후 허전한 마음... 어떻게 채우죠?"[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 성취도 크지만, 한국의 중년은 격변에 휩쓸려 유달리 힘들다. 이 시대 중년의 고민을 진단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해법들을 전문가 연재 기고로 모색한다.
건강 : <8> 중년의 행복, 삶의 의미 충족에 달려 있다
받으려는 태도, 주려는 결심으로
재능 점검 후 주변에 베풀기
이미 가진 것도 충분히 누려야
60대 여성 K씨는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후 허전한 마음을 지역 독거노인들을 위한 반찬 봉사로 달랜다. 식구가 줄어서 요리하는 재미도 줄고 입맛마저 잃어서 우울했는데, 비슷한 처지의 이웃들과 함께 모여 반찬을 만들어 지역 노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말동무도 해드리면서 에너지를 얻고 있다. 긴 세월 남편 탓, 시어머니 탓을 하며 혼자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녀가 세상으로 나올 용기를 얻게 된 것은 ‘받으려던 태도’에서 ‘주려는 결심’을 하게끔 도와준 심리상담의 결과였다.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에 따르면 인간은 다양한 차원을 가진 복잡한 유기체이다. 우리는 생물학적 차원에서는 이미 결정된 존재이고 심리적 차원에서는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존재이지만, 영적 차원에서는 삶에 대한 태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특별한 존재이다. 타고난 신체조건은 어찌할 수 없고 가족과 사회 안에서 어울려 살아가야 하므로, 어른들의 눈치도 봐야 하고 자식들에게 양보하며 살아야 하지만 삶의 의미와 목적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우리나라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중년기 이후 내적 공허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가족과 사회 안에서 수십 년간 열심히 살면서 ‘쓰임’을 다하고 난 후에야 깨닫는 ‘비어버린 마음’ 때문이다. 시어른 모시며 가족 돌봄에 평생을 바친 주부 K씨처럼, 가족 부양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느라 세월을 바친 퇴직 후의 남성들도 이러한 공허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바쁘더라도 평소에 삶의 의미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중년 이후 진정한 행복은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 부유함보다 내면의 풍요로움, 즉 삶의 의미 충족에 있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제일 쉬운 방법은 자신의 재능이나 강점을 십분 활용하며 사는 것이다. 주부 K씨의 경우 가족을 위해 요리하던 강점을 살려 지역 사회의 저소득층을 위해 베푸는 삶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충만감을 얻게 되자 한동안 시달리던 ‘빈둥지 증후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칭찬이나 감탄을 떠올려 보자. 누구나 힘들이지 않아도 다른 이들보다 쉽게 잘 해내는 일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바로 그 강점을 아낌없이 발휘할 때 ‘베풂으로써 채워지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자신의 삶 속에 이미 존재하는 가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누리는 것인데, 이것은 다양한 경험을 회피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기꺼이 누릴 때 채워지는 삶의 의미’이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사람은 그만큼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뒤따라오는 이를 위해 무거운 출입문을 잡아주는 일, 복도에 떨어진 쓰레기를 조용히 줍는 일, 낭비되고 있는 전기 스위치나 수도꼭지를 잠그는 일 등 사소하고도 간단한 일이다. 이렇게 발견되는 소소한 삶의 의미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충만해지는 조용한 행복감을 준다.
마지막 방법은 쉽지 않은데 ‘시련과 역경을 통해 발견하는 의미’이다. 이것은 상당한 두려움을 동반하며 그에 상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역경 가운데 삶이 고통으로 점철된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시련 너머 어딘가 숨겨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의지를 다질 때 삶은 반드시 다음 국면으로 전환한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이루고 싶은 삶의 목적과 방향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태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
세월을 거슬러 먼 미래에서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어떨지, 또 과거의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마음일지 가늠해 보자.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조망해 본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저마다의 의미가 뚜렷해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작은 의미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더 넓은 안목으로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것은 중년의 우리가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시련을 견디는 힘이 되기도 하고 삶의 동기를 북돋우는 방법이 될 것이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011548000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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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1417160002482)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0814530005894)
이정미 서울상담심리대학원 교수ㆍ<심리학이 나를 안아주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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