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라면 年매출 1조 이끈 창업자 맏며느리 “불닭은 중독, 안 망한다”
“오이시(맛있어)!” 지난 15일 일본 지바시에서 열린 ‘수퍼마켓 박람회(Supermarket Trade Show) 2024′. 매년 6만여 명이 몰리는 일본 최대 식품·유통 박람회다. 삼양식품 부스는 3500여 곳 중에서도 유독 북적거렸다. 불닭볶음면과 일본에 새로 내놓은 인스턴트 파스타 ‘탱글’을 시식하려는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삼양식품그룹 새 이름) 부회장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세계 최초 라면 업체이자 일본 최대 라면 업체 닛신도 이달 불닭볶음면을 따라 한 신제품을 내놓는다고 들었다. 포장에 한글을 새긴 것까지 같더라”면서 “라면의 종주국 일본서도 K푸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삼양라면은 국내 최초 라면 회사로 한때 시장점유율 70%까지 기록했다. 그러나 1989년 발생한 ‘공업용 우지 사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5년 8개월 동안 법정 싸움 끝에 1995년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삼양라면이 10%대까지 떨어진 시장점유율을 다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김 부회장을 경영으로 부른 사람은 시아버지이자 창업주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었다. 서울예고와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를 나온 그는 본래 결혼 후 가정주부였다. 1998년 입사한 그는 “절박해서, 아무것도 몰라서, 그저 바닥부터 뛰면서 일했다”고 했다. 그는 이후 연 매출 1조원 규모의 수출 기업으로 올려놓았다. 김 부회장이 만든 불닭볶음면은 현재 미국·중국·일본·영국·독일·캐나다·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전 세계 95국으로 팔려 나간다. 김 부회장을 일본 도쿄에서 만났다. 경영에 뛰어든 지 25년 만에 국내 언론과 처음 하는 인터뷰다.
◇반전 드라마 ‘불닭’
-일본 박람회까지 왔다. 늘 이렇게 직접 현장을 다니나.
“내가 와야 일이 빨리 풀리니까. ‘이런 거 왜 빨리빨리 진행 안 돼? 지금 바로 하자’고 독려할수록 모든 일이 쉬워진다. 직원들이 괴롭고 답답한 점도 직접 물어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 중간에 본부장, 부장 거쳐 가며 알아보면 절대 제대로 알 수 없다.”
-1998년 영업본부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본격적으로 회사 경영을 하게 될 줄 몰랐다(웃음). 1994년 1월 초에 시집왔고, 시아버지께서 처음엔 ‘원주 골프장 인테리어 좀 봐달라’고 하셨다. 회사가 흔들리자 나를 영업에 투입했다. 전국 마트, 수퍼마켓을 다 돌아다녔고 “삼양라면 좀 눈에 잘 띄게 배치해 달라”고 허리 숙이며 읍소했다. 한번은 대전에 갔더니 타사 라면이 다들 ‘원 플러스 원(1+1)’으로 묶음 세일을 하더라. 우린 그럴 마케팅 비용도 없고 여력이 안 됐다.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직원들에게 말했다. ‘한국 시장선 답이 안 나오니, 내가 외국 가서 물건 팔아 오겠다. 그때까지만 버티자’고. 수출을 해보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지난달 6일 미국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6조원 라면 시장을 뒤흔든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김 부회장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WSJ은 “김 부회장의 삶이 한국 드라마의 한 페이지를 찢고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서울의 명동 불닭집 앞에 사람이 많은 것을 딸과 함께 보고 나서 2012년 불닭볶음면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당시 딸이 고등학생이었다. ‘앞으로 공부하느라 엄마랑 데이트할 시간이 별로 없을 테니 놀러 가자’고 했다. 내가 예고 출신이라서 명동 지리를 좀 잘 안다. 손수 운전해 뒷골목에 차를 대고 나오는데 불닭집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라.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불닭을 먹는 걸 보고 ‘매운 걸 이렇게 다들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바로 나와 수퍼마켓에서 각종 양념을 사서 회사 직원들에게 나눠 주고 ‘이걸로 제품 좀 만들어 보자’고 했다.”
-직원들도 처음에 ‘사람이 못 먹을 매운 맛’이라고 반대했다던데.
“다들 반대했지만, 굽힐 생각이 없었다. 난 알고 있었다. 매운맛이 이미 무섭게 인기를 끈다는 걸. ‘나가사끼 짬뽕’이라는 제품을 만들면서 청양고추를 슬쩍 넣어봤는데, 난리가 날 정도로 잘 팔렸다. 아이들 학교 끝나고 학원 데려다 주면서 보면, 아이들 열 명 가운데 네댓 명은 이걸 먹고 있었다. 불닭은 더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아버지인 전중윤 명예회장도 처음엔 불닭볶음면이 ‘너무 맵다’고 반대했다던데.
“‘사람들 배고파서 먹는 식사는 너무 맵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 삼양라면도 처음엔 안 매웠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 최초 ‘모디슈머(자기 입맛대로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다. 우리 라면을 드셔 본 박 대통령은 아침 일찍 명예회장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임자, 칼칼하게 고춧가루 좀만 더 넣지’ 하셨다더라(웃음). ‘나가사끼 짬뽕’은 아버님께 살살 빌어가며 만들었다. 불닭볶음면을 드신 시아버님이 ‘이렇게까지 매운 걸 꼭 해야 하느냐’고 하셨을 땐, ‘예, 이건 무조건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시아버님이 2014년 돌아가셨다. 불닭볶음면이 세계적으로 히트한 걸 못 보고 가신 게 못내 아쉽다.”
◇유튜버 등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2014년 구독자 580만명이 넘는 유튜버 ‘영국남자’가 불닭볶음면을 먹는 런던 사람들 반응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면서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폭발했다.
“계속 준비하지 않으면 잠깐의 운에 그칠 수도 있다. 유튜브, 틱톡 등에서 ‘불닭볶음면 챌린지’를 올리는 놀이가 전 세계에 번지는 것을 보며 우리도 소비자 반응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치즈 가루 올려 먹는 유튜브가 터지면 ‘치즈불닭볶음면’을 만들었고, 고추 올려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3배·5배 매운맛 불닭도 내놨다. 그게 또다시 히트했고 매출도 지속적으로 늘었다.”
◇”포스트 불닭? 걱정 없다”
-‘불닭면 이후’를 궁금해한다.
“다들 ‘너희 불닭이 매출의 90%인데 이거 무너지면 어떻게 될지 불안하지 않으냐’고 한다. 그때마다 ‘불닭은 안 무너진다’고 답한다(웃음). 코카콜라는 120년 동안 잘 팔린다. 중국에서 잘 팔리는 굴 소스인 이금기 소스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3조~4조원어치씩 팔리고, 시장점유율의 90%를 차지한다. 불닭도 그럴 거라 믿는다. 매운맛은 생물학 반응에 가깝다. 먹고 나면 땀이 나면서 개운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마치 운동을 하면 개운해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일종의 기쁨을 주는 맛이고, 한번 먹으면 헤어날 수 없는 중독에 가깝다. 게다가 매운맛은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다. 까르보불닭, 야끼소바불닭처럼.”
-소스 시장을 겨냥한다는 얘기도 있다.
“불닭 소스를 더 묽게 만들고 비율을 잘 맞춰 개발하면 어느 음식에나 뿌려 먹을 수 있는 기막힌 소스가 된다. 외국 출장 나가 보면 테이블마다 케첩, 마요네즈, 타바스코 소스까지 있는데 고추장만 없다. 고추장은 뻑뻑하고 텁텁해 외국 음식에 폭넓게 써먹기 쉽지 않다. 불닭 소스가 거기 올라가면 되겠다 싶더라. 올해 안에 리뉴얼해서 내놓을 거다. 소스 시장은 라면 시장보다 몇 배는 더 크다. 두고 보시라. 이건 된다(웃음).”
-시장 흐름은 어떻게 따라잡나.
“신문 열심히 읽고 소셜미디어 열심히 하고, 젊은 사람들이 관심 가지는 데엔 나도 열심을 쏟는다. 여기 오는 길 차 안에서도 ‘포켓몬고’ 게임을 했다(웃음). ‘포켓몬고’를 해보면 캐릭터 이름이 기막히다. 일본 이름, 한국식·미국식 번역 이름이 다 다른데, 뜻이 쉽고 직관적이다. 이런 걸 볼 때면 나도 제품 네이밍, 마케팅 하는 법을 다시 배운다.”
-삼양라운드스퀘어로 최근엔 지주회사 사명도 바꿨다. 궁극적으로 어떤 회사가 되길 바라나.
“시아버지가 꿀꿀이죽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 위해 일용할 양식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회사가 삼양라면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분이다.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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