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북토크에서
북토크는 두툼한 종이 뭉치 뒤에 숨어 있던 저자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독자 앞에 자신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자리다.
저자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책을 읽었거나 혹은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를 만날 기회이기도 하고, 독자 입장에서 보면 텍스트 너머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저자를 만날 기회라 할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북토크는 설렘 가득한 자리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북토크가 열리면, 행사장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현장에서 책도 많이 팔리고, 행사가 끝나면 저자 사인을 받기 위한 독자들의 긴 줄이 만들어진다. 사람들로 가득 찬 행사장은 마치 인터넷 서점에 표기된 높은 판매지수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러한 점에서 북토크는 책과 저자의 인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종의 성적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만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북토크가 성황리에 진행될 수 없으며, 모든 책이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순 없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오후, 책 편집을 담당했던 작가님의 북토크가 부산에 있는 한 도서관에서 열렸다. 행사 진행을 맡기로 했기에, 일찍 도착해 사회 대본과 질문지를 점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님도 행사장에 도착해 인사를 나눴다. 다만 반가움도 잠시, 행사 시작 시각이 가까워졌음에도 텅 비어 있는 관객석을 보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행사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마이크를 통해 행사장에 울려 퍼질 때가 되어서야, 참석자 세 명이 각자 멀리 떨어져 앉아 있었다. 온라인 송출과 함께 진행하는 행사이긴 했지만, 휑한 관객석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작가님이 민망해할까 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행사를 진행했지만, 사회자가 느끼는 감정을 행사의 주인공이자 책의 저자인 작가님이 못 느낄 리 없었다.
단순히 북토크 참석자가 적다는 사실을 넘어, 애써 만든 책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기분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든, 어떤 마음으로 책을 기획했든, 사람들은 우리가 만든 책에 관심 가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유난히도 냉혹하게 다가왔다.
행사 막바지, 질의응답 시간에 참석자 한 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아이 두 명을 키우고 있는 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평일 오후에 열리는 오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 명은 친정에, 한 명은 시댁에 맡기고 오는 길이라 했다. 이어서 자신도 작가님처럼 글쓰기를 제대로 시작하고 싶다며 여러 조언을 구했다. 누군가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며 간신히 참석한 행사를, 누군가는 현실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간신히 손을 내밀었던 자리를, 정작 담당 편집자이자 진행자는 행사에 세 명밖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며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책도 엄연한 상품이었기에 많이 팔고 알려야 의미와 가치가 만들어진다. 북토크를 책에 관한 성적표로 접근한다면, 겨우 세 명밖에 오지 않은 행사는 실패한 것이며, 북토크의 주제 도서 역시 대중의 반응을 얻지 못한 실패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책의 상품적 가치는 가격으로, 상업적 가치는 판매지수로 매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아픔을 글로 쓴 작가님의 마음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해 책으로 엮은 편집자의 마음과, 두 아이를 친정과 시댁에 각각 맡기며 간신히 시간을 내어 행사에 참석한 독자의 마음은 가격과 판매지수로 매길 수 없다. 그 독자가 오로지 작가의 유명세와 판매량만을 보며 행사에 참석한 게 아니라고 믿는다면, 순수하게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어렵게 발걸음했다고 믿는다면, 글을 쓰며 책을 만들었던 저자와 편집자의 마음도 오로지 유명세와 판매량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든다는 건, 먹고 살아야 하는 그 냉혹하고 치열한 세계에서 아주 조금씩 새어 나오는 이러한 마음을 발굴하는 일이자, 간신히 찾은 그 마음을 현실의 문법에 치여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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