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7] 성주(城主)

문태준 시인 2024. 2.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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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성주(城主)

당신은 성주가 되었다

성 하나에 한 사람뿐인

그가 되었다

사람들은 당신 앞에서 모자를 벗지만

그때 웃음판이 멈추기도 한다

당신의 고독은 깊어 간다

탁월함이 인격인 건 아니고

행복이 가치의 지표도 아니다

재물은 너무 많아도 안 되고

고독은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멀리 보며 전체를 생각하라

좋은 꿀의 꿀물을 타서

많은 이가 감미롭게 마시게 하라

겸허히 기도하라

-김남조(1927~2023)

김남조 시인은 2020년에 마지막 시집 ‘사람아, 사람아’를 펴냈다. 시인의 열아홉 번째 출간 시집이었다. 이 시는 그 시집에 실려 있다. 시인은 시집을 펴내면서 자신에게 시(詩) 혹은 시심(詩心)은 “한 덩이의 작은 흙이었으면서 기적처럼 풀씨가 돋아나는 신비를 보여 주었”다고 회고했다. 나는 이 시심을 사람이 갖고 있는 내면의 옥토(沃土)로 이해한다. 그리고 내면의 너른 옥토를 소유하고 있기에 모든 사람은 제 스스로 성주의 지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시편들은 긍정과 사랑, 기도의 노래였다. 이러한 시학이 이 시의 행간에 숨 쉬고 있다.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라고 쓴 시 ‘설일(雪日)’이 얼핏 보이고,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고 쓴 시 ‘편지’의 뭉클한 감동도 느껴진다. 시인은 내게 큰 양초를 포장해서 보내주신 적이 있는데, 그 뜻은 마지막 행에 담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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