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축구협회, 하극상 소동엔 왜 방관하나

이위재 기자 2024. 2.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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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팀’으로 못 뭉쳤던 축구 대표… 졸전 우승 실패는 예견된 참사
그 뒤 벌어진 더 심각한 반목·갈등… 빠르게 수습하고 치유책 찾아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거취 관련 발표를 하기 위해 축구회관에 입장하고 있다. 2024.2.16/뉴스1

“선수들도 사람이다.”(축구 국가 대표팀 주장 손흥민) 실수도 저지르고 오판도 한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 국가 대표로 소집되면 자동으로 원 팀 정신(one team spirit)이 샘솟길 기대하는 건 너무 낭만적이다. 다들 일사불란하게 조직 논리에 맹종하면 좋겠지만 현실에선 쉽지 않다. 축구계에선 다 아는 얘기지만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도 주축 선수들 사이 알력과 충돌이 심했다고 한다. 다만 16강 진출이란 목표를 달성하면서 그 내막이 가려졌을 뿐이다.

이번 아시안컵 축구에선 달랐다. 이 ‘황금 세대’를 데리고 월드컵도 아니고 아시안컵 우승도 못 하느냐는 실망. 더구나 전부터 밉상인 감독. 부글부글 끓는 여론에도 먼 산만 쳐다보는 축구협회. 여기에 ‘선후배 간 하극상’이란 화끈한 불씨가 던져지자 사방이 무섭게 타오르고 있다.

좋은 선수들이 모였다고 좋은 팀(super team)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스포츠계에선 ‘케미(chemistry)’의 힘을 믿는 이가 많다. 팀 내에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 일체감·유대감이 흘러야 위기를 넘고 전력을 극대화해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즉 우승을 일궈낼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다. “팀 케미란 선수들이 서로를 돌보는 겁니다. 선수들은 경주용 자동차가 아닙니다. 동료에 대한 감정은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런 감정은 경기력에 영향을 줍니다.”(전 미 프로 야구 선수 조니 곰스)

케미를 이끌어 내는 책무는 궁극적으론 감독에게 있다고 본다. 그런 걸 잘해내는 지도자를 흔히 명장(名將)이라 부른다. 클린스만 감독이 상황에 맞춰 변화무쌍한 전술을 펼치는 지장(智將)이 아니란 건 다들 알았던 듯 하다. 그렇다면 카리스마를 발휘해 내부 마찰을 잠재우고 케미를 융합하는 전술 외적 역량을 갖춘 덕장(德將)이나 용장(勇將)이라도 됐으면 했을텐데 이제 보니 이마저도 함량 미달이었다.

(인천공항=뉴스1) 김진환 기자 =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꿈을 이루지 못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선수들이 얼마나 감독을 우습게 봤으면 특정 선수를 빼달라고 요구했겠는가. 이런 도를 넘은 행태가 있었다는 건 감독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한 축구계 원로는 “히딩크 때였으면 어림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후배가 선배를 존중하고, 선배는 후배를 배려하며, 선수는 감독을 존경하고, 감독은 선수를 추동할 때 팀 케미는 오롯이 빛난다. 지나고 보니 이번 아시안컵 대표는 곳곳이 새는 배를 끌고 긴 항해를 나선 셈이었다. 중간에 좌초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제 물은 엎질러졌다. 관건은 어떻게 잘 주워 담느냐다. 어차피 다 주워담을 순 없다. 그래도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대표팀 밖에선 하극상 당사자들을 둘러싸고 편을 갈라 상대편을 공격하느라 아수라장이다.

아시안컵에 출전했던 손흥민(왼쪽)과 이강인. 2024.2.14/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이 걸 방치하다간 자칫 한국 축구를 지탱하는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그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 혼란과 상처를 빠르게 수습하고 더 나은 대표팀을 다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축구가 주는 성취감을 많은 국민이 전처럼 즐길 수 있게 해야 한다. 평소 축구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는 일부 정치인들마저 참견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광경은 솔직히 거북하다.

그런 차원에서 축구협회가 좀 더 각성해야 한다. 지금 이 일을 둘러싸고 온갖 불분명한 전언과 통신이 난무하는데 방관하고 있는 건 무책임하다. 그 하극상 현장에는 축구협회 직원이 있었다.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고 누가 잘못했는지 조사해서 문책이 필요하다면 적정한 선에서 단행하고 과오를 저지른 선수에겐 자숙하고 반성할 기회를 줘야 한다. 어물쩍 끌 일이 아니다. 끌 수록 상처만 깊어 진다.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은 “(시시비비를 따지다)상처를 후벼서 악화시킬 수 있다”면서 “잘 치료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 치유와 복원을 위해 협회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피한다고 저절로 아물 일이 아니다. 제 때 치료하지 않으면 골든 타임만 놓친다.

대표팀은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한 달여 뒤 월드컵 예선 태국(FIFA 랭킹 101위)전을 치러야 한다. 평소 같으면 어려워할 상대는 아니지만 지금 분위기 같으면 낙승을 장담할 수 없다. 태국도 아시안컵에서 선전했다. 1승2무로 16강에 올랐고, 예선에선 사우디아라비아와 0대0으로 비겼다. 사우디는 한국과 1대1로 비겨 승부차기로 진 팀이다.

협회 1년 예산은 국가 대표 팀 기업 후원금과 경기 수익(635억원), 그리고 정부 직간접 지원(333억원) 등 외부에서 다 나온다. 국가대표와 정부 지원이 없으면 조직을 꾸릴 수도 없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더 절실하게 사태 해결을 위해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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