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IS의 귀환… 더 독해진 그들에겐 팔레스타인 해방도 나중 문제다
1월 3일 이란 남부 케르만 순교자 묘역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는 국제사회를 아연 긴장시켰다. 참배객 95명이 사망한 큰 사건이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배후로 의심했다. 가자 전쟁 국면에서 하마스와 헤즈볼라, 그리고 후티 반군의 배후 국가 이란을 상대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보복에 나섰다는 설이 퍼져나갔다. 2020년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솔레이마니 사령관 4주기 추모 집회였기에 이란 국민들의 감정적 동요도 컸다. 전면전 위기감이 피어올랐다. 가자 전쟁의 불길을 잡지 못하고 확전 우려로 국제사회가 조마조마해하던 차에 이 사건은 곧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IS(이슬람국가)가 자신의 소행이라 밝히고 나선 것이다. 의아했다. 이슬람 강경파 입장에서 보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가자 전쟁은 이슬람권이 이른바 유대·기독교 연합의 상징인 시온주의와 맞서 싸우는 국면이다. 그렇다면 IS는 오히려 신이 나서 하마스와 함께 이 대열에 참여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IS는 오히려 하마스의 핵심 후원국인 이란을 타격하면서 세상을 당황하게 했다. 심지어 미국과 이스라엘의 IS 비밀 공조라는 음모론까지 횡행했다.
왜 그랬을까? 시아파(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인 IS는 시아파를 이교도로 여긴다) 이란이 마치 팔레스타인 해방의 주역인 것처럼 부상하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언뜻 보면 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 그만큼 IS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즉 이들에겐 범이슬람권의 승리나,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들의 이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모두 ‘탁피르(Takfir)’, 즉 ‘배교’로 규정한다. 한두 개의 차이를 부각해 내부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태도가 악화 일로다. 특히 이번 테러를 비롯, 요즈음 부상하고 있는 IS 호라산 지부(IS-Khorasan)가 심상찮다. 이란 동부, 아프가니스탄 및 인근 중앙아시아까지를 넓게 지칭하는 호라산을 배경으로 하는 IS-K는 기존 IS와는 또 다르다. 더 위험한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그 배경을 살펴보자.
외골수의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량 살상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념을 폭력적 극단주의 (Violent extremism)라 부른다. 알카에다가 그 1세대 그룹이었다. 9·11 테러와 그 후폭풍인 이라크 전쟁의 혼돈을 자양분으로 알카에다보다 극악한 폭력적 극단주의 2세대인 IS가 나타났다. 10년 전인 2014년 6월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에 똬리를 틀고 등장했다. 1세대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 오지를 거점으로 테러를 획책했다. 반면 IS는 아랍 본토의 저잣거리로 내려와 직접 통치 체제를 구현하려 했다. 알카에다가 수호지의 양산박 산채 같은 느낌이었다면, IS는 삼국지의 구체적 국가 이미지로 행세하려 했다. 열혈 무슬림 입장에서는 7세기 정통 칼리프의 시대가 21세기에 재현된 느낌을 받을 법했다. 파장이 컸다. 숨어서 싸우는 알카에다와 달리 IS는 자신들을 드러내고 열혈 무슬림들의 이주를 독려했다. 자국의 부패한 권위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이슬람 정치 이념에 경도된 청년들이 각처에서 몰려들었다.
IS의 잔학성과 확장성이 심상치 않자 당시 국제사회는 하나로 뭉쳤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반정부 이슬람 세력을 억제해야 하는 러시아와 중국도 참여했다. 미·중·러, 심지어 이란도 함께한 이례적 공동전선이었다. 다국적군과 이라크 정부군 및 현지 민병대들의 합동 작전 끝에 결국 IS는 5년 만에 몰락했다. 그동안 IS에 몰려든 해외 무장 전투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당하게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었다. 위계 조직 IS는 해체되었지만 핵심 분자들은 각지로 퍼져 프랜차이즈로 살아남았다. 그중 하나가 이번 테러의 주역인 IS-K다. 거점 몰락과 함께 요원 일부가 탈레반이 발호하던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겨 가 만든 조직이다. 폭력적 극단주의 3세대다. 권토중래를 꿈꾸는 이들은 앞 세대보다 더 극단적이고, 더 이념적이며, 더 큰 확장성을 갖는다.
IS-K는 처음엔 탈레반과 함께 미국에 맞섰다. 그러다 미군이 전격 철군하고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자 이번엔 탈레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국제사회 눈치를 보며 이슬람 투쟁의 선명성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다. 탈레반을 타락했다고 할 정도면 이들의 이념적 배타성과 극단성을 짐작할 수 있다. 2021년 미군의 전격 아프가니스탄 철군 당시 카불 공항 테러로 수백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3세대 IS-K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불안하다. 10년 전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를 거점으로 했던 초기 IS는 튀르키예, 사우디, 이란 등 역내 강국에 둘러싸여 확장성이 약했다. 주변에 미군이 주둔하며 반IS 전선을 총지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라산 지역은 다르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및 타지키스탄 등과 연계되며 약한 고리를 찾아 세력을 키울 기세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주 테러 무대는 이란과 튀르키예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1월 28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성당 테러는 타지키스탄 출신 IS-K 대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테러는 진화한다. 특히 탈레반과의 실전을 통해 강화된 IS-K의 폭력성은 만만히 볼 수 없다. 무엇보다 폭력적 극단주의 1세대 알카에다와 2세대 IS가 소멸된 게 아니다. 약화되었지만 흩어져 기회를 보고 있다. IS-K의 연이은 테러 소식은 이들을 자극한다. 두더지 튀어나오듯 경쟁적으로 선명성 투쟁에 나설 수도 있다. 2주 전 튀르키예 이스탄불 법원 테러에서 보듯 극좌파들까지 유행처럼 테러에 나섰다. 폭력은 유행처럼 전염된다. 올 6월 IS 국가 선포 10주년쯤이 걱정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비국가 테러 집단의 준동을 막으려면 국가 간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각자도생을 염두에 두고 담장을 높이는 시대다. 10년 전 같은 국제사회의 대테러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 답할 수 없기에 답답하다. 테러리스트의 칼끝은 아직 세상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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