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업 규제가 국가 출생률도 가로막는다
지난해 2월 통계청이 발표한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 0.78명은 가히 충격적이어서 외신도 크게 주목한 바 있다. “K출산율 세계 최저 기록 셀프 경신” “중세 흑사병보다 심각한 인구 감소”와 같은 난감한 수식을 받았다.
청년들이 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지 들여다보면 일자리, 주거, 노동시장 성평등, 교육 정책 등의 다양한 국가적 난제가 뒤엉켜 있다. 국가의 출생률 문제는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고차 방정식인 것이다.
청년들은 일자리(소득) 불안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는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경제적 지원으로 해소될 불안이 아니다. 실제로 과거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16년간 출산장려금, 양육비 지원, 아동수당 등의 명목으로 28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생률은 계속 떨어지기만 했다.
지난해 청년 고용률이 46%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일자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54%의 청년이 미취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는 곳이 있는데, 바로 국내 인력 시장 90% 상당의 고용 비율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이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노동생산성(투입된 노동력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대기업 수준의 고임금을 부담할 여력이 없다. 대·중소기업의 평균 소득 격차는 2배를 넘어선 지 오래다.
청년 10명 중 6명이 대기업 취업을 희망하지만, 1명 미만이 꿈을 이룬다. 취업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 많은 청년들은 낮은 급여의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일하기보다는 좋은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스펙 쌓기를 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구직을 포기하고 은둔하며 ‘그냥’ 쉬기를 자청한다고 한다. 지난해 기준 무려 54만명의 고립·은둔 청년이 젊음을 공허히 흘려보내고 있다.
근본적 물음은, “청년들이 왜 중소기업에라도 취직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왜 이렇게 부족한가”가 되어야 한다. 미국은 전체 근로자의 50% 이상이 대기업에서 일한다고 한다.
IMF는 지난해 11월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 구조의 가장 큰 문제로 기술 혁신이 제조업 기반의 거대 기업에만 편중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서비스 산업의 혁신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산업 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기존의 허가, 자격 요건 등 규제를 완화해서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제언하였다. 실제로 한국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OECD 국가 중 독보적으로 높은 반면, ICT 등 서비스 산업의 비중은 현저히 저조하다. 최근 급부상하는 헬스·바이오, AI, 핀테크, 플랫폼 시장의 글로벌 유니콘 중 국내 기업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인 IT 창업자를 만나려면 한국이 아닌 실리콘밸리나 LA에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스타트업 업계는 한목소리로 우리나라의 가혹한 규제 환경을 지적한다. ‘타다’가 4년 만에 무죄로 결론 났음에도 우리 디지털 시장 규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업계 규제나 기성 직역 단체와의 갈등으로 인해 내수 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스타트업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최근 공정위가 추진하는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은 지배적 사업자를 특정해서 사전 규제를 하겠다는 것인데, 정작 외국 기업에는 이를 적용하기 쉽지 않아, 국내에서 그나마 입지를 확보한 소수 토종 기업의 성장만 제약하는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제조 대기업의 활약만으로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턱없이 부족하다. IMF의 제언과 같이 디지털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 대기업들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 서비스 산업의 성장은 대한민국의 장기화된 저성장과 일자리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스타트업이 시장에 진입하고 또 다른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뒷받침하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기업 규제가 국가 출생률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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