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스위프트를 만든 사람들

임희윤 음악평론가 2024. 2.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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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4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스위프트는 그래미 '올해의 앨범' 상을 4번째 수상했다. 2024.02.05/로이터 연합뉴스

얼마 전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 부문 역대 최다 수상자가 됐다. 그녀의 시상식에서는 올해 수퍼볼을 들썩인 남자 친구이자 미식축구 스타 트래비스 켈시 대신, 스위프트가 부른 수많은 곡을 쓴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가 시종 옆을 지켰다. 시상식 하이라이트였던 스위프트의 무대는 앨범에 참여한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진이 올라가 함께 채웠다. 스위프트는 수상 소감에서도 그들을 빠짐없이 호명했다.

스위프트의 시상식을 보면 그래미를 왜 세계 최고 권위 대중음악상이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미의 시상 부문은 장르별, 직능별로 촘촘히 제정해 100가지나 된다. 매 부문 수상작 트로피는 가수뿐 아니라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 녹음 엔지니어까지 많게는 수십 명에게 돌아간다. 올해는 이 시상식의 영예로 꼽히는 ‘본상(제너럴 필즈)’ 영역에 ‘프로듀서’와 ‘작곡자’를 위한 두 부문이 승격해 포함됐다. 이들은 가창과 공연뿐 아니라 ‘음악 제작’ 또한 핵심 축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반면 근년 우후죽순 쏟아진 한국 가요 시상식은 어떠한가.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페이버릿 글로벌 퍼포머’ ‘인스파이어링 어치브먼트’…. 이름만 거창한 이 상들은 결국 수많은 아이돌 가수가 나눠 가질 뿐이다. 정작 음악을 매만진 작가, 프로듀서, 엔지니어에게 주는 상은 찾기 어렵다. ‘한국의 그래미’를 표방한다는 한국대중음악상조차 대동소이하다. ‘올해의 음악인’ 같은 모호한 부문이 하나 있을 뿐,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상은 찾기 힘들다. 시상식에도 대개 가수 혼자 와서 상패를 치켜든다. 그래미 수상자 정보를 모아 놓은 홈페이지는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도 끝이 없을 정도로 음악 제작 참여자들 이름을 빼곡히 적어 놓았다. 하지만 그런 정성을 한국 시상식에선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어엿한 ‘팝 선진국’을 자처하고 싶다면, 그늘에서 조용히 음악을 만드는 이들을 이제라도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 방탄소년단이 ‘Dynamite’로 한국인 최초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을 때를 기억해보자. 노래야 멤버들이 불렀지만 작사, 작곡, 프로듀스는 두 영국인(데이비드 스튜어트, 제시카 어곰바)이 다 했다. 만드는 이가 없으면 산업도 예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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