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섭의전쟁이야기] 6·25전쟁의 전환점, 지평리 전투

2024. 2. 1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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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인 1950년 10월 중순, 중공군의 등장은 전황을 급변시켰다.

지평리 전투에서 유엔군의 승리는 군사적 성공을 넘어 유엔군에게 중공군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했고, 중공군 참전 이후 6.25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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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인 1950년 10월 중순, 중공군의 등장은 전황을 급변시켰다. 한반도의 미래는 불확실해졌고, 미국은 중국과의 전면전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엄청난 압박감 속에 한국을 포기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51년 2월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에서 벌어진 사흘간의 격전, 일명 ‘지평리 전투’는 6·25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가장 극적이면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미 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미 23연대 전투단의 철수 요청을 거부하고 지평리 사수를 명령했다. 유엔군은 압도적인 병력으로 포위 공격을 해오는 중공군을 패퇴시켰다. 극한의 위기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미군과 중공군이 사흘간 격전을 벌였던 지평리.
첫째, 유엔군은 철저한 방어 준비와 전략적 유연성을 통해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무력화시켰다. 연대장 프리먼 대령은 제한된 병력 수로 인해 전술적 이점을 지닌 넓은 고지군에서의 방어를 포기하고, 대신 평지이지만 비교적 촘촘한 원형방어를 구축하고 예비대를 확보하여 전술적 유연성을 확보하려 했다. 둘째, 압도적인 화력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중 지원과 포병의 집중적인 화력으로 중공군의 진격을 차단했다. 셋째, 정신력은 물리적 전력을 넘어서는 중요한 요소였다. 미군, 프랑스군, 한국인 카투사로 구성된 유엔군 장병들은 굴하지 않는 용기와 의지로서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전환시켰다.

전투 과정에서 여러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유엔군이 결국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장점을 최대화하면서 상대방의 강점을 무력화시킨 데 있었다. 중공군의 장점은 유연한 기동전이었지만, 포위된 유엔군을 향한 정해진 기동 경로는 그들의 장점을 제약할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유엔군은 중공군이 접근하는 정해진 기동로에 장점인 화력을 집중하여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한편 중공군은 화력이 약했기에 고지를 점하고 있어도 이를 장점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중공군에게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지평리는 유엔군에게 ‘사지’였지만, 유엔군은 운용의 묘를 통해 이곳을 ‘생지’로 바꾸었다. 지평리 전투에서 유엔군의 승리는 군사적 성공을 넘어 유엔군에게 중공군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했고, 중공군 참전 이후 6.25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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