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ELS 피해자와 피해 호소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얼마 전 고향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안부를 묻는 것도 잠시, 친구는 대뜸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얘기부터 꺼냈다.
홍콩H지수 ELS로 손실을 본 이들은 피해자일까, 아니면 피해 호소자일까.
불완전 판매에 속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배상은 가능하지만, 원금을 일부 떼일 가능성을 알고도 투자한 '피해 호소자'의 손실까지 보전해줄 근거는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고향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안부를 묻는 것도 잠시, 친구는 대뜸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얘기부터 꺼냈다. 금융회사가 배상하는 시기가 언제쯤일지, 배상 비율은 어느 정도가 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장인이 ELS 투자로 3000만원 가까운 손실을 봤다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어르신이 불완전 판매에 넘어간 것 아니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무슨 소리야. (장인이) 5년 넘게 투자했는데…. 당연히 깨질(원금 손실) 가능성도 알고 있었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홍콩H지수 ELS로 손실을 본 이들은 피해자일까, 아니면 피해 호소자일까. 일단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사례를 보면 불완전 판매에 따른 피해자들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은행 창구 직원이 팔순 노인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을 숨긴 채 상품 가입을 권하거나 암보험금 수령자에게까지 상품 가입을 유도했다고 한다.
정서법에 가려진 투자자 책임
이는 수수료에 목맨 은행의 탐욕과 맞물린다. 은행은 ELS 상품을 팔 때마다 가입자로부터 선취 수수료(약 0.8~1.0%)를 뗀다. 조기 상환이 이뤄지는 6개월마다 재투자를 권하고 그때마다 수수료를 또 챙긴다. 은행은 직원 인사평가 지표에 판매 실적까지 반영해 이런 행태를 부추겼다.
다른 시각도 있다. (국민정서법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투자자 책임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따지고 보면 ELS는 일종의 ‘베팅형 상품’이다. 투자한 상품의 기초지수(또는 종목)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통상 정기예금의 두 배 이상의 금리를 받는다. 2006년 은행들이 판매를 시작한 이후 ELS가 20년 가까이 대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이유다.
ELS 투자로 재미를 본 뒤 다시 투자에 나선 이들이 90%를 넘어서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만큼 이 상품에 익숙한 투자자가 많다는 얘기다.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주장도 먹혀들기엔 녹록지 않은 구조다. 은행들이 2021년부터 녹취를 강화하고 필수 설명 등을 인공지능(AI) 시스템을 통해 읽어주고 있어서다.
불완전 판매 막는 대안 고민해야
국내법은 이렇다. 투자자 책임 원칙에 따라 손실 보전은 명백하게 금지(자본시장법 제55조)돼 있다. 삼성전자 주가나 비트코인 가격이 내려가도 해당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주지 않는 이유다. 다만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위법한 행위’가 드러날 경우엔 손해배상(민법 750조)을 받을 수 있다. 불완전 판매에 속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배상은 가능하지만, 원금을 일부 떼일 가능성을 알고도 투자한 ‘피해 호소자’의 손실까지 보전해줄 근거는 전혀 없다는 뜻이다.
세상만사를 관통하는 정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금융당국이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자율 배상 압박에만 열을 올리는 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차라리 고위험 상품을 팔 수 있는 은행별 거점 점포를 지정하거나 상품 판매 총량을 정해 과당 경쟁과 불완전 판매를 최소화하는 게 낫다. 원금 손실률이 20~30%를 넘지 않는 저·중위험 상품만 은행에서 팔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피해자’와 ‘피해 호소자’를 모두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손흥민을? 믿을 수가 없다"…'탁구게이트' 해외서도 난리
- '최고 연봉 받고 SK로 오세요'…LG·삼성에 '선전포고'
- 'LG 찐팬' 늘려라 … 임원평가에 고객만족 도입
- "최소 '1조원' 날렸다" 어쩌나…한국 금융사들 '초비상'
- 죽 쑤는 코스피에 질렸다…분통 터진 개미들 '日증시' 풀베팅
- "이강인이 사라졌다"…'쿠팡플레이'도 손절
- "손흥민·이강인 몸싸움에 몇달 노력 박살나"…코치도 선수 탓
- 색소폰 든 군인 누군가 봤더니…방탄소년단 RM 근황 '포착'
- 독감으로 날아간 허무한 복귀전…'황제' 우즈, 향후 활동에도 '먹구름'
- 정적 감옥서 급사한 날…"앞으로! 성공!" 푸틴, 미소띤 채 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