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한동훈과 이재명의 ‘리더십 무게’ 어디로 기울까
생존 급급한 李, 사실상 공천내전 원인 제공
누가 자신을 버리고 大義를 좇느냐의 싸움
총선 끝나면 ‘정치 그릇’ 극명히 비교될 것
아직 공천 초반이고, 갈 길이 멀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게 맞느냐를 놓고 속사정은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2016년 옥새 파동의 한쪽 당사자였던 김무성 전 대표가 “시스템 공천 정착”을 평가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박(眞朴) 감별 논란 같은, 대통령 주변 세력이 분탕질을 하는 최악의 공천 파동은 피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역설적으로 명품백 효과가 아닐까 싶다. 국정 지지율이 낮은 윤 대통령이 명품백의 늪에서 제때 효과적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당에 대한 장악력도 약해진 것이다. 일각에선 ‘사랑의 힘’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한 위원장이 총선 공천의 주도권을 확실히 틀어쥘 수 있는 상황적 요인이 됐다는 점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득실 계산이 복잡하게 됐다.
물론 명품백의 덫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시 불거질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보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실제로 야권의 관심은 2개월 이상 두문불출하고 있는 김건희 여사가 언제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에 쏠려 있는 듯하다. 영어 표현에 ‘눈에 띄는 부재(conspicuous absence)’라는 말도 있는데 ‘보이지 않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여권으로선 명품백은 점수를 까먹을 대로 까먹은 감성적 이슈지만 공천은 총선 판도를 결정하는 실질적 이슈다. 몇몇 단수공천을 놓고 적절성 논란이 있지만 큰 틀에서의 용산발 파국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민주당 사정은 딱하다. “한동훈은 윤석열 아바타”라는 공세는 잘 먹히지 않는다. 용산의 사퇴 요구 및 반격을 거치며 한 위원장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총선 전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또 충돌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양쪽 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선을 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여권 내홍과 김 여사 이슈만 물고 늘어진다. 누구 말대로 여권 실책만 기대하는 ‘감나무 전략’에 감흥이 있을 리 없다.
민주당 총선 전략 부재의 중심엔 이재명 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반윤 연합 세력의 총사령관을 자임하고 있지만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라는 ‘생존’ 리더십 탓에 행보가 꼬이는 것이다. 민주당을 친명 주류 체제로 만들려 하지만 친문 적자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생존 대 생존의 투쟁이다. 총선 후 당권까지 염두에 둔 싸움이다 보니 ‘공천 내전’이 불가피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이던 2016년 총선 폭망 위기에 처하자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통한 ‘차도살인’으로 위기에서 탈출했지만 이 대표는 자신이 직접 칼자루를 쥐려 하니 자기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형국이기도 하다. 당 밖 세력들과의 비례의석, 지역구 조정 문제까지 첩첩산중이다.
현재로선 한 위원장보다 야권 통합까지 이뤄내야 하는 이 대표가 더 힘든 처지에 봉착해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 한동훈 대 이재명의 대결로 전환되면서 겉으론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선 연장전, 혹은 정권심판론이 다소 희미해진 듯 보이지만 착시일 수 있다.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태로 총선까지 갈지, 극적 봉합의 길을 찾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결국 한 위원장과 이 대표의 리더십 대결이다. 한 위원장은 정계 데뷔 후 50여 일 동안 여론의 주목을 끌고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는 데는 성공한 걸로 보인다. 다만 정치 초보 단계의 자신감이 지나치면 본선에서 어떤 실책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좀 더 진중한 리더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 대표가 극렬 지지층에 기댈수록 민주당의 중도 확장은 난망이다. 자기희생 없이 장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총선은 50일 남짓 남았다. 역대 총선은 한 달 앞두고도 분위기가 확 바뀌곤 했다. 누가 국민 앞에 더 겸허하고 덜 오만하고, 또 유능하고 비전이 있을까. 누가 사리(私利) 대신 대의(大義)를 부여잡고 줏대 있게 밀고 나갈 것인가. 그 과정에서 둘의 정치 그릇의 크기도 적나라하게 비교될 것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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