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운]문화재 환수, 정치 아닌 전문가 손에 맡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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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독특한 고려 사리구는 국내외를 통틀어 전례가 거의 없습니다."
약 10년 전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소장된 14세기 고려시대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舍利具·사리를 보관하는 용기)'를 직접 조사한 금속유물 전문가는 "미술관이 돌려주지 않으면 돈을 주고서라도 가져와야 할 국보급 문화유산"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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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 전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소장된 14세기 고려시대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舍利具·사리를 보관하는 용기)’를 직접 조사한 금속유물 전문가는 “미술관이 돌려주지 않으면 돈을 주고서라도 가져와야 할 국보급 문화유산”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고려 거란전쟁과 몽골 침략을 거치며 현존하는 고려 금속공예품은 손에 꼽힐 정도로 희귀하다. 그런데 보스턴미술관 소장 고려 사리구는 라마교 불탑 모양의 사리구 안에 팔각지붕 형태의 소형 사리구 5기가 들어 있는 독특한 양식에 금속 세공 기법도 정교해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사리만 환수해 조계종에 기증하고, 사리구는 환수가 아닌 임시 대여하기로 보스턴미술관과 합의했다. 10년 넘게 사리구와 사리의 일괄 환수를 추진해 온 문화재청이 돌연 방침을 바꾼 것이다. 앞서 2009년 보스턴미술관은 계속된 한국의 환수 요구에 사리만 반환할 수 있다고 제안했으나, 당시 문화재청은 “사리와 사리구는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유물이기에 사리만 받을 순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문화재청의 이런 일괄 환수 방침이 갑자기 바뀐 건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 방미 이후다. 당시 동행했던 김건희 여사가 보스턴미술관장을 만나 사리구 반환 논의 재개를 요청하면서 문화재청과 조계종이 분리 환수를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사리구 대신 사리만 가져가라는 미술관의 제안을 정부가 받아들인 형국이어서 향후 사리구 반환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도난품이라는 물증이 없는 한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환수보다는 현지에서 전시가 국위 선양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고려 사리구를 비롯한 일제강점기 국외 유출 문화재의 상당수가 도굴품 혹은 도난품이라는 점에서 국위 선양을 운운하는 건 너무 한가한 소리라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해 보스턴미술관이 1939년 사리구를 사들인 일본 골동품상 야마나카 상회는 조선에서 수많은 도굴·도난품을 사들여 미국, 영국, 프랑스 등으로 거래한 전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2014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허미티지 박물관에서 환수한 조선 불화 ‘석가삼존도’는 일제강점기 국내 사찰에서 무참히 뜯겨 나간 뒤 야마나카 상회를 통해 미국으로 팔려 나갔다.
일본의 도자기 전문가 고야마 후지오는 자신의 책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통감으로 취임한 후 발굴된 고려 자기 총수는 몇십만이라고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썼다. 말이 발굴이지, 임자 없는 무덤에서 도굴해 불법으로 반출한 것이다.
고려 사리구의 분리 환수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대통령실과 문화재청이 보스턴미술관과 협상하기에 앞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는지 의문이다.
과거 정치가 문화재 영역에 개입한 사례들은 결과가 좋지 못했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 당시 박 대통령이 경북 경주시 월성 발굴 현장을 이례적으로 방문한 직후 발굴이 속도전으로 이뤄져 고고학계의 반발을 샀다. 문재인 정부 때는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가야사 복원 사업’이 추진됐지만, 지자체 간 예산 따먹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문화재 영역만큼은 전문가 주도로 일이 추진돼야 뒤탈이 없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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