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위기 속 ‘다시-잇기’를 고민하다
한국 여성학 최대의 지적 광장인 한국여성학회(이하 여성학회)가 2024년으로 설립 40돌을 맞았다. 학계에서도 까다롭기로 이름난 가입 문턱을 통과한 학회원만 1천 명이 넘고, 봄·가을 학술대회와 여름캠프를 비롯해 크고 작은 행사를 꾸준히 여는 활발한 학회가 됐다. 규모가 크기도 하려니와 현실과 맞닿은 예민한 주제를 거침없이 논의하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한국 여성학은 디지털기술 발전과 페미니즘 대중화에 힘입어 다양하게 변화했다. 이를 ‘발전’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 한국 여성학은 ‘발전’에 관한 한 유보적이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위기, 계급 격차, 각종 재난 가운데 전환의 물꼬를 트는 데 더 관심을 가진다.
40년, 2024년 여성학회는 회장으로 파격적인 인물을 선출했다. 50대 중반으로 상대적으로 젊으면서도 ‘여성학과’ ‘사회학과’ 같은 전통적인 학과나 협동과정이 아닌 연구소 소속 회장을 탄생시켰다. 이현재 신임 한국여성학회 회장(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은 “후학들과 연계돼야 하는데 학과라는 터전이 없는 사람에게 회장직을 맡겨 부담이 크다”고 했다. 기우였다. 그가 회장이 된 뒤 동료 학자와 연구활동가들이 두 팔 걷고 나섰다. 이 회장은 여성철학 전문가로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에서 악셀 호네트의 지도를 받아 인정이론과 페미니즘을 접목한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설 연휴 직후인 2024년 2월1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내 연구실을 찾았다.
40년 뒤 마주한 이상한 괴물
―소감이 어떤가.
“40년 행사와 더불어 1년을 이끌어가야 해서 부담이 있다. 운영위원회와 이사진을 구성하는 데 걱정과 달리 다들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감사한다. 여성학회는 이론과 실천이 맞닿는 곳이라 다들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있다.”
―타 학회와 다른 점이 있을 듯하다.
“이렇게 행사가 많은 학회도 드물 것이다. 춘·추계 학술대회와 부정기적 포럼이 있다. 후학을 직접 연계하기 위한 여름캠프도 크게 열린다. 최근 10년 정도 대학생,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일반인, 활동가―통칭해 ‘연구활동가’라고 한다―가 모두 여성학회에 참여해왔다. 여성학회는 이론과 실천이 연결되고 학문 후속 세대, 신진 연구활동가와 기존 학자를 연결하는 적극적인 광장이다. 많은 이가 여성학회에서 자기 삶과 연관성이 있다는 절박성을 갖고 활동한다.”
―학회 40년간의 성과를 말해달라.
“첫 10년은 싹을 틔우는 단계였다. 1985년 1회 학술대회 제목은 ‘3대 종교 여성관’이었다. 여성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분야였다. 단순히 서구 여성학을 들여오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성과 여성학을 접목하려는 고민으로 볼 수 있다. 그 뒤 ‘한국 사회와 가부장제’(1986년), ‘교육과 성’(1987년) ‘여성과 일’(1988년), ‘성 연구’(1989년) 등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그다음 20년인 2014년까지는 심화와 확장 시기였다. 2005년 여성학회는 아시아 최초로 세계여성학대회를 열었고, 논문 2087편이 발표됐다. 이 시기에 성노동과 성매매에 관한 예민하고도 뜨거운 논쟁이 있었고, 성소수자 위치에 대한 논쟁이 가능해졌다. 최근 10년은 백래시(반격)와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페미니즘 리부트(재시동)’에 몰두한 시기다. 여성의 약진을 말하지만 성별 임금은 100:64(남성:여성)에 머문다. 학계 페미니즘 담론이 문화분석에 치중하며 정신분석 담론,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씨름할 때 디지털 세계에 살게 된 여성들은 ‘여성혐오’라는 이상한 괴물을 마주하게 됐다. 학계 담론이 디지털 가부장제로의 진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지만 그만큼 큰 과제를 안았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여성학회장을 수행하기에 어려운 때 같다.
“시절이 좋지 않다. 대통령선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나오더니 최근에는 지역 여성재단에서 ‘여성’이란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 시민들이 ‘여성’ 명칭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뺀다는 거다. 이른바 ‘백래시’의 시절이다. ‘반(反)페미니즘적 반격은 여성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나왔다’고 수전 팔루디가 책 <백래시>에 쓴 것처럼, 2015년부터 불어닥친 ‘페미니즘 리부트’ 흐름은 결실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공포에 찬 반격과 마주하는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시대에 맞게 페미니즘의 담론과 실천을 점검하고 새로운 연결과 감수성을 갖는 일이 필요하다.”
―2024년 학회는 어떤 사업을 계획 중인가.
“춘계학술대회는 ‘한국여성학회 40+’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성공회대에서 진행한다. 한국여성학 40년 역사와 성찰을 이야기하는 ‘백 투 더 퓨처’ 세션을 준비 중이다. 지난 10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들을 살펴보는 세션과 ‘생태-돌봄’으로의 전환 시기를 이야기하는 특별 세션도 있다. 이 내용을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추계학술대회는 ‘신유물론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다. 시대 진단과 대안 마련이 시급한 때, 포스트휴먼 페미니즘과 신유물론 페미니즘을 제대로 살펴보면서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포스트휴먼 논의와 관련해 로지 브라이도티, 캐런 버라드 등 해외 석학 초청 강연을 기획 중이다. 그 밖에 지역 여성학의 거점 중 하나인 계명대 여성연구소와 함께 국제포럼을 공동 주최할 계획이다.”
정치가 악용하는 페미니즘
한국에서 여성주의 또는 페미니즘이라는 이슈는 지난 100년 동안 시종일관 뜨거웠고, 식지 않았다. 투쟁적인 여성 작가·운동가는 나혜석처럼 행려병자가 되어 홀로 죽거나, 김일엽처럼 비구니가 되어 속세를 떠나거나, (페미니스트는 아니었지만) 전혜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 비극적 최후를 맞는 것이 공식처럼 보였다. 살아남은 페미니스트는 다수가 중산층 계급이라며 사치녀, 허영녀, 된장녀, 김치녀라는 범주로 묶였다. 무산계급 여성노동자가 동맹파업을 할 땐 ‘공순이’라고 똥물 세례를 받았다. 이른바 진보 진영 안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폭로하면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며 독하게 비난했다. 2020년대까지도 정치 영역에서 페미니즘은 ‘동네북’이 됐다. 지난 대선에서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은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페이스북), “페미니즘이란 것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지”(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강연)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정치적인 것이지만, 정치권이 페미니즘을 이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정치권에서 페미니즘을 갈라치기의 도구로 곧잘 쓰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젠더’는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회 근저에 깔린 경쟁과 불안은 무시한 채, 그 표면적 현상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여성가족부를 없애겠다면서도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를 당정이 추진하거나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 같은 인물을 영입해 성폭력 이슈도 쥐겠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인구정책이나 돌봄정책은 부문 정책으로 머물 뿐 새로운 사회관계의 재구성을 위한 정치적 논의로 나아가지 않는다. 민주당은 주요 정치인들의 ‘미투’ 이후 페미니즘 관련 이슈에 입을 닫고 불편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운동의 성과로 정계에 입문한 여성정치인들도 자기 생존을 위해 페미니즘과 거리를 둘 때가 있다.
“여성정치가 벌써 실패인가? 실패라고 해야 하는가? 고민이 된다. 최근 몇 년간 여성 신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들은 정치 경력이 짧다보니 경험 미숙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조금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신경아 교수(한림대 사회학·제35대 한국여성학회 회장) 말처럼 ‘올드보이 네트워크’에 여성이 끼기 어렵다는 점도 있고, 여성혐오와 인종혐오를 결합한 도널드 트럼프의 증오정치를 활용한 우파 포퓰리즘이 미국에서 득세한 것처럼 한국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진다고 본다. 또 선배인 윗세대 여성정치인들은 너무 기존 정치권에 융화됐을 것이고.”
―‘여자도 군대 가라’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또 나왔다.
“최근 정치권의 목소리는 청년 남성의 ‘공정성’ 담론에 응답한 것이다. 청년 남성들은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가야 하기 때문에 여성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고 페미니스트는 이기적 집단이라고 공격한다. 지금 이 세계 안에서는 성공하는 삶이 유일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군대에 붙잡혀 보낸 황금 같은 시기는 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바라던 이성애 연애를 하기 위한 기회의 평등을 빼앗긴다는 사고가 있다. 하도 역차별이라고 하니까 일부 여성청년은 그냥 여성도 군대에 똑같이 가자고 대답한다. 그러나 기존 틀을 그대로 둔 채 진행되는 이런 식의 대응과 맞대응에는 정의로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정치권도 젠더를 이용해 갈등을 조장할 게 아니라, 병역 의무를 시민 의무로 전환해 사회적 돌봄을 재사유하는 등 다른 정책적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돌봄 의제도 정치적 과제인데.
“돌봄은 모든 시민의 과제가 돼야 한다. 육아휴직 남성 의무화 등은 굉장히 중요한 정책이다. 여자와 남자가 동등해진다는 의미를 넘어, 돌봄을 모든 시민의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저임금의 여성노동을 동원해 늘봄학교를 운영하거나 제3세계 여성에게 시민권은 부여하지 않은 채 저임금의 돌봄노동을 대신하게 하는 방식은 누군가의 희생을 볼모 삼아 돌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모든 부문의 정책에서 돌봄을 중심에 둬야 하며, 돌봄을 시민 모두의 것으로 사유하면서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치권의 핫이슈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이다. 이를 여성혐오라고 보는 지적도 나오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을 이용해 여성이 벗은 채 누워 있는 그림을 그린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더러운 잠’ 사건이다. 비판하려는 사건보다 여성의 벗겨진 몸이 갖는 부수적 효과가 더 커 보였다.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것보다 여성혐오 측면이 더 컸다. 김 여사의 경우, 명품가방을 받은 사실을 비판하는 것을 ‘미소지니’(여성혐오)라고만 얘기해선 안 된다. 명품가방을 받은 사실은 문제이니까. 그러나 사건이 아니라 대통령 부인은 여자이기 때문에 사치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관념을 더 강화하는 방식의 비판이어서는 곤란하다. 나아가 이 기회에 대통령 부인은 무엇을 하는 자리고, 그 위치는 어떠한지 사회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으론 안 된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각자 손에 디지털 매체를 쥐었고 몸이라는 실체와 관념 자체가 변화했다. 모든 사람이 24시간 컴퓨터를 갖고 매체를 보는 시대가 됐다. 디지털성폭력과 그루밍(길들이기)은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더욱 정교한 폭력 구조를 만들었다. 가부장제는 기계문명과 함께 변화했다. 지난 10년 한국의 여성주의는 밖에서 백래시에 시달리고 안으로 혼돈과 갈등에 몸살을 앓았다. 정교하게 이론을 발전시켜온 학계의 페미니즘과 디지털 공간을 기반으로 한 대중의 페미니즘은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했다.
―최근 10년 디지털 페미니즘의 변화 속도가 빨랐다.
“그간 여성학회도 기존 여성학 담론과 온라인 현장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시급하게 했지만 충분히 성공하진 않았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감각을 지녔지만 연구자들은 불법촬영, 가스라이팅, 디지털 성폭력 등 사태의 심각성을 절실히 느끼기 어려웠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포스트 담론이 유행하고 정신분석 이론을 연구했지만 너무 어려웠고 일상의 이슈와 연결하는 것이 조금 약했다고 본다. 특히 디지털 세계의 여성혐오와 고급화하고 복잡해진 여성학 이론의 간극이 충분히 메워지지는 않았다.”
―이른바 ‘영영페미니스트’가 여성학과 여성주의를 너무 몰랐던 측면도 있지 않나.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의 페미니즘을 구성해간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일간베스트저장소나 디시인사이드 등 남성 중심 사이트에서 여성혐오 표현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말이 심해지니까 여성들이 반격하기 시작했고, 그 반격의 언어를 페미니즘에서 찾기 시작했다. 사회연결망서비스에서 ‘#나는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페미니스트 운동이 벌어진 것은 2015년부터였다. 일부는 자신을 자생적 페미니스트로 규정했고 여기서 기존 여성주의 담론과의 연결은 충분히 시도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워마드’가 생겨나고 모두가 당황했다.
“2015년까지는 사이트 ‘메갈리아’가 여성혐오 표현에 맞선 ‘미러링’의 주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메갈리아에서 워마드가 갈라져 나갔고 난민과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터프’(TERF·트랜스젠더를 배제한 래디컬 페미니스트)까지 생겼다. 그 뒤 현장에서 고민을 시작한 이 가운데 대학에 들어가 여성학 공부를 심화한 사람도 있고, 학계 여성학과는 거리를 두며 바깥에서 활동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터프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은 분명하다. 페미니즘은 소수자와의 연대가 그 핵심이었다.”
―그럼에도 학계가 학계와 거리를 둔 젊은 페미니스트들과 접속하려 했다.
“학계 연구자, 교차 페미니스트(성·인종·계급 등 억압이 교차하는 점을 중시), 다양한 래디컬 페미니스트(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을 강조하는 입장 등)가 서너 번 정도 포럼을 열었지만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기는 부족했다. 특히 트랜스젠더 관련 논쟁을 하면서 너무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겼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면서 배제되고 존재가 부정당하면서 상처받는 경험을 하고, 양쪽에서 그 경험을 아직 트라우마로 지닌 사람들이 있다. 지금 생각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 경험이었는데…(울컥) 애정은 있지만 같이할 수 없는 사건이 계속됐다. 마주하기 힘든 경험이었지만 학계 안에서 ‘얼굴조차 맞대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질타도 나왔다.”
―‘성공지향 페미니스트’도 새롭게 탄생했다.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스트다. 기존 여성학의 지향과는 다르게 이른바 ‘야망××’라고 스스로 명명하는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흐름이 등장했다. 미국에서도 최고경영자(CEO)나 유명인(셀러브리티)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페미니스트가 있었다. 그동안 페미니즘이 무엇을 얘기해왔는지와 무관하게 ‘계보’를 뚝 끊는 현상이다. 이분법적 젠더 질서에서 희생된 약자들의 연대가 페미니즘의 지향 아닌가. 페미니즘이 왜 비건, 동물권, 장애학과 연결되겠나. 소수자로서 학문적 방법론을 주도한 페미니즘을 무시한 채 ‘여성’만을 주체로 하여 ‘남성’과 똑같이 성공하는 데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건 약자들의 연대로서 페미니즘과 아무 관련이 없다.”
―윤정옥 초대 여성학회 회장도 ‘여성인적자원 개발론’ 선상에서 여성학회의 창립을 선언했는데.
“당시 현실의 문제에 기반한 것이다. ‘여성주의 리더십’과 관련된 논의를 다 부정할 수 없다. 당시에도 ‘우리 여성학은 단지 여성만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분석하는 학문’이란 얘기를 분명히 못박았다. 그 뒤 여성학은 여성노동자와 연대하면서 저변을 확대했고 전략 전술 간의 균형점을 잡지 못한 실수가 곳곳에 있긴 했지만 큰 방향에서 갈 길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이상만 추구할 땐 ‘페미니즘 리부트’처럼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에 곧장 답변을 못 준다고 대중이 생각할 수 있다. 지지기반이 없는 담론이 어떻게 저변으로 확대될 수 있나. 이론과 실천의 균형점을 예술적으로 찾아야 한다.”
기술 격변 시대, 새 어휘 고민하는 여성주의
―여성학회 자체가 현실참여적이었다.
“최근 2~3년 동안 여성학회는 두 번이나 성명을 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촉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 표명에 적극적 환영과 지지를 보낸 성명과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성명이었다. 이것이 모두 이상과 현실의 균형점을 찾고 실천으로서 여성학의 존재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너무 뒤로 가고 있으니까. 학술적 연구와 동시에 실천적으로 현실에 개입해야 한다.”
―이런 적극적 행동을 원로들이 불편해하지 않나.
“‘좀 살살 하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첨예한 논쟁을 피하지 말라고 독려한다. 모든 여성이 받는 억압과 차별은 똑같지 않기 때문에 위치성을 고민하고 다른 입장의 페미니스트도 맞대면해야 한다고 한다. 서로 입장이 다르고 논쟁이 첨예화했을 때도 선생님들은 ‘그렇게 해서 운동하겠니?’라고 했다. 여성학회는 학문적 담론, 자생적 운동 모두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대중적 페미니즘 확산 이후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정작 학교 안에서는 페미니즘을 공부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들었다.
“지금 대학에는 인공지능(AI) 물결이 휩쓸면서 인문사회과학계 내부에 위기의식이 있다. 여성학 같은 소수자 학문을 돌볼 겨를이 없다. 실제 많은 여성이 여성학을 공부하려 하고 여성철학을 하고 싶어 하지만 여의치 않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대학에서는 기술과학에서 인문사회학을 횡단하는 젠더인문학 등이 구축돼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기회가 너무 적다. 이화여대 여성학과는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지도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들었다. 계명대 여성학과에는 연구활동가가 다수 입학해 글로컬(Glocal·글로벌과 지역의 합성어) 페미니즘의 산실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교수는 현재 1명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성학을 배우려는 학생들은 대학 밖의 인문학 프로그램이나 독서모임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디지털 공간의 얄팍한 정보로 여성주의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깊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때일수록 대학에서 더욱 다양한 담론적 지형을 살피고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하긴 대학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형편이다.
“인문사회학계가 (최근 정치사회적 지형에서) 비판의 칼날이라도 언제 한번 날렸던가 싶다. 기존 학과 체계로 살아남는 데 전전긍긍한 것 아닌가 싶고. 교육부는 ‘디지털’ 흐름을 인문사회학이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충분한 숙고와 연구 아래 제대로 된 인문사회융복합 학문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 급박한 상황이 되자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를 교과목명에 넣은 과목을 띄우기에 급급하다. 인문사회과학계의 원래 학문 연구 목적인 비판과 대안 제시의 길을 잃은 게 아닌지 우려된다. 결국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 대학을 구조조정하는 교육부는 입학 뒤 전공을 정하는 ‘무전공’ 확대 정책을 내놨다. 고소득이 보장되는 특정 학과로의 쏠림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젠더융복합 등 진정한 의미로 문과와 이과를 횡단하는 학문 분야가 설 자리가 없다. 소수자 학문, 진정한 융복합의 학문적 연구 기회를 잃어가는 것이다.”
―여성학회가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돌봄 전환과 관련된 이론적 논의는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이나 신유물론 페미니즘이라는 담론과 함께 심화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술문명에 따른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한 위기가 본격화하는 상황이기에 여성주의는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새 어휘들을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관계를 재모색할 것인가, 어떻게 다시-잇기가 가능한 것인가를 모색하는 일이 큰 줄기가 될 것이다. 이 담론에 귀 기울여 배제 없는 관계를 생각하면서 해답을 찾아가려 노력해야 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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