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놓고 대기업 노사 곳곳 갈등…“지급기준 공개” 요구도

김상범·이진주 기자 2024. 2. 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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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적자 책임 공방…창사 후 첫 파업 가능성
‘역대급 실적’ 현대차·기아도 신경전…LG엔솔 등은 트럭 시위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적자가 아니라 흑자를 봤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최고경영자(CEO) 판단 미스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겨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그 피해를 왜 직원들이 떠안아야 하는가.”(삼성전자 노동조합 측)

“DS(반도체사업)부문이 대규모 적자인 상황에서, 흑자전환 등 경영 정상화가 우선이다.”(사측)

지난달 30일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의 3차 임금교섭 현장.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을 비롯한 노사 교섭위원들은 ‘격려금’ 지급을 놓고 맞붙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지난해분 초과이익성과급(OPI)은 ‘0원’이다. 매년 OPI로 연봉의 50% 수준을 받아온 직원들로서는 불만이 가득했다. 반면 사측은 추가 보너스를 지급할 여력이 없다고 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조5400억원의 흑자를 봤지만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그 가운데 DS부문은 15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18일 산업계를 보면, ‘성과급’을 놓고 대기업 노사가 곳곳에서 부딪치고 있다. 매년 초에 전년도 실적을 바탕으로 지급하는 성과급을 두고, 영업 실적이 부진한 기업은 물론이고 괜찮은 실적을 올린 기업까지 노사가 신경전을 벌이는 풍경이 빚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첫 파업’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노사 양측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국삼성노조 조합원 숫자는 지난해 말 9000명 수준이었는데, 성과급 불만 때문에 2개월 만에 2배 수준인 1만7000여명으로 늘었다.

기업의 성과가 좋아도 성과급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터져 나온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올린 현대자동차와 기아도 노조가 사측에 특별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면서 노사 간 공방을 예고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합산 매출 260조원, 영업이익 26조7348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최근 공문을 통해 회사에 최대 실적에 따른 공정 분배를 위한 특별성과급 지급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특별성과급과 관련해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트럭 시위’가 대기업 직원들의 임금 불만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파업 같은 단체행동에 수반하는 큰 부담을 피하면서 동시에 직원 개개인의 익명성을 유지한 채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어서다.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 1700여명이 익명 모금을 통해 트럭을 한 대 빌렸고, 이를 이용해 본사가 위치한 서울 여의도 일대를 돌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트럭에 실린 전광판에는 “피와 땀에 부합하는 성과체계 공개하라” 같은 구호를 띄웠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이익은 2조1000억원 규모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성과급 규모는 평균 362%로 전년 870% 대비 절반 이상 줄었다.

한화큐셀 직원들도 트럭 시위를 개시했다. 서울 중구 한화빌딩 근처에 나타난 트럭 전광판에는 “성과급 지급 방식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한다”는 문구가 쓰였다. 지난해 한화큐셀은 연봉의 14% 수준을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전년 30% 대비 절반 넘게 떨어진 수치다. 전국삼성노조 집행부도 지난 14일 조합원들과의 소통 방송에서 “전광판이 달린 1t 트럭을 구매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열심히 일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성과급이 갈등의 불씨가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대부분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본급을 성과급으로 보전해주는 임금구조를 따르고 있다 보니, 실적이 부진한 연도에는 노동자가 받아드는 실질임금이 눈에 띄게 감소하곤 한다. 아울러 같은 회사 안에서도 부문·사업별 성과급 지급률이 다른 경우 직원들의 박탈감을 자극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성과급 지급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도 빗발친다. 지난달부터 사측과 임금교섭 중인 네이버 노조도 성과급 산정·배분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미국 등 해외 선진국은 연봉 계약이 대부분이라 기업의 성과가 발생해도 개인적으로 나누다 보니 (외부로 표출되는) 갈등이 적지만, 한국은 (노사가) 집단적으로 성과를 나누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급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며 “룰 베이스의 성과급 지급이 진행돼야 하고 (직원) 평가기준도 보다 명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범·이진주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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