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추모 시민까지 체포…“러 반체제 운동의 종말”
모스크바 추모객 “끔찍한 죽음…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내달 대선 통해 종신집권 노리는 푸틴의 권력 더 공고화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시베리아 감옥에서 돌연 사망하면서 러시아에서 반체제 운동은 끝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적들이 대부분 수감돼 있거나 의문사한 상황에서 오는 3월 대선을 통해 종신집권을 노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은 17일 모스크바 루뱐카 광장의 구소련 시절 굴라그(강제수용소)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비에 장미와 카네이션 수십 송이가 놓여 있다고 전했다. 나발니를 애도하는 시민들이 놓고 간 꽃이다. 추모객 블라디미르 니키틴(36)은 로이터통신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광장의 경찰을 피해 지하도로 이동한 뒤 “나발니의 죽음은 끔찍하다.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고 말했다.
반면 밤을 즐기기 위해 모스크바 유흥가로 나온 러시아 젊은이들은 슬픈 기색이 없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올가 카자코바는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당신들(서방 매체)은 나발니를 실제와 다르게 전하고 있다”며 “서방은 우리와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푸틴 대통령 재집권 이후 저명한 야권 지도자들이 사망하거나 망명한 상황에서 나발니는 ‘반푸틴 운동’의 상징이었다. 나발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러시아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의 부패를 폭로하면서 광범위한 정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지자들을 통해 대규모 거리 시위를 조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런 나발니의 죽음은 푸틴 대통령에게 저항하고 있는 러시아 야권과 진보적 반전 활동가들에게 큰 타격이라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발니의 죽음은 러시아에서 정치적 반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는 권위주의적 관리 민주주의에서 전체주의적 정권으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다.
전쟁 이전만 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은 정교회를 내세워 국가와 가족 등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고 정적을 탄압하는 등 권위주의 행보를 강화했지만 반정부 시위 활동은 어느 정도 용인해왔다. 나발니도 이 시기에는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조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 대통령은 전쟁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불허하고 있다. 독립언론에는 등록을 취소하는 등 재갈을 물렸고 평화를 지지하는 예술가들은 ‘외국 대리인’으로 낙인찍어 처벌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의 정부 비판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한 한 72세 여성은 최근 5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 결과 2022년 4월 이후 러시아에서 대규모 시위를 보기는 어려워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나발니마저 숨지면서 반푸틴 운동의 구심점은 완전히 사라졌다.
러시아 법원은 앞서 나발니가 설립한 비정부기구 반부패재단과 그 후신인 시민권리보호재단, 전국적 사회운동 조직인 나발니본부 등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하고 폐쇄와 활동 금지를 명령했다. 나발니를 대리했던 변호사 중 3명도 현재 극단주의 단체 연루 혐의로 감옥에 있다. 핵심 측근은 2022년 5월 해외로 망명했다.
나발니의 죽음으로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이들은 해외로 도피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거나 사망할 우려가 추가됐다. 반푸틴 활동이 ‘서방 스파이’에 의한 반국가 행위라는 선전은 더 강화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철권통치는 더욱 엄혹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3월 대선에서 승리하고 6년 뒤 연임에도 성공하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러시아 정치철학자 그레그 유딘은 나발니의 죽음 이후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인들은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만, 이제 막 황혼이 내려오기 시작한 것 같다. 태양은 사라졌다”고 평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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