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반부패재단’ 설립해 주목…기내 독극물 테러, 독일서 치료 후 귀국해 투옥
지난 16일(현지시간)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사망한 알렉세이 나발니(47)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혀온 야권 지도자이다.
나발니는 1976년 모스크바 인근에서 태어나 법학과 금융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 생활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작은 정부’를 내세우는 자유주의 정당에서, 2000년대 후반에는 민족주의 정당에서 활동했다.
그는 2011년 설립한 ‘반부패재단’을 통해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나발니는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해 2위를 차지했고, 2015년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던 야권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가 괴한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 더욱 많은 지지를 받게 됐다. 나발니는 2018년 대선에 출마해 푸틴 대통령에게 도전하려 했으나 과거 지방정부 고문 시절의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전력 때문에 후보 등록을 거부당했다.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과 가족,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까지 겨냥한 반부패 폭로 활동을 이어갔다.
나발니는 2020년 8월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검사 결과 옛 소련 시절 개발된 군사용 신경작용제 노비촉 계열 독극물이 검출돼 푸틴 대통령이 배후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나발니는 독일로 이송돼 5개월간 치료를 받은 뒤 2021년 1월 러시아로 귀국했으나 즉시 당국에 체포됐다. 그는 횡령, 극단주의 선동, 사기 등 혐의로 3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나발니는 모스크바에서 약 235㎞ 떨어진 멜레코보에 있는 제6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해 12월 추위 등 혹독한 환경 때문에 ‘북극의 늑대’로 불리는 제3교도소로 이감됐다. 그는 교도소에서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는 등 수감 중에도 정권 비판을 이어갔다.
나발니는 변호사 등을 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관리했다. 마지막 게시물은 사망 이틀 전인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에게 바치는 메시지였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우리가 눈보라와 수천㎞의 거리로 떨어져 있지만 나는 당신이 매 순간 내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썼다.
나발니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당국은 여론이 술렁일 것을 우려해 집회 단속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이런 경고에도 나발니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과거 정치탄압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모스크바의 ‘추모의벽’ 등 상징물들 앞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꽃들이 수북이 쌓였다.
추모를 하다 경찰에 붙잡히는 사례도 속출했다. 러시아 시민단체 ‘OVD-info’에 따르면 나발니 사망 이후 러시아 32개 도시에서 400명이 넘는 시민이 추모집회 중에 체포됐다. 이는 2022년 9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강제동원 반대 시위에서 1300여명이 체포된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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