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시기 틀리고, 안전비용 늘고…지자체에 날아든 기후변화 청구서
변화된 기후는 우리에게 얼마를 청구하고 있을까. 기후변화로 인해 행정업무가 크게 변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지불해야 하는 행정비용도 사회 전역에서 증가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일선 행정의 어려움은 자연재해로 인한 비용 증가와 지역축제 취소에 따른 지역경제 위축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비용에 대한 추계조차 하지 않고, 지자체들은 탄소를 덜 배출하도록 예산 내역을 점검하는 ‘기후예산제’를 운영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기후변화가 우리 사회에 추가로 청구하는 총비용을 측정해야 더 효과적인 환경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8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상당수 지자체들은 높아지는 겨울 기온에 봄철 축제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지난 14일 전국 낮 최고기온이 20도를 웃돌면서 2월 기온으로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의 대표적 봄철 축제 ‘여의도 봄꽃축제’를 주관하는 영등포구는 올해 축제 일정을 지난해보다 8일 앞당긴 오는 3월27일로 잠정 결정했다. 송파구도 축제 일정을 작년보다 닷새 빨리 잡았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2월 초에 행사 일정을 확정했는데 요즘은 날씨 불확실성이 크다”며 “3월 초쯤 날씨를 보면서 일정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0~28일 열릴 예정이던 경북 안동시 암산얼음축제는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으로 취소됐다. 암산유원지 얼음 두께가 25㎝는 돼야 하는데 4.5㎝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축제를 개최한 게 3회뿐이다.
강원 인제군도 빙어축제를 취소해야 했고, 철원군 한탄강 얼음트레킹 축제는 꽁꽁 언 강 위를 걷는 대신 부표 위를 걷는 행사로 대체됐다.
축제 취소가 농가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발생한다. 충북 음성군은 지난해 갑산체리마을 축제를 열지 못했다. 봄철 개화기 냉해, 여름철 수해로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못해 수확량이 전년 대비 10%에 불과해서다.
이 같은 농가 피해는 막대한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보험료·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농작물재해보험이 대표적이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냉해·집중호우·태풍 등 피해를 입은 농가에 지급한 보험금은 1조1749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2020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보험 손해율도 급증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풍수해 등 자연재해 피해를 보상하는 보험도 같은 추세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국내 보험사가 지급한 자연재난 보험금은 1조2556억원으로 2017년에 비해 지급액이 3배 이상 늘었다.
방재공무원의 비상대기 근무와 업무량 증가도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상대기를 해야 하는 재해 단계가 과거보다 훨씬 자주 발령되고 있다”고 했다.
행정 현장에서는 통상적 업무에 소요되는 예산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충 방제나 사회간접자본(SOC) 점검 업무 등이다. 상하수도, 가스관, 통신설비 등 복잡하게 얽힌 서울시 지하 설비들도 해빙기 안전점검 업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겨울철 급격한 기온 상승은 지반 물러짐 현상이나 매설관 이음매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불하게 될 비용이 이처럼 증가하지만 이 비용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어림잡은 예산조차 산출되어 있지 않다. 한국은행 금융안정국 지속가능성장연구팀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보고서는 국내 연 강수량이 1m 증가하면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2.54% 하락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독일·프랑스·미국·영국 등은 탄소의 단위배출당 경제·사회·환경적 손실을 비용으로 추산한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발표하고 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탄소를 감축하는 데 비용이 든다는 프레임은 있지만 탄소 감축을 하지 않으면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며 “비용을 추계하면 생각보다 우리 사회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경선·김원진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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