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미래가 현실을 좌우?

기자 2024. 2. 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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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퓨처>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공상과학 영화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상상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화적 상상으로 그냥 즐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어이없는 현실이 있다.

KBS 제작1본부장은 <다큐 인사이트>에서 4월18일 방송 예정했던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 방송을 6월경으로 연기하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KBS 안팎은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런데 연기 지시 이유 중 하나가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올해 총선은 4월10일 치러진다. 4월18일 세월호 특집을 본 시청자들이 4월10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투표로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의 결과다. <다큐 인사이트> 예고편과 보도자료도 통상 방영 이틀 전 나간다고 하니 <다큐 인사이트> 제작 과정이 영향을 미칠 리도 만무하다. 결국 혹여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과잉충성’이 빚은 소극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KBS, MBC에서는 낙하산 사장의 영향으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방송이 불방되거나 당시 정권이 원하는 방송을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KBS의 ‘훈장’ 시리즈 불방 사건이다. 역대 70여만건의 서훈 명단을 분석해 간첩 조작을 했던 수사 관련자나 친일 행위자에게 훈장을 수여한 사례와 그 뒷이야기를 다루는 것이었다. 이게 박정희 정권에서 행해진 일들을 포함하니 당시 정권에 불편해서 방송을 막은 것이다. 일부 내용은 <시사기획 창>을 통해 내용이 변경되어 나갔지만, 친일 관련 내용은 결국 불방시켰다. 일제강점기라는 불행을 겪은 대한민국에서 친일행위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한 반사회적인 현상을 공영방송 KBS가 다루지 못하는 비극적인 사례다. 이후 JTBC에서 간첩 조작 수사 관련 서훈 부분을 먼저 방송했다. KBS에서 ‘훈장’을 준비하던 최문호 PD는 퇴사하여 뉴스타파로 옮기고 ‘훈장과 권력 4부작’을 제작했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은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획득했다.

정권에 불편한 방송을 연기시키려는 KBS는 이미 대통령 대담 방송으로 비판받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퇴 논란 등 현안 관련 질의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축소하려 했다는 것이다. 대담을 한 박장범 앵커는 외국 언론에선 디올백이라 한 것을 굳이 일부 언론의 표현을 찾아 파우치, 조그마한 백이라고 표현해 비판을 자초했고, 대통령에게 변명할 기회만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KBS가 ‘윤비어천가’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 KBS는 대담 방송의 시청률이 높았다는 이유로 설날 재방송을 했다. 설날 민심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였냐는 의문이 나올 만하다. 미래의 방송이 현재의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월호라는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극복하려는 프로그램은 막으면서, 대통령에게 변명의 기회만 제공했다고 비판받는 프로그램은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함에도 재방송을 결정했다. 정작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주체는 누구인가?

대통령 의중이 반영됐다고 의심되는 박민 사장 취임 이후 KBS는 망가져가고 있다. 단협에 규정된 국장임명동의제를 무시하고 시사·보도국장을 임명하는 독단을 저질렀다. 다수의 기자·PD를 비제작부서인 수신료국으로 전출시켰다. 그리고 편성 논란을 야기했다. 총선 이후에 방송될 세월호 특집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미래가 현실을 좌우한다는 억지 논리로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는 현실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박민 사장은 X맨이 아닐까? 현명한 유권자들이 판정해줄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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