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이재명, ‘변방의 장수’ 정신을 잊었나

기자 2024. 2. 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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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가진 것 없는 ‘변방의 장수’를 자임하며 여의도로 들어왔다. 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거머쥐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좋은 점이 많은 정치인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이재명은 모든 사안에 명쾌한 입장을 냈고, 무슨 일에든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극한 상황을 견디며 책임윤리를 다한 김대중의 끈질긴 권력의지, 놀랄 만한 용기로 장애물을 돌파한 김영삼의 담대함, 권력 투쟁의 냉정한 현실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은 김종필의 유장함, 역사의 격랑에 주저 없이 몸을 던지는 노무현의 열정이 다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으나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특히 그를 돋보이게 했던 것은 기동력이었다. 의표를 찌르는 신속한 판단이야말로 다른 정치인들을 압도하는 덕목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이재명이 사라졌다. ‘변방의 장수’는 찾을 수 없었다. 역사상 우리가 처음 경험하고 있는 ‘검찰정권’이라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민첩함은 보이지 않는다. 검찰정권에서, 권력 분립과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이 무력화되고 있고 대통령 권력의 폭주와 일방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재명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움직임을 자제하고 있는 무위(無爲)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인가? 그런 전략의 결과였다면 차라리 좋겠다. 지금 이재명과 민주당의 정치적 부진은 무위전략의 결과가 아니라 무(無)전략의 결과라서 걱정이다.

강호 무림을 평정했다는 ‘조선 제일의 검’이 알고 보니 선무당의 무능한 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이재명과 민주당은 그저 무던한 야당이다. 야당의 역할은 반대를 조직하고 분노를 동원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무디었고 그의 행동은 더디었다. 이재명과 야당의 무기력은 국회의원 총선거를 향한 레이스에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때문에 국민의힘 총선 행보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재명과 민주당은 마냥 뭉그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더 나은 미래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떤 이는 진영대결 구조에서 일어나기 마련인 상호의존 현상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이 바닥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야당도 덩달아 나태해진 것 같다는 설명이다. 어떤 이는 이른바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집요한 검찰의 칼날에 대응하느라 이재명의 진이 다 빠져 무기력화되었다는 얘기다. 또 어떤 이는 지지기반의 중도층 확장 의도 때문에 날렵했던 그의 행보가 굼뜨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재명이 기득권을 지키기에 골몰하느라 변방의 장수 시절에 보여주었던 역동적 리더십을 잊어버린 탓이라고 진단한다.

어떤 설명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재명과 민주당의 어수선한 모습이 최근 위험한 상황까지 와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들리고 있는 공천 과정의 잡음은 느낌이 심상찮다. 이곳저곳에서 공천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천 과정에는 뒷말이 없을 수 없겠으나 어떤 얘기는 지나쳐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대표 ‘측’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난맥이 생기고 있다는 경고가 그런 것이다. 우려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뒷담화는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심각한 내상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일지군(一枝軍)을 이끌고 당당하게 여의도로 들어오던 ‘변방의 장수’ 정신을 다시 불러내야 한다. 혹여 그 정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차지한 자리를 지키는 데 골몰하는 배부른 ‘구들방 장수’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그는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변방의 장수’였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느 성직자가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이가 흠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단한 생애만큼 상처 많은 사람입니다. 번듯한 학연, 지연, 정치적 인맥도 없이 늘 변방에서 외롭게 싸워왔던 그런 사람입니다. 차별과 배제로 밀려난 이들처럼 그렇게 고독한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이재명은 자기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을 때 오히려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삶이 그를 강퍅하게 만들지 않고 인간을 누구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도자로 만드는 거름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의 목숨을 건 단식과 생명을 잃을 뻔한 테러의 위협이 자신을 더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더 큰 세상을 담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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