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순한 먼지들의 책방
기자 2024. 2. 18. 19:59
여기저기 떠다니던 후배가 책방을 열었어.
가지 못한 나는 먼지를 보냈지.
먼지는 가서 거기 오래 묵을 거야.
머물면서 사람들 남기고 가는 숨결과 손때와 놀람과 같은 것들 섞어서 책장에 쌓고는, 돈이나 설움이나 차별이나 이런 것들은 걷어내겠지. 대신에, 너와 내가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지구와 함께 오늘 여기를 느끼면서, 나누는 세상 모든것과의 대화는 얼마나 좋아, 이런 속엣말들 끌어모아 바닥이든 모서리든 책으로 펼쳐놓겠지.
그려보기만 해도 뿌듯하잖아.
지상 어디에도 없을,
순한 먼지들의 책방.
(혹시라도 기역아 먼지라니, 곧 망하라는 뜻이냐고 언짢을 것도 같아 살짝 귀띔하는데, 우리가 먼지의 기세를 몰라서 그래. 우주도 본래 먼지로부터 팽창하고 있다고 하지 않던.) 정우영(1961~)
우리는 우주를 떠돌던 먼지였다. 그 먼지들은 순하고 고요했지만 어디든 멀리 갔다. 우리는 한때 별이었고, 별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에서 태어났다. 시인은 떠돌던 후배가 책방을 열자, 그곳에 “오래 묵을” 먼지와 함께 편지를 부친다. “순한 먼지들의 책방”은 광주에 있는 기역책방이다. 자음의 ‘첫’인 ㄱ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언제부턴가 동네에 책방이 하나둘 문을 열고 닫았다. 책을 안 읽는 시절에 기적처럼 동네에 생겨난 책방들. 그 책방들의 불이 하나씩 켜질 때, 한 우주가 눈을 뜬다. 하나의 심장이, 하나의 봄이 환하게 불을 켠다.
먼지의 책들을 펼치면 지구의 모든 생물이 펄떡거린다. 바다가 파도를 끌고 오고, 숲의 나무들은 품고 있던 새들을 보여주고, 눈보라와 폭풍과 지진이 몰려오다 사라진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가슴 밑바닥과 “모서리”는 평평해진다. 내일은 세상의 골목골목마다 책방들이 별처럼 많기를, 희미한 길들을 밝혀주기를!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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