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트럼프의 폭주, 韓 대비는 돼있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폭탄 발언'에 동맹국들이 발칵 뒤집혔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대선 후보 경선 유세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 중 방위비를 제대로 부담하지 않는 나라를 보호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과거 대통령 재직 시절 자신이 참석했던 나토 정상회의에서 오갔던 대화를 공개했다. 그는 당시 한 정상이 '만약 우리가 돈(방위비)을 안 내도 러시아의 공격으로 보호해 줄 거냐'라고 묻기에 "절대 아니다. 돈 내지 않으면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걸 하도록 장려할 것이다"고 답했더니 "결국 돈이 들어왔다"고 소개했다.
간단해 말해 나토가 돈을 안 내면 미국은 나토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아가 나토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유세라고 해도 미국 대선 후보가 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는듯한 발언을 내뱉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를 듣고 환호성과 박수를 터트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충격을 받은 유럽에선 자체 방위력 증강만이 살길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 트럼프의 동맹 경시 태도는 새로운 것도 없다. 재임 시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유럽 국가들이 오랫동안 미국의 군사력에 '무임승차' 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날 그의 발언은 상당히 도발적이고 선동적이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은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유럽은 미국을 상대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는 병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트럼프의 언행, 그리고 충성파 참모가 더 많아진 것을 감안하면 '트럼프 2기'가 '트럼프 1기'와는 차원이 다른 '폭주 정권'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토 탈퇴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관세 인상,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축소 등이 점쳐진다. 미중 대결은 한층 격렬해질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배경에는 '쇠퇴하는 미국'이 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이지만 예전의 빛을 잃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의 인식은 '강한 미국'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트럼프가 직면한 현실은 '강하지 않은 미국'이다. 바야흐로 21세기 각자도생의 시대가 활짝 열릴 조짐이다. 트럼프가 이런 시대를 못 열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한국으로서도 예사로이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주한미군 감축 요구는 확실해 보인다. 김정은과 다시 비핵화 이벤트를 벌일 가능성도 높다. 미국이 북핵을 용인하거나 북한과의 직거래로 '통미봉남'(通美封南)이 이뤄진다면 최악이다. 허나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 임기 내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 한국이 핵무장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회의적이다. 전방위적 대처가 필요한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주도면밀한 대비책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문제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은 출구 없는 정쟁으로 정신이 없다.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다. 조선 몰락의 교훈을 잊은 듯 하다.
'트럼프 리스크'에 한반도가 불안해지고 있다. 그냥 눈 뜨고 볼 수는 없다. 이제 트럼프 재집권 대응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키되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하는 전략적 마인드로 대미 전략을 수립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외교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이 처할 현실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총체적인 외교 정책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친구의 적과도 손 잡을 수 있는 것이 외교다. 당장 비난을 받더라도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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