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푸틴 정적의 의문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권력자들이 정적을 그대로 두는 일은 드물었다. 권력을 위협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싹을 잘라내려고 했다. ‘21세기 차르(황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배하는 러시아는 두드러진 예다.
1990년대 주지사와 부총리를 지내는 등 러시아 정계의 주류 인사였던 보리스 넴초프는 한때 지지했던 푸틴이 독재로 치닫자 반체제로 돌아섰다. “푸틴 없는 러시아를 외쳐야 한다”며 ‘반(反)푸틴’ 시위를 준비하던 넴초프는 2015년 2월 크렘린궁에서 불과 200m 떨어진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총 4발을 맞고 숨졌다. 전직 스파이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2006년 망명국 영국에서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 들어간 차를 마시고 사망했다. 푸틴의 치부를 들춰낸 언론인과 기업인의 죽음도 이어졌다. 2000년 푸틴 집권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숨진 이들이 줄잡아 수십명이다. 그럴 때마다 KGB 출신인 푸틴이 비밀경찰 조직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는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푸틴에 대항할 유일한 야권 지도자로 꼽히던 알렉세이 나발니도 수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2011년 푸틴과 고위 관료들의 부패를 폭로하며 반정부 운동을 주도했다.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해 득표율 27%로 푸틴을 긴장시켰다. 그 대가로 나발니는 죽음의 문턱을 몇번이나 오가야 했다. 2017년 괴한이 뿌린 독성 액체에 한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가 됐다. 2020년 8월 러시아 국내선 여객기에서 독극물 노비촉에 중독돼 의식불명에 빠졌다. 독일에서 치료 후 이듬해 러시아로 돌아오자마자 극단주의 활동, 불법 금품 취득,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30년형을 받고 수감됐다.
나발니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시베리아의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교정당국은 “나발니가 산책 직후 몸이 좋지 않다더니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시신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나발니의 죽음에 푸틴이 개입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서방에선 이번에도 푸틴을 배후로 지목한다. 지난해 푸틴에 반란을 꾀한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전용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84세인 2036년까지 종신 집권을 꿈꾸는 푸틴은 이제 위험요인을 모두 제거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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