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에

한겨레 2024. 2. 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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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다 보면 자주 이별하게 된다.

지역 방송국 피디로 일하며 맡았던 프로그램 중에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고생했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2018년 파일럿 방송으로 시작해 무려 7년 동안 매주 지역 시청자를 만났던 이 프로그램은 지난달 말에 마지막 녹화를 마쳤다.

언제나 돈과 사람이 부족한 지역 방송국에서 매주 방송되는 정규 시사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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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말고] 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다 보면 자주 이별하게 된다. 매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다 보니, 지난 프로그램을 함께했던 출연자나 스태프와 헤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함께 입사해 동고동락했던 동기가 서울에 있는 방송국으로 이직해 떠나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프로그램과 헤어지고 사람과 헤어지는 일에 점차 익숙해진다.

올해는 한때 연출로 참여했었던 한 시사 프로그램과 영영 헤어졌다. 지역 방송국 피디로 일하며 맡았던 프로그램 중에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고생했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2018년 파일럿 방송으로 시작해 무려 7년 동안 매주 지역 시청자를 만났던 이 프로그램은 지난달 말에 마지막 녹화를 마쳤다.

마지막 녹화가 끝난 뒤 제작에 참여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지막 점심을 함께 먹었다. 뜨끈한 전골을 앞에 두고, 팀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던 진행자 선배가 마지막 소감을 밝혔다. 담담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해졌다. 내가 이 프로그램과 함께한 건 겨우 1년 남짓, 팀을 떠난 지도 1년이나 지났으니 담백하게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붉어진 눈시울로 동료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언제나 돈과 사람이 부족한 지역 방송국에서 매주 방송되는 정규 시사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수익 창출이 불가능한 장르일뿐더러 취재와 제작에 많은 시간과 품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역 방송국의 시사 프로그램이 7년 동안 꾸준히 시청자를 만나왔다는 건, 그 뒤에 있는 제작진이 상상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왔다는 의미다. 팀에 합류해 방송을 만드는 내내, 결코 프로그램에 누가 되진 말자고 스스로 채찍질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동료들이 얼마나 공들여 쌓아온 결과물인지 알았으니까. 하지만 매번 내가 만든 방송이 최선인지 알 수 없었고, 가끔은 동료들에게 부끄러운 방송을 만든 것 같아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도저히 나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엔,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기획해 수년째 이끌어 오고 있었던 피디 선배에게 물었다. 진탕 술을 먹고 불콰해진 얼굴로 선배는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냐고 물었다. 어쩌면 그토록 끈질기게 매달려서 끝까지 파고들 수 있냐고. 누구도 지역에선 할 수 없다고 말렸던 시사 프로그램을 수년 동안 묵묵히 이끌어 온 선배의 대답은 담백했다. 시민을 대신해서 질문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방송을 만들 땐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방송을 만들며 쉼 없이 한계에 부딪힐 때면 선배의 말을 자주 떠올렸다. ‘우리가 하는 건, 시민을 대신해서 질문하는 일이야.’ 돌파구가 되진 못해도 버팀목이 되어줄 때가 많았다.

프로그램과 헤어질 땐 언제나 그것이 내게 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라거나 내 연차에 경험할 수 없는 크고 도전적인 과제를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는 식으로. 하지만 프로그램을 그만둔 지 일 년이 지나고, 영영 헤어지게 된 지금에도 나는 이 프로그램이 내게 준 것들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시민을 대신해서 질문하고 있다는, 조금이나마 내가 사는 이곳에 보탬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감각에 기대어 겨우 통과해 온 짧고 고된 시절 동안 내가 얻은 건 무엇이었을까.

너무나 잘하고 싶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만 같아 괴로웠던 시간이 영영 끝났다. 하지만 이별 후에도 시민을 대신해 질문을 던지는 역할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비로소 그 시절이 내게 남기고 간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될까. 그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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