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합리적인 논의와 타협은 불가능한가
[세상읽기]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지난 6일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5년부터 5년간 2천명씩 늘려, 5년간 이 정원을 계속 유지해 2035년까지 의사 1만명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인구변화로 인해 발생할 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처라는 설명이다. 대다수 의사는 타당하지 않은 일방적인 조처라며 반발하고 있고, 정부와 의사단체는 거칠게 대치하며 정면충돌의 길로 가고 있다.
의료를 잘 모르는 필자가 의사 증원 문제를 다루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인구변화가 의료 분야 인력 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전망하는 작업은 인구·건강·노동 문제를 전공하는 필자 같은 연구자의 일이다. 더욱이 최근 인구변화가 초래할 의사 인력 수급 변화를 전망하는 공동연구의 책임을 지기도 했으므로, 이 사태의 완전한 관전자이기는 어렵다. 이 공동보고서 관련 내용을 집필한 한국개발연구원(KDI) 권정현 박사의 추계 결과에 기초하여 몇 가지 쟁점에 관한 필자의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인구변화로 장차 의사 인력이 부족해질까? 앞으로 우리나라는 인구 규모의 감소와 고령화를 함께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2050년께까지는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 이용 증가 효과가 인구 감소로 인한 수요 감소 효과를 압도할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의 의사 1인당 업무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2만명 이상 의사가 더 필요하다. 2050년 이후에는 인구 감소의 효과가 더 커져서 의료서비스 수요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의대 정원 조정은 2050년까지의 수요 증가와 이후의 감소 추이에 맞추어 세밀하게 결정해야 한다.
둘째, 이러한 추계 결과는 신뢰할 만한가? 미래 전망에는 불확실성이 따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현재의 연령별 의료 이용이 앞으로도 유지된다는 기본적인 가정은 틀릴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의 의료 이용이 지금보다 감소한다면, 정부 계획보다 의사 인력을 덜 늘려도 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의료 개혁을 통해 환자와 의사 모두 과잉 진료의 유인이 줄거나, 의사의 업무 중 가능한 일부를 다른 의료 인력에게 맡긴다면 의사 업무량을 줄일 수 있다. 비대면 진료 확대는 지방의 의사 인력 부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더 건강해져도 장래의 의료 이용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소득의 증가와 선호의 변화로 의료 이용이 지금보다 더 늘 수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의료 이용이 유지된다고 가정하여 얻은 추계 결과와 이를 토대로 한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은 합리적인가? 2020년대 말부터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 이용 증가와 의사 인력 증가세 둔화 추이가 본격화하면서, 의사 인력 부족 규모가 커질 것이다. 따라서 2035년까지 적어도 의사 1만명 증원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급격한 정원 확대로 의학 교육의 질이 저하할 수 있다는 지적은 경청해야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의대 정원을 몇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늘리고, 늘어난 정원을 더 오래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겠다. 장기적으로는 의사 인력 수급 사정을 객관적·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하여, 이에 따라 의대 정원을 신축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의대 정원 확대로 충분한가? 정부도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 듯하다. 의사 부족은 일부 지역과 분과를 중심으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인구변화는 이와 같은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가 판단하듯이 의사가 많아지면서 부족한 과목과 지역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지만, 의사들의 선택을 바꿀 수 있는 더 강하고 직접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특히 전공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보이지 않는 점은 우려된다. 특정 전공과목 붕괴의 충격은 의료 취약 지역의 확대보다 더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의사단체가 서로의 힘을 휘두르는 “전쟁터”에서, 무엇이 일반 국민에게 진정 득이 될지를 판단할 논리와 근거가 설 자리는 좁아 보인다. 그래도 자문해보기 바란다. 사람들은 이 다툼에서 어느 쪽 편을 들까? 혹시라도 환자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겼을 때, 어느 쪽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할까? 누가 더 합리적이고 믿을 만한지, 누가 국민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하는지를 따져서 판단하지 않을까?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2주치 수술연기 전화 돌렸다”…‘빅5’, 전공의 이탈에 벌써 혼란
- ‘용핵관’ 역차별 이유 없다…대통령 측근 주진우 ‘양지’ 공천
- ‘과반승리’라더니 지지율 국힘에 뒤졌다…민주당, 총선전략 빨간불
- “‘전장연 옹호자’ 환영 못 해” 이준석 비토에…배복주 “탈당 안 한다”
- 퀀텀점프로 과학도 ‘입틀막’?…윤석열표 과학강국의 길
- 전세사기 나앉아도 매입임대주택 꿈일 뿐…바닥친 LH 공급
- 귤껍질 일반쓰레기로 버렸다가 과태료 10만원…“기준 헷갈려요”
- 나발니 죽음 꼬리 문 의혹…혹한의 감방·독극물 중독·의문의 주사까지
- 쓰면 영상 되는 ‘소라’ 출시에 광고·영상 업계 “우리 다 죽었다”
- 월요일 비 많이 온 뒤 기온 ‘뚝’…눈비 오는 축축한 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