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처럼 DMZ 순례길 400㎞ 함께 걸어 갈등 치유”

이준희 기자 2024. 2. 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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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 김현호 성공회 신부
김현호 성공회 신부가 지난 8일 경기 파주시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이준희 기자

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실천불교승가회, 원불교 시민사회 네트워크 등 4대 종단이 오는 29일부터 21박22일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무장지대(DMZ) 순례 대장정’을 시작한다.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강원 고성군 고성통일전망대에 이르는 400㎞ 길을 온전히 걷는다. 4대 종단이 함께 모여 비무장지대를 순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8일 파주시 샬롬의집에서 만난 김현호 성공회 신부는 “함께 걸음으로써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넘고자 한다”고 했다.

김 신부는 2022년 9월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에 부임해 사역하고 있다. 왜 성공회 사제가 이주민센터에 부임했을까? 김 신부는 “노동자·빈민 관련 활동을 하던 성공회가 자연스럽게 성서의 가치를 통해 이주민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것이 성서의 기본적인 가르침”이라며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와 낯선 땅으로 떠나야 했던 아브라함, 애굽 땅에 있다 해방된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 모두 이방인이었다”고 했다.

성공회는 1991년부터 이주민 대상 선교를 시작했다. 어느덧 33년. 하지만 김 신부가 보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환대보다는 갈등과 분열이 자리하고 있다.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서로가 입힌 상처가 깊다. 김 신부는 “우리 사회는 어떤 인식의 내용을 실천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좋지 않은 행동을 하고 상처를 줬다”며 “그렇게 생긴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앙심을 품은 채 살아왔다”고 했다. 외부인 취급을 받는 이주민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침해받는 경우가 흔하다.

김 신부의 해법은 ‘함께 걷는 것’이다. 김 신부는 “우리 사회는 서로가 입힌 상처를 씻어낼 수 있는 삶의 태도가 약하다고 느꼈고, 인위적이고 이념적인 틀로 설득하지 않아도 통할 수 있는 방법이 뭘지 고민하다가 찾은 방식이 순례”라며 “요즘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걷는 문화가 있듯 타자를 위해서 걷는 문화가 필요하고, 이걸 종교적인 표현으로 하면 순례”라고 했다. “어떤 대립이 있다고 해도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걷다 보면 그 안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것”이라는 설명이다.

4대 종단 29일부터 21박22일 동안
한반도 평화 위한 DMZ 순례 대장정
미얀마 공동체 등 이주민들도 동참
“한국 아픔 공감하고 함께 살아가야”

‘나그네 환대하라’ 성서 가르침대로
성공회 1991년부터 이주민 선교
“공동체부터 공존의 문화 만들어가야”

김 신부는 비무장지대 순례길을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만들고자 한다. 그는 샬롬의집에 부임하기 직전인 2022년 8월 직접 40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이런 꿈을 품었다. 김 신부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굉장히 많은 한국인이 있었다”며 “한국 사회에도 자기성찰적 걷기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레포츠의 의미에서의 걷기를 했지만, 이번 순례를 시작으로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쌓아간다면 세계적으로도 비무장지대만 한 순례길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순례길에는 파주시 미얀마 공동체 등 각국 이주민도 함께할 계획이다. “미얀마도 지금 아픔(군부 쿠데타)이 있지만 한국에도 아픔이 있다. 당신들도 그걸 알아야 한다”는 김 신부의 제안에 미얀마 공동체가 흔쾌히 응했다는 것이다. 김 신부는 “지난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순례했는데, 이주민들이 참여해 각 나라 국기를 들고 함께 걸은 날이 있었다. 그들이 우리의 이웃임을 느꼈던 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주민은 단순히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했다.

이런 활동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샬롬의집은 오는 19일∼24일 미얀마연대파주시민모임과 미얀마 공동체 대표 등의 미얀마 난민촌 방문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미얀마와 국경을 맞댄 타이 지역에 있는 난민촌을 방문할 계획이다. 미얀마 이주민들이 고향의 난민을 위해 힘을 모으면 지역사회가 힘을 보탠다는 취지로 마련한 계획인데, 총 500만원의 비용을 마련했다. 김 신부는 “다시 고향에 돌아갈 이주민들이라도 한국에서 돈만 벌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건강한 삶을 만드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김 신부는 앞으로도 지역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서로를 이해하고 돕기 위한 발판을 만드는 활동을 이어가고자 한다. 김 신부는 “공존의 문화는 공동체 안에서부터 만들어내고, 그 공동체가 고립을 넘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지역사회 또한 그것을 수용하는 운동을 전개해나가야 한다”며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차곡차곡 해나가면 지금 한국이 겪는 고질병을 고쳐내고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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