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세금 된 상속세 … 재산 16배 급증에도 세법 24년째 그대로
2000년 최고세율 50%로 인상
경제규모 커져도 개정 안해
韓상속세율 일본보다 낮지만
자산시가평가·최대주주 할증
실질세부담 최고 60% 달해
정부, 유산취득세 변경 검토
두 자녀를 둔 70대 주부 A씨는 최근 사망한 남편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상속받아 970만원의 세금을 냈다. 같이 살았던 낡은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지만, 주택가격 상승에 재산가액이 11억원을 넘자 갑자기 목돈을 마련해 세금을 내야 했다. 뚜렷한 수입이 없는 A씨는 남편을 잃은 상실감에 적지 않은 세금까지 내며 속앓이를 했다.
18일 매일경제와 한국경제인협회가 향후 상속세 과세 대상 아파트를 추산한 결과 11년 뒤인 2035년부터는 수도권 아파트 10곳 중 6곳(60.3%)이 A씨처럼 상속세 부담을 짊어져야 할 것으로 추산됐다.
지역별·5분위별 아파트 가격 데이터가 있는 KB 월간주택가격동향과 통계청 주택총조사 데이터를 통해 아파트 매매가격과 가구가 최근 5년과 같은 추세로 증가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분석한 결과다.
올해 매매가격이 10억원을 넘어서 상속세 대상이 되는 수도권 아파트는 77만2000가구로 전체 수도권 아파트(638만1000가구)의 12.1%를 차지한다. 과세 대상 수도권 아파트 비중은 2025년 11.9%로 다소 주춤했다가 2030년 34.1%로 뛴 후 2035년 처음 60%선을 넘어선다.
특히 주택 수요가 많은 서울 지역의 세 부담이 가파르다. 서울에서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가구는 올해 전체의 39.9%에서 2030년 80.0%로 크게 늘어난다.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과세 대상 아파트 비중은 올해 5.9%에서 2030년 16.8%, 2035년 32.6%로 꾸준히 증가한다.
문제는 고율의 세금이 꿈쩍도 하지 않는 동안 전체 경제 규모가 커졌고, 그만큼 국민들 세 부담은 늘어났다는 점이다. 상속세제는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로 올라간 후 개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0년 652조원에 불과했던 국내총생산(GDP)이 2022년 2162조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 이 기간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1377만원에서 4249만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동시에 고령화 추세는 빨라지며 상속재산은 3조4134억원에서 56조4037억원으로 16배 이상 급증했다.
현행 상속세는 △과세표준 1억원 이하 10% △5억원 이하 20% △10억원 이하 30% △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50% 등 5단계 누진세율을 적용해 운용되고 있다. 한국의 최고세율(50%)은 미국(40%), 프랑스(45%), 독일(30%) 같은 주요 5개국(G5)은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과 비교해도 크게 높다.
명목상 일본(55%)에 이어 OECD 가입국 중 2위다. 하지만 실질세율은 OECD 최고다. 한국은 상속재산을 시가로 평가해 과세하는 데다 대기업 최대주주에는 할증까지 해 최고세율 60%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최고세율은 높아도 재산을 공시가로 평가해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전반적인 부담은 한국보다 낮다.
정부도 급증하는 세 부담을 의식해 세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상속총액에 일괄적으로 세금을 매기는 기존 유산세 방식에서 일본처럼 상속자 개인의 유산 취득분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르면 7월 세법 개정안 발표 때 유산취득세 전환 방안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유산세 방식에서는 상속액수가 많으면 높은 세율을 적용받은 후 상속인들에게 배분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크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을 도입하면 상속액수를 먼저 상속받는 사람만큼 나눈 후 세율을 적용해 유산세에 비해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전문가들은 유산취득세 전환과 병행해 과표 구간과 세율을 조정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10억원을 넘었다"며 "이제 상속세가 부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사안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행 1억원에서 30억원의 과표 구간도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중산층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세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한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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